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전의 일이라 그해가 어느 해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5월 5일 어린이 날였던 것만은 또렷하다. 그때 장을 보기 위해 집 근처 마트에 들렀다. 그런데 마치 어린이날 기념으로 병아리를 증정하는 행사를 펼치고 있었다.
"삐약~삐약~삐약~"
앙증맞게 울어대는 노란 병아리가 너무나 귀여웠다. 과연 키울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다, 두 마리를 집으로 가져왔다. 그런데 너무 어린 녀석들이라 세심한 정성을 쏟아야만 했다. 먹이는 병아리가 쉽게 먹을 수 있는 좁쌀 같은 곡류에 각종 채소 새싹을 곁들여 주었다.
그런데 병아리를 키우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온도였다. 병아리에게 맞는 적정 온도가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금방 컨디션 이 안 좋아 보였다, 하루는 눈꺼풀이 거슴츠레하게 내려앉은 채 꾸벅꾸벅 졸기만 하는 녀석을 이대로 놔두었다가는 곧 죽겠다 싶어 전기밥솥 위의 따뜻한 온도를 이용해 간신이 살려 내기도 했다.
그리고 한 녀석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잘 일어나지도 못하고 잘 먹지도 못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살려 내려한 내 진심이 통했는지 아니면 병아리 스스로 살겠다는 의지 때문이지 약 열흘 만에 스스로 걸어 다니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은 두 녀석은 하늘 높이 치솟고 땅 아래로 축 쳐진 새빨간 벼슬을 뽐내는 늘름한 수탉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다 큰 수탉은 귀여운 모습은 온 데 간데없고 하는 짓마다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미운 수탉뿐이었다.
그리고 어찌나 먹어 대던지 이틀이 멀다 하게 치워야 하는 배설물은 번거로움을 떠나 건의 노동 수준이 되었고, 눈처럼 날리는 닭비듬은 난제 중에 난제였다. 무엇보다도 새벽이면 어김없이 울어대는 "꼬끼오~ 소리는 그야말로 민폐 중에 큰 민폐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로 인한 민망함과 죄송함은 모두 내 몫이 되고 말았다. 이쯤 되면 이 두 녀석과 같이 살고 싶어도 함께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에게 피해를 줘가면서 키운다는 것은 나 스스로도 용인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핸드폰으로 저장되지 않는 전화번호가 떠 올랐다."받을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통화버턴을 눌렀다. 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는 "거기 oooo 3동 301호 주인 되시죠, " "여기 경찰인데요, 혹시 집에 닭 키우시나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경찰이 어떻게 우리 집에 닭까지 키우는 것을 알았을까, "네~ 그런데요, "선생님 주민들로부터 민원이 들어왔어요, 닭이 새벽마다 우는 바람에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하네요, 빨리 처리를 하세요, "라고 하는 것이었다.
경찰에서까지 직접 전화가 온 이상 이제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남원 시골에 계시는 매형에게 가져다줘 버릴까, 아니면 이렇게 해야 하나? 저렇게 해야 하나?... 이런저런 고민 끝에 결국 지인이 운영하는 닭농장에 두 녀석들을 데려다주는 것으로 두 남자와 이별을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니 키운 정, 고운 정. 미운 정이 다 떠나간 우리 집은 허전한 기운만이 감돌았기에 조금은 쓸쓸하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