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경계에 선 존재들
싸움이 났다. 전쟁터는 한반도. 지금 그 싸움은 남부지방에서 한창이다. 투명한 피를 철철 흘려댄다. 사람들은 일 년에 한 번씩 나는 그 싸움에 혹시 홍수라도 날까, 하수도건 하천이건 정비를 열심히 한다. 북태평양 기단과 오호츠크해 기단 중에 결국 오호츠크해 기단이 패배하고 물러나겠지만, 매년 지면서도 끈질기게 엎치락뒤치락 싸우다가 물러난다. 그리고 북태평양 기단에 점령당한 한반도는 곧 한증막처럼 절절 끓겠지.
며칠 전 이놈의 싸움이 수도권에서 한창일 때, 나는 제주도에 피난 가 있었다. 후텁지근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점령지에서 수영장에 들어가 아이들과 시원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전선을 뚫고 경기도로 돌아왔을 때, 전선(戰線)은 남부지방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순식간에 오호츠크해 고기압 점령지로 돌아온 나는 배신자 소리를 듣기 싫어 ‘나는 본래 여기 사람이오!’ 하면서 고개를 빳빳히 들고 동네를 활보한다. 비가 그친 우리 동네는 무슨 축제를 한다고 떠들썩하다.
북한의 무슨 댐이 두 기단의 싸움으로 수문을 개방했단다. 홍수가 났고, 전염병이 창궐했단다. 마실 물이 없단다. 전쟁은 늘 그렇다. 약자에게 너무나 가혹하다. 비행기를 타고 전쟁을 피해 날아간 나는 맑은 물이 가득한 수영장에서 토끼 같은 새끼들과 어푸어푸 놀이를 했지만, 초근목피하는 북한에서는 매년 벌어지는 두 기단의 전쟁에도 대비는커녕 또 어린 생명의 목숨을 역귀(疫鬼)에게 빼앗길까 노심초사한다.
장마전선. 그 이름은 누가 지었나. 가혹하신 하늘님이 내리는 비에 전쟁같이 고난 당하는 민초들이 지었겠지. 땅에서는 임금과 권력자들이 괴롭히는데, 하늘님마저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홍수 내서 집 떠내려가고, 목숨마저 빼앗으려고 달려드는 것 같아 원망스러웠겠지. 그래서 내리는 비가 전쟁(戰爭) 같고, 전선(戰線) 같았겠지.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올해 이 전쟁에서는 제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주소서. 저 북녘땅에도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