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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창 신부범 Sep 24. 2020

생면부지의 사람과 점심을 같이 했다

그 자세한 사연을 소개합니다

요즘 세상 모든 관심사는 뭐니 뭐니 해도 코로나 19다. 작년 12월에 창궐해 좀처럼 사라질 줄 모르는 징글징글한 코로나는 경제적 타격도 모자라 직장인들의 점심 풍경까지 바꿔 놓는 심술을 부렸다. 굳이 힘들여 멀리 갈 것도 없이 내가 근무하는 서울 강남의 경우만 해도 그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가 있다.


각종 업무용 초고층 빌딩들로 즐비한 서울 강남은 직장인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코로나 19 확산이 본격화하기 전까지만 해도 점심시간 한꺼번에 몰려나온 직장인들로 거리는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고 일반 식당가는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런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일반식당에 직장인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있다. 같은 회사 부서 직원들끼리 삼삼오오 식당을 찾았던 직장인들은 지금은 도시락 전문점과 편의점으로 향하고, 사무실 책상에 앉아 배달음식을 시켜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이는 코로나 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부터 생긴 불가피한 현상인지 모른다. 여기에는 우리 회사 직원들이라고 예외일 순 없다. 우리 직원들 또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기 이전만 해도 어느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일반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했었다.


하지만 코로나 19가 확산되고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된 이후부터 한꺼번에 밖에 나가 점심을 먹는 것을 자제하기 시작했고 어느 날부턴가 하나둘씩 개인별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더니 지금은 모든 직원들이 한통속이 되고 말았다.


나 또한 직원들과 뜻을 같이 해야 할 몸, 하지만 어제만큼은 특별한 일이 있어 부득이하게 점심을 혼자 먹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밥맛도 별로 없을 것 같고, 안 먹자니 뭔가 허전하고, 그래서 가볍게 뭐 때울 게 없을까 적당한 식당을 찾던 중 회사 근처 어느 점심 뷔페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장의 지시에 따라 열을 체크하고 방문자 기록부에 신상을 기입한 후 접시에 이것저것 밥과 반찬을 담아 들고 적당한 테이블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 도중이었다. 어느 손님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여기 자리 있어요'라고 묻는다. 얼굴을 들어 그를 쳐다보니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말끔한 남성이 음식을 담와 온 접시를 손에 들고 묻는 것이었다.


그분의 행동이 다소 당황스럽고 의아해 주위를 둘러봤다. 아직 빈자리가 많이 남아 있는 상태,  빈자리를 놔두고 굳이 내 자리에 와서 '자리가 있느냐'라고 묻는 이유는 뭘까, 그것도 생면부지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 순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만 자리가 없는 것을 있다고 차마 거짓말은 할 수가 없어 '자리는 없는데요'라고 했다.


이 말은 끝나자 중년 남성은 맞은편 의자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 본 사람과 같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점심을 먹는 내 마음이 편할리는 없었다. 괜히 태연한 척 스마트폰을 열어 이리 뒤적, 저리 뒤적, 최대한 불편한 기색을 내보이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마음속 불편함까지는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뿐만이 아니라 그 남성 역시도 모르는 사람과의 식사가 마음 편하지 않을 텐데, 비어 있는 테이블을 놔두고 왜 굳이 나와 함께 점심을 하려고 하는지 쉽게 납득은 할 수 없었지만  그렇지만 궁금할 수밖에 없는 그에 속사정의 수수께끼는 얼마 못가 풀리고 말았다.


내 입장에서 그 남성과 함께한 점심식사가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어찌 보면 이것도 소중한 인연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보다 앞서 식사를 끝내고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일어서 나가기보다는 뭐라도 한마디 해야 될 것 같아 공손한 어조로 '맛있게 드세요'라고 그에게 건넸다.


그런데 그 남성 이 말이 끝나자 나에게 한마디 한다.'식사시간 많이 불편하셨죠' 저도 마찬가지로 모르는 사람과의 식사가 마음 편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한참 손님들로 붐빌 점심시간, 그것도 혼자 테이블을 통차지하는 것이 식당 주인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 실례가 된 줄 알면서도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불편을 드렸다면 '너그러이 이해를 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라고 한다.


난 그제야 그분이 식당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그랬다는 속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분의 진정 어린 배려의 마음씨가 아름다워 보였고 은 사람이라 여겼다. 그렇지만 배려란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고 맞춰주기 위함이라면 그분의 배려에 조금은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그것은  '배려를 위해 또 다른 배려가 간과된다면 배려에 대한 모순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인데 이런 내 생각이 올바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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