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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창 신부범 Jul 19. 2019

그놈 전화번호를 온 세상에 공개합니다

고약한 그놈의 전화번호 <010-9728-3950> 꼭 기억 바랍니다

업무로 한참 바쁜 그제 오후였습니다. 책상 위에 놓인 휴대전화의 진동소리가 징~잉~징~요란스럽게 울려댑니다. 액정화면으로 눈길을 돌려보니 떠 오르는 전화번호 발신인의 정보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 만큼 그냥 무시하고 받지 않아도 되는 전화로 치부할까 싶었습니다.


그럴 것이 나는 웬만한 전화번호는 휴대폰에 다 저장을 해 놓은 상태입니다. 일상생활의 사적인 전화번호나, 회사 업무 차원의 공적인 전화번호나, 단 한 번의 인연만으로도 무조건 저장하고 보는 습관 때문입니다. 그런데 발신인의 정보가 없다는 것은 이 전화번호는 내 휴대폰에 저장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나와 관련이 없는 잘 못 걸려 온 전화로 생각하려 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전혀 무시하기도 힘든 전화번호이기도 했습니다. 070 인터넷 전화 같은 뻔한 번호가 아닌 개인 휴대전화 번호이다 보니 비록 내 휴대폰에 저장은 안 되어 있을지라도 어쩌면 업무와 관련이 있는 중요한 전화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받을까 말까? 잠시 고민 끝에 결국 통화 버턴을 누르고 말았습니다. 네~저는 OOO입니다. 그러자 휴대폰 속에서 들려오는 중저음의 중후한 남자의 목소리가 나를 바짝 긴장하게 만듭니다. '여기 서울 중앙지검 OOO 검사인데요,.. 서울 중앙지검 검사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오다니 혹시,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그놈에게서 받은 전화번호 보이스피싱이었습니다.>


점심시간이 지난지도 얼마 되지 않는 나른한 오후, 풀어진 긴장이 바짝 조여들기에 충분한 전화였습니다.'무슨 일이시죠?,라고 묻자 검사라는 분이 이렇게 말을 걸어옵니다. '지금 님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어.. 어쩌고 저쩌고... 이런 얘기를 듣자 마다 아~ 이게 바로 말로만 들어왔던 보이스피싱인가 싶은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이와 동일한 수법으로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는 기사를 이미 봐 왔던 터라 이놈의 전화는 틀림없는 보이스피싱일 거란 직감이 뇌리를 파고 들었습니다. 따라서 더 이상 그놈의 말을 듣고 있을 필요성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말할 것도 없는 보이스피싱이라는 이 생각에 야~이 XXX 야~라는 욕설로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그러고 생각해 보니 육두문자 욕설로만 끝낸 게 너무 아쉬웠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할일도 많다만 그렇게 할 짓이 없어 선량한 사람 등이나 처먹고 사느냐고... 제발 정신 차라고 그 일에서 손 떼고 새 삶을 살라고... 비록 그놈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 정도로 들리겠지만 그래도 따끔한 충고의 말 한마디 해주고 끊었어야 했었는데 그렇지 못해서 분하기까지 했습니다.


또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놈의 목소리를 곰곰이 재생해 보니 미세한 떨림이 섞어 있었던 것 같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알아주는 공권력의 심장부 서울 중앙지검 검사, 그래서 당당하게 검사 목소리로 사칭하고 싶었겠지만 보이스피싱은 엄연한 중범죄라는 사실 앞에 그놈 목소리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이렇게 말로만 듣고 뉴스로만 보아왔던 보이스피싱 전화를 직접 받고 보니 풉~하고 헛웃음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이미 세상에 공개되어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고리타분한 수법으로 나를 속이려 들다니.. 그놈의 한심스럽고 어이없는 배짱에 웃음이 나왔던 것입니다.

<그놈에게서 받은 전화번호를 입력한 결과 '해외 피싱'이라고 등록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동료 직원들에게 털어놨더니 그중 어느 동료는 그놈의 전화번호가 보이스피싱인지 확실이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면서 확인 작업에 들어갔습니다.우선 다음 포털 검색창에 스팸 전화번호를 검색하자 '안심통화 전화번호'검색란이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곳에 그놈에게서 받은 전화번호를 입력한 결과 '해외 피싱'이라고 등록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곧 그놈이 이 전화로 그 누군가에게 이미 전화를 걸어었다는 얘기와도 같습니다. 그리고 그놈의 전화를 받은 그 누군가가 관련기관에 신고해 등록이 된 것으로 보였는데 신고 건수가 무려 4건이나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공식적인 확인 결과로도 내가 그놈에게서 받은 전화는 보이스피싱이 분명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놈은 일말의 두려움도 없이 이 전화를 이용 나에게도 전화를 걸어오는 무모한 용기를 보였던 것입니다. 한번 죄를 저지른 사람이 다시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고 나는 이놈 역시도 그 누군가에게 또다시 이 전화로 사기 칠 가능성이 크다고 봤습니다.


따라서 나는 더 이상 이전화로 보이스피싱을 당하는 억울한 피해자가 없기를 바라는 진정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놈의 전화번호를 온 세상에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바로 선량한 사람들의 피와 눈물을 빨아먹고 사는 아주 고약한 그놈의 전화번호 <010-9728-3950>입니다. 꼭  기억해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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