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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창 신부범 May 20. 2019

첫눈에 반해버린 그곳에 영원히 머물고 싶다

해넘이가 환상적인 구봉도 낙조 전망대, 그곳을 소개합니다

여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절기 입하(入夏)도 닷새가 지난날이었다. 혹한의 겨울이 가고 꽃피는 봄이 찾아온 지도 엊그제인가 싶었다. 하지만 벌써 여름이 코앞이었다. 느껴볼 여유도 없이 변해버린 계절로 물레 살 같다는 세월이 실감 났던 그때였다. 며칠 새 때이른 초여름 더위로 지난해 폭염이 올해도 되풀이되지 않을까? 걱정부터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다마호사(多魔好事)라고 했던가,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게 마련인 것이 세상의 이치, 지난해 10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무더위였기에 '올여름은 그런 살인적인 더위는 없겠지?라는 긍정적 마음으로 섣부른 걱정을 털어 내 본 날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아직도 5월의 봄이고 계절의 여왕이었다. 본격적인 여름철로 접어드는 6월이 자그마치 보름 이상이나 남아있으니 성급한 걱정 접어두어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5월을 뜻깊고 알차게 보내기 위해 어디 가볼만한 곳을 찾아 그곳으로 나들이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그곳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썰물 위에 펼쳐진 드넓은 갯벌이었다-(사진 곰밤부리)

지난주 일요일(5월 12일)이다. 우리 3형제 가족은 경기도 안산 대부도에 위치한 '구봉도 낙조 전망대'로 향했다. 구봉도 낙조 전망대는 서울이나 인천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자가용을 이용한 여행은 물론이고, 안산까지 4호선 지하철로 이동할 수 있어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룰루랄라~ 콧노래를 불며 기분 좋게 그곳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썰물 위에 펼쳐진 드넓은 갯벌이었다. 그리고 갯벌 저 너머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캐는 정겨운 모습이 우리를 마중 나오는 듯했다. 그렇게 우리는 구봉도 낙조 전망대로 향하는 초입으로 들어섰다.


갯벌이 발달한 대부도는 맛조개, 동죽 등 조개류가 많이 서식한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물이 빠진 갯벌에 조개를 캐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아무나 들어가 무턱 되고 조개를 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갯벌체험이라는 행사에 일정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코끼리 열차를 타보는 것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사진 곰밤부리)


갯벌에 들어가 갯벌체험을 하는 것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아쉬워할 것도 없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그곳 만의 매력이다. 일단 갯벌 혹은 바다를 배경으로 이어진 해솔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갯벌체험 못지않다.


그날도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즐거움으로 가득 찬 행복함을 느꼈다. 친구와 가족끼리 혹은 연인끼리 모여든 사람들로 인해 해솔길의 분위기는 '화기애애' 그 자체 었다. 그들의 여유롭고 한가로운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 역시 같이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힐링을 얻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이 덜 찾는 한가로운 곳에서 '유유자적' 여행도 나름대로 조용해서 좋을 것이다 하지만 모여든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면서 걷는 여행도 사람 분위기 맛에 괜찮다는 생각이다. 혹자들이 여행의 진미는 생전 모르는 사람들과의 교감이라고 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는 않을까,

탁 트인 해안길을 유유자적 걷는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사진 곰밤부리)

이렇게 한쪽에는 시원한 바다를 배경으로 다른 한쪽에는 5월의 신록을 친구 삼아 걷다 보면 중간중간 운동기구도 만나 심신의 피로도 풀 수 있다. 가다 쉬고 싶으면 잠시 앉아 담소를 나누며 주위의 경관에 기대어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목조 밴치도 만날 수 있다.


이렇게 각종 편의시설까지 갖추고 있는 그곳의 길을 하염없이 걷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관심을 가져 볼만한 '당신의 뱃살은 안녕하십니까?'라는 설치물과 마주 할 수 있다. 얼핏 보면 단순한 것 같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생각되는 설치물로 뜻밖의 소소한 즐거움을 안겨 준다.


이 설치물의 주된 목적은 믿거나 말거나 뱃살의 나이를 알아볼 수 있다는 데 있다. 10대부터 60대까지 센티미터 별로 들어갈 통로가 마련되어 있다. 60대인 26센티미터로도 들어갈 수 없다면 '마음만 훌쭉한 배'로 만족해야 한다. 이도 안된다면 '난 짐승'이 될 수밖에 없다. 그 글귀에서 저절로 미소를 짓게 만든다.

