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를 기리며
다음 주면 벌써 내 친구 G의 3주기이다. 2022년 7월도 지금처럼 더웠다. G가 살던 제주의 구옥은 에어컨도 하나 없이 더욱 더웠다. 그와 함께 보냈던 마지막 밤이 생생하다. 그 더운 집안 꿉꿉한 장판에 앉아, 건장한 성인 3명이서 돈이 없어서 냉채족발 중짜를 시켜먹었다. 평소 좋아하지도 않던 냉채족발이 왜 그 날 따라 그렇게 맛있었는지, 마파람에 게눈감추듯이 후루룩 먹어버리고는 안주가 떨어진 우리는 난감했었다. 그러자 G가 끓여온 부대찌개라면. 정말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라면이었다고 기억된다.
그 날 이었나? 그 전 술자리였나? G는 바퀴벌레도 생명이기 때문에 함부로 죽이면 안된다고 했었다. 그 때 나는 처음에는 G의 주장이 농담이거나, 일부러 몽니를 부리기 위해 억지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들어볼수록 G는 진지했었다. G가 예전에 주점을 운영했을 때, 주점 바닥에 바퀴벌레가 지나가면 그걸 보고 손님들이 컴플레인을 종종 걸었다고 했다. 그러면 G는 태연하게,
“그냥 두세요. 쟤들이 먼저 살고 있던 곳에 우리가 들어와 사는 거에요.”
그는 바퀴벌레의 영역을 침범해 살고 있는 상황에 진심으로 미안해했던 것 같았다. 어쨌든 G의 주장에 당시엔 공감 못했었는데, 그가 저세상으로 떠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언행이 일리 있었음을 되뇌게 된다.
나는 내 피부에 벌레가 앉는 것을 극도로 힘들어한다. 그 원치 앉는 접촉을 피하기 위해서 캠핑을 할 때에도 밤이 되어 랜턴 빛에 벌레가 몰려오려고 하면 나는 방충망 안에 들어가서 잠을 청한다. 요즘엔 차박을 해서 차량 창문을 방충망으로 감싸고 잔다. 그런데 굳이 거기를 비집고 들어와서 나와 접촉을 꾀하는 녀석들이 있다. 나는 검지로 그들을 압살하고 휴지에 슥 닦는다. 내 영역을 침범한 것에 대한 응징이다. 해가 뜨고 캠핑 자리를 정리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보면 꼭 앞 유리창에 붙어서 탈출 못한 녀석들이 2~3마리는 있다. 나는 그들도 재빨리 압살한다. 내가 방충망까지 쳐가면서 들어오지 말라고 의사표시를 강력하게 했음에도 경계를 넘어 들어온 대가이다.
사실 나는 그들이 거주하고 있는 그들의 영역, 숲속이나 강가에 들어서도 아무 제지를 받지 않는다. 내가 더 힘이 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어떤 방법으로든 그들의 영역에 들어서도 뭐라 하지 못한다.
내가 땅을 매입해서 건물을 짓고 살아도 그 땅에 살던 두더지나 지렁이는 쫓겨나면서도 아무 말 못하는 것이다.
미군이 평택에 430만평을 ‘캘리포니아 주’로 명명하더라도 미군 힘이 더 세니까 그곳에 살던 주민이나 누구나 아무도 대항할 수가 없다.
내 친구 G는 그렇게 사라져버린, 묻혀버린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사람이었다.
권력이라는 것은 거대해진 몸이다. 자신의 행동반경이 어디까지인지 명확히 파악하고 조심스레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해도 권력자가 한 걸음 뗄 때마다 그 밑에 깔리는 무수한 생명들이 있다. 몇 해 전 어느 방송에서 한 스님이 나왔는데, 그 스님은 ‘사람이 자면서 1년 동안 거미 8마리를 먹는다.’는 소문을 듣고(진위여부를 떠나), 혹시 자신이 자면서 살생을 하지 않을까 조심하는 마음으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잔다고 했다. 자신의 힘이 누군가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염려에 자신의 행동을 세심하게 조절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트럼프 같은 스트롱-맨의 시대라고 한다. 그는 생명의 꺼짐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미사일을 날리고 트위터를 날린다.
예민하게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친구 G가 그립다. 울산에 G의 납골묘에 가서 냉채족발을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