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여유롭게 기다린다. 그 시간이 오전 11시경, 기온은 20도가 채 되지 않는 쾌청하고 선선한 날씨다. 버스 도착 시간을 보니 조금 더 기다려도 되는 시간이다. 잠시 여유를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보니 유난히도 푸르고 높다. 그 아래로 솜사탕 같은 새하얀 구름이 우유자적 떠다니는 모습이 어찌나 보기 좋던지 잠시 넋을 잃고 한참을 처다 봤다.
'살다 보니 참 이런 날도 있구나, 날씨가 너무 좋다'
그러고 보니 날씨도 딱 우리 인생사 같다는 생각이 문뜩 든다. 어떤 날은 비바람 치고, 어떤 날은 살갗이 에이듯 춥다. 어떤 날은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덥기도 하지만 이를 참고 견디다 보면 오늘 같이 좋은 날도 있으니 어찌 우리네 인생과 닮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어 있는 동안 내가 기다리던 마을버스가 정류장에 멈춰 선다. 출퇴근시간과는 정반대로 몇 안 되는 승객의 버스 안이 평화롭고 여유롭기만 하다. 적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차창문을 열어 본다. 때 마치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내 얼굴을 고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 바람결 따라 버스도 출발해 다음 정류장에 도착한다. 그곳 정류장에 승차하려는 승객을 딱 한 분이다. 다소 마른 체격에 허리가 많이 굽은 8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할머니다. 지팡이를 손에 쥔 할머니는 힘겹게 버스에 올라타려 한다. 그때 버스기사분께서 다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다그친다.
"할머니 빨리 타세요, 시간 없어요"
할머니의 전반적인 신체적 조건으로 보아 빨리 타라고 재촉할 성질의 것인지 다소 의아하다. 오히려 '넘어지면 위험하니 천천히 올라타세요?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더욱이 많은 승객이 줄 서 기다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출퇴근 시간도 지나고 다소 여유로운 시간임에도 기사분은 왜 보통의 상식에 반하는 행동을 하시는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카드도 안 가지고 다니세요, 요즘 누가 현금을 내요,
기사분의 언짢은 재촉에도 오히려 미안하다는 표정의 할머니께서 카드가 아닌 현금으로 요금을 내려 하자 그 기사분이 하시는 말씀이다. 더군다나 할머니께서 천 원짜리 한 장을 내고, 천 원짜리 한 장을 더 내려 하자 '됐어요, 그만 내세요,라며 신경질 적인 반응과 함께 "끼익~끼익~" 기어 변속을 거칠게 하고는 다음 정류장을 향해 내 달리는 기사분을 향해 어느 승객이 나지막하게 전하는 말이 침묵의 버스 안에 울임이 되어 퍼진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 들고 늙을 수밖에 없어요,
마을버스 운전이 그 어떤 버스보다 힘들 거예요, 불과 몇 km 도 채 안 되는 정류장의 간격, 출발하려고 하면 또 멈춰 서야 하는 노선을 다람쥐 채 바뀌 돌 듯 하루종일 돌아야 하는 기사분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더욱이 지금과 같이 나이 드신 어르신을 태울 때가 가장 곤혹스럽다는 것을 알지만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 늙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면 안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