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퇴사를 몇 번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과도한 업무 혹은 상사와의 갈등의 등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을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을 경우 일시적 마음에서만 머물러 왔을 뿐이다.
하지만 요즘은 이와는 또 다른 차원의 퇴사를 고민 중에 있다. 언제부턴가 문뜩 들기 시작한 퇴사 고뇌, 몇 번 곱씹어 생각을 해 봐도 '직장 생활, 이쯤 해서 접어도 될 때가 아닌가'라는 생각은 단순히 직장이 싫어서가 아니라는데 이전과 다른 퇴사의 고민이다.
직장인들에게 퇴사의 이유는 아주 다양하겠지만 나에게 있어 퇴사란 우선 다람쥐 채 바뀌 돌듯 틀 안에 갇혀 답답했던 직장생활, 구속은 아니지만 구속이나 다름없는 직장생활에서 이제 자유롭고 싶은 욕망이 어느 순간 내 마음속 깊이 내재해 갔다.
우선 직장을 그만둔다고 해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이제 좀 내려놓고 싶은 마음에서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조금 덜 먹고, 덜 입고, 덜 쓰고 그것으로 넉넉할 줄 아는 마음이 부자라면 퇴사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섰다.
비단 이뿐만 아니다. 지금이 바로 직장생활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최적기라는 판단도 하게 됐다. '주어진 직책에서 최선을 다했고,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있는 지금 퇴사를 하여도 결코 나쁘지 않다'라는 결론에도 도달했다.
2019년 4월에 가본 내가 나고 자란 내 고향의 모습, 수년의 세월이 지나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지엽적인 퇴사의 고뇌일 뿐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사실 나는 직장생활을 해 오면서 어릴 적 시골생활의 행복에 만큼은 이르지 못했다. 그래서 평소 마음속으로 품어 왔던 그때 그 행복했던 시골의 삶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퇴사를 고심하게 만든 가장 큰 본질이 아닌가 싶다.
그럴 것이 내 어릴 적 시골의 봄이면 아지랑이가 피어 오른 논둑 풀 속에 수줍게 핀 보라와 흰색의 가냘픈 제비꽃, 초가집 여기저기 피어난 봄꽃의 향연 위로 '살랑살랑' 춤을 추어댔던 흰나비, 노랑나비의 아름다운 자태의 날갯짓의 기억은 지금도 새록새록하다.
한여름밤이면 모깃불이 '모락모락' 피어오른 앞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워 본 하늘에서 무수히 쏟아지는 별들의 전쟁 사이로 떨어졌던 별똥별의 모습은 '나 혼자 산다'의 화사가 탄성을 자아냈던 강원도 강릉 대기리의 '안반데기' 하늘의 별. 그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환상적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빼놓을 수 없는 한여름밤의 추억은 초록이 물결치는 벼 논 들판, 여기저기 '연두색으로 '반짝반짝' 빛났던 반딧불의 황홀함, 어둠의 고요한 정적을 뚫고 어디선가 들려오곤 했던 뜸부기의 구슬픈 울음소리는 내 생애 최고의 한여름밤의 추억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 들녘은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났고 그 위로는 파란 물감을 뿌려 놓은 듯 높고 푸른 하늘 아래 고추잠자리가 앙증맞게 날고, 신작로 양 옆길에 선선한 가을바람과 함께 '한들한들' 코스모스의 청량함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영원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겨울의 행복했던 추억도 마찬가지, 그래서 숨 가쁘게 돌아갔던 직장 생활,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그만 접고 싶어 졌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평소 마음속으로 품어 왔던 어릴 적 시골생활의 행복했던 추억의 삶으로 되돌아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요즘 퇴사의 고민은 날이 갈수록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