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거창 신부범 Sep 06. 2019

동생의 봄, 그곳에서도 계속됐으면 좋겠다

봄과는 떼려야 땔 수 없는 삶을 살다 간 동생의 안식을 기원하며.

막냇동생과 나, 형, 첫째 동생 4형제는 2016년 4월,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날짜와 비행기표 예약 등 기타 여행 준비도 막냇동생이 했다. 4월 제주도의 봄 여행,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기 마련이지만 우리 4형제는 마냥 기쁘지만 않은 여행이기도 했다.

막냇동생은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짧으면 6개월, 길어야 1년이라는 시한부 상태였다. 항암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동생을 겨우 달래서 한 항암치료 중이기도 했다. 하루가 다르게 몸이 야위어 동생의 상태는 오늘내일이 어떻게 될지 몰랐다. 어쩌면 그 여행이 막냇동생과의 마지막 여행이 될 수도 있어 마음 한편이 무겁기도 했던 여행이었다.

모두가 그렇듯 막냇동생 역시 꽃피는 봄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경북 구미시의 일본 회사에 취직한 동생은 매년 봄, 주말이면 인천 큰형 집으로 놀로 오곤 했는데 그럴때마다 인천 인근으로 봄나들이를 빼놓지 않았고, 그것을 인생의 즐거움으로 삼는 듯해 보였다.

인천 영종대교 건너 바닷가에서 망둥어 낚시를 하며 직장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털어낸 동생이었다. 한적한 강화도 시골 들판에 피어난 야생 봄꽃을 벗 삼아 형들과 떨어진 객지 생활의 외로움을 씻어 내기도 했다 쑥, 민들레, 고들빼기 등 봄나물을 캐는 재미는 막냇동생의 유일한 행복이 아니었나 싶다.

자신의 생이 그리 많지 않게 남아있음을 알았던지 제주도 여행도 4월, 때 이른 초봄으로 잡았다.항암으로 머리가 다 빠지고, 몸이 음식을 거부해 도통 먹지를 못해 뼈만 앙상히 남아 거동조차 힘든 고통스러운 몸상태에서도 봄나들이를 원했던 막냇동생이고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 4형제들만의 특별한 시간을 갖기 원했던 막냇동생과의 제주도 봄 여행은 즐거울 수만 없었지만 기쁘게 보내려고 한 여행이었다. 여행기간 내내 막냇동생은 말기암 환자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평정심을 유지하며 제주도의 봄 여행을 마음껏 즐기는 듯했다.

이런 막냇동생이 있었기에 형들도 개나리, 진달래, 벚꽃 향기에 취할 수 있었다. 제주 봄의 상징 유체 꽃밭에 파묻혀 시간 가는 줄도 몰랐던 것도 막냇동생의 대견함 때문에 가능했다. 에메랄드빛 제주 봄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게 된 것도 막내지만 맏이 같았던 막냇동생의 의젓함에 있었다.

그리고 여행 마지막 날 저녁, 막냇동생이 큰형 집에 오면 그렇게 좋아했던 집밥 같은 한식으로 즐거운 식사를 했다. 그동안 먹는 것이 힘들어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던 막냇동생이 그날따라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여행 과정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얘기를 즐겁게 나누는 사이 저녁은 깊어 갔고 모두들 피곤했던지 잠자리에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가려는데 그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평소와 다르게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웠던 막냇동생이 그것을 모두 게워내고 있었다. 형들이 걱정할까 봐 혼자만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을 막냇동생을 생각하니 마음이 울컥했고, 투병중에도 동생이 했던 일련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상태에서도 형인 나에게 전화를 걸어 큰형 집에 맛있는 거 해놨으니 퇴근하고 이쪽으로 오라고 했던 막냇동생이었다.휴대폰을 산 나에게 이런 경우 당연히 케이스를 선물해 줘야 한다며 모바일 인터넷으로 휴대폰 케이스를 주문한 심성 착한 막냇동생 생각에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와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막냇동생은 형들과 그곳에서 더 있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우리 4형제는 무르익어가는 제주도의 봄을 뒤로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후 힘든 투병생활 끝에 이듬해 봄, 막냇동생은 하늘나라로 갔고, 결과적으로 그게 막냇동생과의 마지막 이별여행이 되고 말았다.

동생은 왜 그토록 봄이 좋아했을까, 하긴 막냇동생은 태어날 때도 봄이었고, 형들과 마지막 여행도 봄이었다. 그리고 하늘나라로 갈 때도 5월의 봄이었다. 봄을 보기 위해 태어났고, 봄이 가기 전에 하늘나라로 간 막냇동생,봄과는 뗄레야 뗄수 없는 막냇동생,그곳에서의 삶도 봄날이였으면 좋겠다.

keyword

거창 신부범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쩨쩨하게,쿨하게의 경계선에서 갈팡질팡하는 남자

구독자 172

작가의 이전글 그놈 전화번호를 온 세상에 공개합니다 화성 8차 사건 수사관들 왜 말이 없나? 작가의 다음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