당신의 뱃살은 안녕하십니까?-(사진 곰밤부리)

이곳에서 사람들의 행동을 지켜보다 보면 하나같이 재미있는 현상도 볼 수 있다. 이곳을 처음 접한 사람들이라면 십중팔구는 이 설치물에 관심을 갖고 통로를 한 번씩 '들락날락' 해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나이보다 작은 칸을 선택하고 어떻게든 그곳에 들어가 보려고 안간힘을 써본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한 살이라도 젊어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숨겨진 본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무튼 잠시나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설치물이 '당신의 뱃살은 안녕하십니까? 라다. 어떤 분이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 설치를 했는지 그곳을 한 번이라도 이용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분에게 고맙다 절이라도 해야 될 성싶을 정도로 쏠쏠한 재미를 준다.


이렇게 이런저런 재미를 붙여 그 해솔길을 걷다 보면 비스듬히 솟은 두 개의 바위를 만날 수 있다. 고기잡이를 떠났던 할아배를 기다리던 할매는 기다림에 지쳐서 비스듬한 바위가 되었고, 할아배는 몇 년 후 무사 귀환을 했으나 할매가 그렇게 되고 보니 너무 가여워서 함께 바위가 되었다고 전해져 오는 할매 바위와 할아배 바위가 그것인데 그 가운데로 보이는 해넘이는 서해안 최고의 절경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할매 바위와 할아배 바위 가운데로 보이는 해넘이는 서해안 최고의 절경으로 유명하다고 한다-(사진 곰밤부리)

하지만 우리에게 그 아름다운 절경을 보려면 해가 떨어지는 시간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다소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무작정 그곳을 벗어났다. 원래 진정한 맛집은 시내 중심가보다 외곽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고 하니 혹시 그럴만한 집이 '이 근처에도 있지 않을까, 라는 조심스러운 전망으로 자가용 타고 무작정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100여 미터 전방 앞에서 무엇인가 요란하게 춤을 추워 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니 보니 그에 정체는 막대풍선 모양의 에어 간판이었다. 그에 가슴에는 '후회 없는 한 끼 식사!라는 자신감 넘치는 명찰을 당당하게 달았다. 다른 한 손에는 두루와, 두루와를 연발하고 있었다. 


후회 없는 한 끼 식사! 들어와, 두루와 손님을 안내 하난 에어간판이 귀엽다.

우리는 그 에어 광고 손짓이 귀엽기도 했고 버섯전골도 저녁식사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핏줄을 타고난 형제들이지만 이상하게도 취향. 생활습관. 입맛은 각기 달랐다. 가끔씩 만나 외식을 할 때도 음식 메뉴에 대한 의견 일치를 쉽게 보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날 그 버섯전골집만은 의견 일치를 쉽게 이루어 냈다. 그리고 적당한 자리를 골라 앉았다. 메뉴판을 보니 이 집의 주요 메뉴는 버섯전골, 버섯 소불고기, 버섯 해물전골로 주로 버섯이 밑바탕이 되어 나온 음식이었다. 이 세 가지 메뉴 중 '버섯 소불고기'로 의견 통일을 하고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이트 톤의 예쁜 접시에 깔끔하고 정갈하게 담겨 나온 반찬이 인상적이었다-(사진 곰밤부리)

잠시 후 계란 장조림, 애호박 무침, 우뭇가사리, 연근 등의 밑반찬이 나왔다. 하이트 톤의 예쁜 접시에 깔끔하고 정갈하게 담겨 나온 반찬이 꽤 인상적이었다. 우리의 기준에 의하면 맛집인지 아닌지는 밑반찬만 봐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밑반찬이 나오는 모양으로 보아 이 집 음식 분명히 맛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지금까지 다녀 본 식당들을 보면 밑반찬과 음식 맛과의 상관관계가 상당히 있었음을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이 간 형수는 반찬그릇이 예쁘다며 염불보다 잿밥에 먼저 관심을 갖는다. 남자들이야 그릇에 그렇게 관심이 많지 않다고 하지만 여자들 특히, 주부들은 예쁜 그릇을 보면 그것에 관심을 많이 갖는다고 한다. 그래서 형수의 그런 관심이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았다.

