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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창 신부범 Dec 17. 2020

강남역 껌 파는 할머니는 우리 엄마였다

요즘 날씨 매우 춥다.최저기온이 영화 10도 안팎을 오르내리는 강추위다. 이제 갓 들어선 겨울의 초입, 지나온 추위보다 다가올 추위가 더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참고 견디면 따뜻한 봄날이라는 희망이 있기에 이 추위도 거뜬히 견뎌낼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제 저녁 역시도 그랬다. 퇴근을 위해 사무실 밖을 나서니 불어닥친 칼바람이 내 몸을 샅샅이 훑고 지나갔다. 두툼한 외투를 뚫고 살 속까지 파고든 찬공기가 정말 매서웠다. 옷깃을 단단히 여미며 종종걸음으로 강남역 4번 출구 역사로 들어서니 따뜻한 온기가 내 마음까지 훈훈하게 만들어 준다.


너무 기분 좋아 발걸음도 가벼웠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지하철 2호선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뭔가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 저러고들 있을까, 궁금한 나머지 가던 길 잠시 멈추고 다가가 보니 추모꽃 몇 송이와 편지가 계단에 놓여 있었다.


문뜩 떠올랐다. 이곳은 퇴근길 늘 봐 왔던 일명 강남역 껌 파는 할머니께서 앉아 계셨던 자리였다. 그런 그곳에 할머니는 없었다, 그 대신 누군가가 놔두고 간 추모 꽃과 편지만이 정성스럽게 놓여 있었다. 상황으로 보아 직감이 왔다. 그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그랬다, 며칠 전부터 이상했다, 늘 계셔왔던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 할머니께서 무슨 변고라도 생긴 것은 아닐까, 그래서 껌 파는 일을 그만두신 걸까, 하루도 빠짐없이 자리를 지키셨던 할머니가 보이지 않아 궁금하던 터었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니 인생사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앞길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고 했던가, 내가 본 그날까지 건강한 모습이셨던 할머니께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셨다. 안타까운 마음 등등 이런저런 생각에 잠시 머물다 그곳을 떠났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본  껌 파는 할머니가 앉아 계셨던 자리에 놓인 추모 꽃과 편지들>

사실 할머니에 대한 루머는 많았다, 그럴 것이 90세가 넘으신 고령의 할머니께서 매일같이 껌을 팔고 계시니 사실로 확인되지 않는 말들이 사실인 양 떠돌았다.'외제차를 가진 아들이 할머니를 강남역까지 모셔다 드린다' '할머니는 빌딩을 가진 건물주다' 등의 소문들이었다.


하지만 지난 4월 KBS '제보자들' 프로그램 < 94세 할머니는 왜 하루 종일 껌을 파나?> 편에 나오신 할머니는 이런 소문과는 완전히 달랐다. 굽은 허리 이끌고  스스로 걸어 지하철을 이용하셨고, 허름한 상가 건물 지하방에 홀로 거주한 우리 시대 소외된 독거노인 중의 한 사람일 뿐이었다.


방송에서의 할머니는 자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남역 차디찬 계단에 앉아 한결같이 껌을 팔아야만 했던 진짜 속사정도 밝혔다. 어렵게 사는 자식들에게 도움이 되지는 못할 망정 최소한 짐이 되지 않아야겠다는 일념 하나, 그래서 아들딸 괴롭히지 않고 이렇게 걸어 다닐 때 눈을 감고 하늘나라도 가는 게 소원이라는 속내도 털어놨다.


그랬다. 방송을 통해 본 강남역 껌 파는 할머니는 색안경 낀 눈으로 처다 볼 할머니가 아니었다. 결국 그 누군가의 엄마였고 또 우리 엄마이기도 한 평범한 할머니였다.


돌이켜 보면 우리 엄마도 그랬었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 본다. 군대를 제대하고 서울에서 막 직장생활을 할 무렵 어느 날 엄마가 우리 집에 오셨다, 혼자 자취를 하고 있는 아들이 걱정되어서인지 손수 지으신 농산물을 배낭 터질 듯 싸들고 저 멀리 전라남도 영암에서 서울까지 올라오셨던 것이다.


그날 저녁 엄마는 가져오신 농산물로 이것저것 반찬을 만들어 냉장고 가득 '꾸역꾸역' 채워 넣으실 대로 넣으셨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 밥상을 차리신 엄마는 '농사일이 바빠 내려가야겠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교통비라도 하시라며 엄마에게 얼마 되지 않는 용돈을 드렸다.


그런데 엄마는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러느냐' '나도 돈 많다'라고 하시면서 한사코 손사례 치며 거부하셨다. 이런 엄마를 우는 애 달래듯 겨우 달래 엄마 호주머니에 찔러 넣어드리고 출근했다. 그리고  퇴근해 집에 와 보니 엄마는 없고 내가 준 용돈만이 컴퓨터 책상 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 역시도 강남역 껌 파시는 할머니의 마음과 똑같으셨던 것이다. 크고 작음을 떠나 자식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시려는 '지고지순'한 우리 시대 엄마의 마음, 그래서 나는 '강남역 껌 파는 할머니도 결국 우리 엄마였고 우리 엄마도 강남역 껌 파는 할머니였다'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아울러 엄마의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할머니의 명복도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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