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혐오에 대한 몸부림
올림픽대로를 달리다가 표지판에 '종합운동장'방면 안내가 계속 나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종합운동장은 영어로 sport complex라고 되어있었다. 운동에 대한 복합적인 시설이라는 의미 같은데, 나는 단어 'complex'에 꽂혔다. 콤플렉스.
나는 체중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체중의 숫자는 아니고, 살 또는 몸의 외형 같은 것에 대한 콤플렉스다. 한국 사회는 지독하게도 비만인에게 가혹하다. 해당 비만인의 나이가 적든 많든 중요하지 않다. 표준을 정해놓고 그 표준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가 비난의 강도와 비례한다.
나를 처음 품은 어머니는 나를 잉태한 그 순간부터 출산할 때까지 약 10개월 동안 입덧을 했다. 어머니는 임신한 상태에서도 깡말라갔고, 아마도 태중의 나도 함께 굶주렸던 것 같다. 태어나자마자 나는 밥투정은커녕 잠을 자면서 베지밀을 12병을 마셔재끼는 신기를 보이며 태중에서의 굶주림을 보충해 나아갔다. 어릴 때부터 배에 튜브를 두른 듯 통통했고, 국민학교 2학년쯤 되었을 때에는 소고기집에서 3인분+된장찌개+밥을 해치웠다. 그러고 보면 내 인생에서 갓 태어났을 때를 제외하면 말랐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늘 표준체중, 표준체형을 넘어섰다.
나는 가을이 너무 싫었다. 학교에서는 우리나라가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것을 자랑삼아 애국심을 고취시키려고 했지만, 나는 봄, 가을이 없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봄엔 황사와 꽃가루 때문에 천식 하느라 힘들었고, 가을에는 젠장, 그 지랄 맞은 운동회가 있었다. 운동회 때가 되면 짝을 지어 꼭두각시 춤을 춰야 했다. 그건 참을만했는데, 기마전, 박터뜨리기, 줄다리기 등등 백팀, 청팀 나눠서 적을 만들고 어린아이들을 경쟁시키고 싸움을 부추겼다. 다들 정신이 정상이 아니었다. 그중 내가 제일 힘들어했던 것은 빌어먹을 100m 달리기, 장애물 달리기, 이어달리기 같은 것들이었다. 어린 나는 달리기를 잘하지 못했고, 달리기 시간이 될 때마다 자존감이 땅바닥을 쳤다. 달릴 수 없는 장애가 있는 친구들에게 그 시대는 오죽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지능이든 체력이든 운동능력이든 무엇으로도 사람을 줄 세우고 우월을 가리는 것은 인간이 하면 안 되는 짓이다.
마찬가지다. 나는 인간의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억누르는 것에 대하여 저항한다. 외모, 장애여부, 재정상황, 직업, 성별, 성정체성, 나이, 출신지역, 학력, 종교 등에 근거해서 사람을 섹터화하고 그 섹터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차별을 가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한다. 우리는 효율의 논리에 너무도 많이 젖어있어서, 무리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누군가를 차별할 때에 그에 '합당'한 이유를 들이대는 대에 익숙하다. 그러나 차별에 그 어떤 이유도 합당하지 않다. 대만에 갔을 때 정말 놀랐던 것은 길거리에 장애인이 많았고,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였다는 것이다. 대만 사람들은 장애인들을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들로 인식했고, 그들과 살아가는 속도를 맞추기에 합의를 한 것이다. 환율과 상관없이 대만은 대한민국보다 선진국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토론회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해 이야길 할 때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며 차별금지법의 시급한 도입에 대해 한 걸음 물러선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다. 현실적인 이야기일 수 있겠으나, 옳고 그름에는 합의가 아닌 설득과 회유가 필요한 것이다. 설득의 대상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그러니까 옳지 못한 주장을 하는 보수 개신교계와 극우세력에 대한 설득과 회유를 하는 것이 권력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수많은 진보주의자들도 현 정부만 조준할 것이 아니라 힘을 모아 차별금지법 반대세력도 비중 있게 타겟팅해야한다고 본다.
찐 부자들은 성격이 좋다고 한다. 잘 베풀고 성격이 어디 하나 모난 구석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듣기도 한다. 그들은 그들의 잠재성이 억압당한 경험, 즉 차별의 경험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면 누구나 그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찐 부자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같은 잠재성 회복의 상태로 모두를 끌어올리는 것이 한국 사회에 득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말이다. 한 편, 그와 같은 일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차별의 교차성을 이해하고 연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인재 또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본다. 티리온 라니스터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여가부 장관과 소통하는 상상을 해본다.
나는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대중목욕탕 및 수영장에 가지 못했다. 모두가 나의 몸을 보고 비웃을까봐 공포스러웠다. 어느 날 나의 몸, 나의 존재를 긍정해 주는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과 함께 나는 달밤에 냇가에서 옷을 벗어던지고 놀 수 있었다. 그때의 자유를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차별과 혐오의 옷을 벗어던지고 자유의 햇살아래 춤을 추고 사랑의 강물에 빠져 유영하길 바란다.
오늘은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있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