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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창 신부범 Aug 19. 2020

말복 보양식에서 아버지가 생각난 까닭은?

난생처음 아버지의 참사랑을 알게 된 그때를 떠올려 봅니다.

절기상 삼복더위도 모두 지나 올여름도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폭염은 기승을 부리고, 잠 못 이루는 열대야에 괴롭기만 합니다. 그러나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추(8월 7일)가 지난지도 어느새 10여 일이나 지났으니 조그만 참고 견디면 선선한 가을이 우리 앞에 다가올 것이라는 기대에 찬 희망이 그나마 위안이 되는 요즘이기도 합니다.


희망이란 이렇게 삶의 에너지원이자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는가 봅니다. 그래서 철학자 '테오크리투스'는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있고, 희망은 가난한 자의 빵이라고 표현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지난 8월 15일 토요일은 광복절이자 말복이었습니다. 사흘 연휴 첫날 집에서 '뒹글 뒹글' 텔레비전 리모컨과 씨름하다 잠이 오면 자고 또 리모컨과 씨름하다 잠이 오면 자고를 시계추처럼 반복하던 오후 무렵, 형수에게서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형수, 웬일이세요?'


'삼촌, 오늘 말복인데 저녁에 특별한 약속 없으면 건너와 같이 저녁식사나 하시죠?'


형수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휴대폰을 통해 전달이 되고서야 그날이 말복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무료하던 참에 '잘됐다'싶었습니다. 주섬주섬 옷을 갈아 입고 형네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메뉴로 말복의 몸보신을 해볼까, 고민에 들어갔습니다.


복날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보양식 삼계탕도 좋지 않을까란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반적인 맛보다 또 다른 묘미의 맛은 없을까, 고민 끝에 선택한 메뉴가 바로 한우 소고기 육회에  산 낙지를 '탕~탕~탕~' 내리쳐 함께 버무려 먹는 일명 '소고기 육회 낙지 탕탕'이었습니다.


사실 소고기와 낙지는 둘째 가려면 서러워할 보양식입니다. 소고기는 값이 비싸 쉽게 먹을 수 없어서 그렇지 예부터 '맛과 영양으로 따질 때 소고기만 한 것은 없다'라고 했습니다. 조선시대 편찬한 식이요법서 식료찬요에도 '소고기를 먹으면 기운을 북돋울 수 있다'라고 했으니 보양식 소고기 예찬도 무리는 아닐 듯싶습니다.

소고기 육회 낙지 탕탕이, 거기에 전복까지..

낙지 또한 소고기 못지않은 보양식에 속합니다. 흔히들 낙지를 갯벌에서 나는 산삼에 비유하고, 기력을 잃고 '쓰러진 소에게 먹이면 벌떡 일어난다'는 말이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자산어보에도 '낙지 서너 마리만 먹으면 강한 힘을 가지게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보면 '보양식으로서 낙지의 가치는 충분하다'라고 여겨집니다.


그러고 보면 결국 우리는 그날 복날 보양식 최고의 음식 두 가지를 한꺼번에 먹는 호사를 누렸던 셈이었습니다. 어쩌면 소고기와 낙지라는 최고의 보양식을 먹어서가 아니라 형제들끼리 우애를 다질 수 있어서 더욱 뜻깊고 행복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보양 식중에서 소고기 하면 아버지의 내면 깊이 감춰진 자식에 대한 참사랑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아버지의 자식사랑이 그렇게 속 깊은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쉽게 잊혀지지 않는 그날의 아버지로 영원히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나 봅니다.


당시 나는 경기도 연천 모사단에서 이등병으로서 군 생활이 조금 힘들 때쯤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오전, 아버지께서 예고 없이 부대에 면회를 오셨습니다. 평소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말 한마디 없이 그저 엄하고 무서운 모습만 보이셨던 아버지께서, 심지어 입대날 배웅조차 없으셨던 아버지께서 면회를 오시다니 뜻밖이었고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농사일을 하다 잠시 시간을 내어 들렀다'는 아버지께서는 '군대 생활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며 난생처음 들어보는 온화한 말투로 나를 부대 밖 어느 고급 소고기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당시만 해도 서민들 입장에서 엄두로 못 낼 값비싼 소고기 었지만 아버지의 통 큰 자식사랑 덕분에 지금까지 먹어본 소고기 중에 가장  맛있는 소고기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아버지의 진심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표현만 안 하셨을 뿐, 어느 아버지보다도 마음속 깊은 자식사랑을 품고 계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8년 전 하늘의 별이 되어 떠나고 안 계신 지금 아버지가 더욱더 그립기만 합니다.


아무래도 이번 주말 '아버지께서 영면해 계신 곳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문뜩 듭니다. 그리고 아버지 앞에서 진심을 실어 말씀드리고도 싶습니다. 다음 생에도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고 싶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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