각종 버섯류에 청경채와 양파가 주류를 이룬 재료들이 퐁당 빠진 육수-(사진 곰밤부리)


그리고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만큼 행복한 시간도 또 있을까, 물론, 바쁠 때면 기다리는 시간도 짜증이 날 수 있다. 하지만 그때 우리의 경우처럼 여행 중이고 시간적 여유가 많을 때는 기다리는 시간도 소소한 행복일 수 있다. 그런 기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목이버섯과 팽이버섯 등 각종 버섯류에 청경채와 양파가 주류를 이룬 재료들이 퐁당 빠진 육수에 나왔다. 풍성하게 담긴 소고기 접시도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드러내며 등장했다. 이렇게 나오는 것을 보니 우리 판단에는 소불고기보다는 소고기 버섯 샤부샤부에 가까웠다.


어찌 됐건 우리는 육수를 팔팔 끓인 후 소고기를 그 육수에 살짝 담갔다 익은듯하면 육수에 동동 떠 '살려달라' 애원하는 각종 버섯과 야채에 소고기를 밧줄 삼아 건져 올려 입에 넣고 쩝쩝, 냠냠 씹으니 버섯과 소고기의 조합이 환상적인 궁합이 되어 입속을 주체 못 하게 만들었다.


각종 버섯과 야채, 소고기와의 조합이 환상적인 궁합이 되어 입속을 주체 못 하게 만들어 버린다-(사진 곰밤부리)

청경채 등 야채와의 조합은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었고, 버섯과의 조합은 깔끔하면서도 담백한 맛이었다. 특히 쫄깃쫄깃하면서 '오도독오도독' 씹히는 목이버섯의 식감과 부드러우면서 담백한 소고기의 식감이 어우러진 풍미는 아무데서나 쉽게 맛을 볼 수 없는 특별한 맛이었다.


그리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식사를 하면서 '밑반찬이 좋으면 음식도 맛있다'라는 우리들만의 생각이 또 한 번 들어맞았음을 확인했던 그런 맛집이었다. 이렇게 모처럼만에 모인 3형제 가족이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그 집 문을 나섰다.

일몰 직전에 한 척의 배가 바다에 비친 태양 빛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모습은 환상적이었다-(사진 곰밤부리)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구봉도 낙조 전망대의 볼거리는 해넘이라 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영영 후회할지 몰랐다. 해가 바다에 숨어들기 전에 서둘러 그곳으로 향해야만 했다. 그곳에 도착하니 태양이 황금색 노을이 되어 바다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기 얼마 전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해가 바닷속까지 숨어 들어가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일요일 휴일이 저물어가는 아쉬움보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도 있구나? '천국이 있다면 이곳은 아닐까?라는 황홀함에 흠뻑 젖어버렸다, 사람이 태어나 이런 멋진 광경을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그 장면을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행복했던 날이었다.


더욱이 그날 운이 좋게도 일몰 직전에 한 척의 배가 바다에 비친 태양 빛을 가로질러 지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유명 사진작가 작품에나 나올법한 그리고 풍경화 달력에서나 눈요기로 볼만한 환상적인 장면까지 볼 수 있었다니 로또 맞을 확률보다 더 억세게 운이 좋았던 우리들이었다.

동그란 아치 속 해넘이의 모습은 구봉도 낙조전망대의 백미다-(사진 안산시청)

우리들에게 돌아온 이런 행운을 밥만 먹고 헤어졌으면 어떡할 뻔했을지, 아무리 서울 및 수도권에서 접근성이 좋은 그곳이라고 하지만 제 안방 드나들 듯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여행지다. 더군다나 아무 때나 경험할 수 없는 황홀한 장관까지 보고 나니 다시 찾은 그곳에 잘했다 환호하며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우리는 할매바위와 할아배 바위 가운데로 넘어가는 해넘이도 모자라 그 멋진 모습을 가로질러가는 한 척의 배까지 선물로 받은 우리들이었다. 거기에 구봉도 낙조 전망대의 '화룡정점'인 동그란 아치 속 해넘이까지 감상할 수 있는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이한 우리는 처음 찾은 그곳에 반해 버렸고 그곳에 영원히 머물고 싶은 행복한 그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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