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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창 신부범 Dec 19. 2019

지하철 그때 그 할머니가 되고 싶다

2020년 새해 바람과 다짐

콩나물시루보다 더한 지하철,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승객 개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관성의 법칙만 적용되는 곳이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누군가를 밀수도 있고, 밀릴 수도 있다. 누군가의 어깨를 칠 수 있고, 치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의 신발도 밟을 수 있고, 밟힐 수도 있다.


이런 악조건의 지옥철 안에 기분 좋은 승객이 있을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임을 고려 다들 자기 최면을 걸어가며 참고 참아가며 목적지 도착만을 기다린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서도 밀고, 밟고, 치는 문제로 승객 간 '옥신각신' 언성을 높이는 경우를 우리는 더러 목격하게 된다.


그제 저녁 퇴근길 역시도 이와 유사한 문제로 승객 간 다툼이 있었다. 두 승객은 서로 ;티격태격' 네 탓 공격만을 하며 벌이는 실랑이는 한동안 계속됐다. 누군가가 한발 물러섰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던 나에게 몇 해 전 지하철의 그 할머니가 문뜩 생각나기도 했다.


그날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잠 속으로 빠저 들었다. 하지만 얼마 못가 깨고 말았다. 주위가 소란스러워 눈을 떠보니 파스를 파는 아저씨의 목소리였다. 아저씨는 자신이 가지고 나온 파스가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소개가 된 효능이 아주 우수한 파스라며 상품설명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면서 '실제 사용한 사람이 이 파스를 붙이고 큰 효과를 봤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이 말에 호기심이 갔던 걸까, 주위의 어느 할머니가 '그 파스 한번 봅시다' 라며 아저씨를 불렀다. 아저씨는 할머니에게로 다가가 파스를  할머니 손에 쥐어 주며 처음과 마찬가지로 파스의 효능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손에 쥐어진 파스를 요리 저리 살펴보더니 파스가 마음에 안 들어서일까, 아저씨에게 도로 건네 주려했다. 그래도 아저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 파스 정말 좋은 파스예요' '붙여 보시면 효과를 톡톡히 보실 거예요'라며 할머니에게 재차 권하는 것이었다.


할머니도 '아저씨 미안해요  다음에 살게요' 라며 아저씨의 강력한 권유를 거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저씨는 '할머니 왜 그러세요 이 파스 정말 좋은 건데 이번 아니면 기회가 없어요' 라며 거듭 살 것을 권했다. 할머니도 '다음에 살게요'라며 끝내 사양했다.


한 장이라도 팔 요량으로 열심히 상품설명을 했는데 그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그 아저씨는 심기가 불편했던지 할머니에게 쥐어줬던 파스를 사납게 낚아챘다. 그러면서 '다음은 무슨.. 할머니? 사람 가지고 놀아요'라는 말을 통명스럽게 내뱉고는 다음 칸으로 이동해 버렸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아주머니 한분이 그 아저씨의 말과 행동이 너무 심했다고 느껴서일까, '뭐 저런 못된 아저씨가 있어?.. 할머니? '저렇게 싹수없게 구는 놈을 그냥 나둬요'  '불러서 혼쭐이라도 내야죠'라고 할머니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나 두세요  얼마나 팔고 싶었으면 저렇게까지 하겠어요  사줘야 되는데 못 사준 내가 오히려 미안하죠' 라며  웃어넘기셨다. 그 아저씨가 할머니에게 한 행동과 말은 누가 보아도 무례하기 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못 사준 자신 탓이라고 여긴 할머니의 배려 깊은 마음이 돋보였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제 저녁에도 지옥철의 상황이 상황인 만큼 둘 중 누군가가 먼저 '내가 잘못한 거 같아요'라며 한발 물러 섰더라면 그 오랜 시간 동안 서로 얼굴 붉히며 실랑이를 벌이지 않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사실 사람끼리 부대끼는 세상에 사람 간 때론 옳고 그름의 문제로 다툴 때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할지 모른다. 문제는 그럴 때마다 어떻게 처신을 하느냐에 있다. 설사 상대측이 잘 못했더라도 그때 그 지하철의  할머니의 경우처럼 '내 탓이요'라고 먼저 고개를 숙인다면 팍팍한 세상이 좀 더 유연해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다.


이제 조금 있으면 2019년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2020년 새해가 밝아 온다. 밝아오는 새해에는 모든 사람들이 넓은 아량으로 네 탓보다는 내 탓으로 서로 간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행위를 최소화해 보는 게 어떨까 싶어 진다. 그래서 쉽지는 않겠지만 나부터 그때 그 지하철의 할머니가 되어 보리라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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