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다소 이른 오전 동네 인근 전통시장을 찾았다. 그런데 그날 야채를 파는 가계들이 유난히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배추, 무, 파 등 김장거리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채 손님을 기다리는 야채가계, 그리고 몰려든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였다.
이렇게 본격적인 김장철 시즌이 찾아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까지 김장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감감무소식인 형수에게 한통의 전화를 걸었다.
'띠~~~~ 띠~~~~ 띠~~~~'.....
발신 신호가 한참이나 흐른 뒤 형수가 전화를 받는다.
'형수 김장 언제 할 거예요'
'올해는 김장을 안 하려고 그러는데요'
'왜요~'
'김장을 해봐야 그때뿐이고, 김치가 조금만 시면 식구들이 잘 먹지 않아서 그래요'
'그래도 김장은 조금이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요'
'요즘 시장 가면 반찬가게 많던데 그때그때 조금씩 사 먹죠 뭐~'
형수의 뜻은 생각보다 완강해 보였다. 김장을 해야 할 필요성보다 하지 않아도 될 이유를 더 많이 말하는 형수에게 더 이상의 김장 이야기는 무의미할 것 같아 '알았어요' 하는 것으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여기서 형수에게 김장을 알아보려 한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 형집과 우리집은 김장을 같이 해왔고. 형수네 김장이 곧 우리집의 김장과도 같았다. 그래서 형수에게 여부를 물었는데 김장을 아예 하지 않겠다니 괜한 서운함이 들었다.
<MBC 나 혼자 산다 스틸컷> '이런 기분 뭐지?~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만날 약속을 해놓고 깨져버린 그런 섭섭함이랄까?
사실 나는 김장을 해야 한다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김치가 시었건 그렇지 않았건 김치를 좋아하는 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김장김치가 시간이 흐르고 숙성이 되어 묵은지로 변했을 때 그 쓰임새가 무궁무진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묵은지의 대중적 활용도를 예를 살짝 들어본다.
우선 한국사람 누구나 좋아하는 돼지고기 김치찌개에 묵은지만큼 좋은 재료는 없다. 아무리 맛있는 돼지고기라도 생김치는 찌개의 본연의 맛을 낼 수 없지만 푹~ 곰삭은 묵은지는 설사 맛이 약간 떨어진 돼지고기라도 찌개의 맛을 절묘하게 살려 내는 묘한 반전 매력이 있다.
두 번째 '푹~ ' 익은 묵은지에 대파와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냄비에 담고 참치캔 한통을 '탁` 털어 넣으면 고소하고 담백한 참치 김치찌개가 되고, 참치캔 대신에 꽁치 통조림을 넣으면 '꽁치 김치찌개' 고등어 통조림을 넣으면 '고등어 김치찌개가 되는 등... 묵은지 하나면 얼마든지 색다른 맛의 음식을 밥상에 올릴 수 있다.
그리고 애주가들에게 솔깃할 해장국 역시도 묵은지로 만들 수 있다. 묵은지에 물을 붓고 매콤한 청양고추를 잘게 썰어 넣은 다음 간을 맞춘 뒤 콩나물과 함께 '팔~팔~ ' 끓여 내면 해장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북엇국을 밀쳐 낼 만큼 칼칼하고 시원한 묵은지 콩나물국을 맛볼 수 있다.
또한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국민고기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도 묵은지가 빠지면 섭섭하다. 그것은 삼겹살의 느끼함은 묵은지가 잡아 주고, 묵은지의 시큼함을 삼겹살이 중화시켜 줌으로 그야말로 둘 사이에는 찰떡궁합의 세를 과시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묵은지의 활용도는 아주 다양하다. 묵은지 두루치기, 묵은지 등갈비찜, 묵은지 제육볶음, 묵은지 닭찜 등 등.... 이렇게 묵은지는 어떤 식재료와도 적을 두지 않는 착한 식재료다. 그리고 어느 식재료와도 친한 우리 식탁에 있어 최고의 부식재료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더군다나 묵은지에서 나오는 유산균은 면역력 증진에 도움을 주고, 체내에 축적된 지방 소모에도 도움을 주는 다이어트 식품이라는 연구 결과 발표도 있고 보면 비록 형수네가 김장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 집만이라도 김장은 꼭 해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