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무렵 사무실, 업무로 바쁜 팀원들에게 '힘내라'며 피로회복제 한 병씩을 건네주는 팀장, 그리고 이를 건네받아 든 여직원은 다소 지친 표정의 모습으로 본인의 속마음을 넌지시 말한다.
'팀장님… 박O스도 좋지만 직원 좀 더 뽑아 주세요'
어느 제약회사가 TV로 내보낸 광고형 캠페인의 일부다. 캠페인 내용 중 여직원이 말하는 "뽑아 주세요"가 같은 의미인지 모르겠으나 일단 뽑다의 사전적 의미는 '잡아당겨 빼내다'다. 즉 빼낸다는 것은 여러 개 혹은 다수 중 선택을 한다는 얘기와도 같다.
이렇듯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광고의 회사는 직원을 더 '채용을 해야 하느냐 마느냐'는 선택을 여직원을 통해 간접적으로 건의를 받았지만 나의 경우는 지금 '머리 염색을 해야 하느냐 마느냐'의 선택의 시점에 선 것 같다.
젊은 시절 내 머리숱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풍성했고, 머리색도 숱검댕이처럼 새까맸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차츰 나이를 먹어가다 보니 머리숱도 눈에 띄게 줄어들고 흰머리도 옆머리를 중심으로 하루가 다르게 늘어만 갔다.
이렇게 자꾸만 검은 머리가 흰머리로 변해 가는 내 모습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그래서 거울에 비치는 흰머리만큼은 없애 보려고 처음에는 한 올 한 올 핀셋으로 뽑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뽑아낸 흰머리보다 새로 생겨난 흰머리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뽑아내는 것은 이제 의미 없음을 인지했다.
그래서 지금은 염색까지 고려할 지점까지 이르렀다.
얼마 전 이발소를 방문했다. 평소 거울에 비친 흰머리보다 보이지 않는 뒷면의 흰머리는 얼마나 많을까, 내심 궁금했던 나는 이발소 아저씨에게 '염색을 해야 할 정도로 흰머리가 많나요?라고 물었다.
"흰머리상태로 봐선 염색을 권할 정도는 아직은 아니에요"
이발소 아저씨가 '염색을 해야 되겠네요' 말했더라면 가능한 한 염색을 하지 않으려 했던 내 마음도 조금은 흔들릴 수 있었을 텐데 '아직은'이라는 말에 흰머리의 고민은 조금을 던 거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발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잠시 동네 인근 공원에 들렀다. 상큼한 봄바람을 맞으며 공원 여기저기 돌아보는데 민들레 홀씨가 내 시선을 이끈다. 아래서 내려다본 홀씨의 모양새가 마치 사람의 머리를 위에서 바라본 모양과 흡사하다.
그런데 그 모습이 볼수록 매력적이었다. 화려했던젊은 날의 꽃은 지고 비록 중앙의 정수리가 도드라지게 보일 정도로 풍성하지 않은 하얀색의 홀씨로 변했지만 인위적이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참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 민들레 홀씨를 보고 잠시 생각해 봤다.
사람또한 세월의 흐름과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찾아온흰머리, 이 모습이싫다고 인위적인 염색으로 꾸미지 않아도 민들레 홀씨처럼의 자연스러움이 어쩌면 더 아름답고 매력적일 수 있다는 생각에 굳이 흰머리 염색의 과도한 집착은 하지 않기로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