금요일 퇴근은 마음이 괜히 설렌다. 이틀 연속 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음에 맞는 사람과 회포를 풀 수 있어서도 좋다. 지지난주 금요일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문제는 '퇴근과 함께 '술 한잔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행복한 고민만 남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술 한잔 하자는 직원도 친구도 없었다. '그냥 집으로 가야 하나?' 망설이는 그 순간, 핸드폰의 진동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혹시?' '나와 텔레파시가 통한 그 누군가가 술 한잔 하자는 전화는 아닐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이었다.
그런데 '이거 누구야,,' 3년여 전 자신이 해보고 싶은 일을 해보겠다'며 회사문을 나섰던 낯익은 후배 이름의 발신자가 아닌가,
사실 퇴사를 한 후배 직원이 선배 직원에게 먼저 전화를 걸기란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직장의 특성상 같이 근무할 때 선배, 후배, 동료 사이다. 퇴사를 하면 그냥 동네 아저씨보다 못한 관계일 수도 있다. 그래서 후배의 전화가 더욱더 반가웠다.
'후배, 웬일이야..?'
'웬일이긴요, 선배님이랑 술이나 한잔 할까..' 해서 전화했죠,
그렇게 후배의 집과 가까운 어느역 근처에서 그를 만났다. 그리고 '맛집으로 유명하다'는 후배의 안내로 어느 제육볶음집으로 향했다. 다소 이른 시간임에도 이미 많은 손님들로 가득 차 소문난 맛집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우리는 겨우 남은 두 테이블 중 한 테이블을 잡고 앉았다. 곧이어 동그란 검은 돌판에 '지글지글' 그리고 맛있게 매운 냄새를 풍기며 제육볶음이 도착했다. 그 비주얼이 너무나 맛있게 보여 내려놓기 무섭게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다른 집 제육볶음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 내 입안을 즐겁게 만들었다. 쫄깃쫄깃 씹히는 고기의 식감에 적당히 섞인 지방은 고기의 담백함을 더욱더 배가시켜 주는 듯했다. 지금까지 먹어 본 제육볶음 중에 최고라 치켜세워도 될만했다.
이 맛에 매료되어 주고니 받거니 술 몇 잔을 기울이던 중 후배가 갑자기 담아두었던 자신의 속마음을 꺼내 든다.
생각해 보면 선배님의 따뜻한 배려가 회사생활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제가 실수를 하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를 해 주시려는 마음이 늘 고마웠어요, 그럴 때마다 오히려 '미안하고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니까요,
특히 OOO건은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그래서 선배님의 얼굴도 보고 싶고 전화를 드렸는데 생각해 볼수록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후배가 잊을 수 없었다던 OOO건은 후배 본인이 상당한 실수를 한 것이었다. 원칙만을 놓고 본다면 윗선에 보고를 해야 했고, 후배에게 불이익은 불가피할 건이었다. 이 때문에 직속 상사인 나로서도 선택의 고민이 많았다.
숙고 끝에 내린 결론은 내손에서 끝내자는 것이었다. 상당한 실수는 맞지만 윗선에 보고하지 않고 내 손에서 끝낼 수도 있는 사안이라 판단했다. 더욱이 이 후배는 어느 직원보다 성실했고 이 같은 실수는 처음이었음을 감안한 결론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 일은 내뜻대로 마무리가 잘 되었다. 그 뒤 후배는 더욱더 일 잘하는 직원이 됐고, 나 자신도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을 해 왔다. 그런데 후배가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표시를 한 것이다.
퇴사를 한 이상 그냥 지나처도 될 법도 한데 잊지 않고 찾아와 준 그 후배가 오히려 고마운 마음에 그에 어깨를 툭 쳤다. 그리고후배에게 다시 한번 술잔을 부딪쳤다. 그때 마셨던 술 한잔은 내 생에 최고로 기분 좋은 술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