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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에 대하여

적절한 대비와 대응훈련

by 곤 Gon

요즘 ‘태어난 김에 세계 일주’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네팔 ‘포카라’에 도착한 일행들은 ‘디즈니랜드’를 어설프게 카피한 일명 ‘디질랜드’에서 놀이기구를 탄다. 디질랜드의 놀이기구들은 모두 파란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고, 철 부딪히는 ‘끼익 끼익’ 소리가 끊이지 않으며, 한결같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인다. 주인공 ‘기안84’는 바이킹 놀이기구에 탑승했는데, 너무 무서운 나머지 큰 소리로 ‘스타압!!’을 연달아 외치며 절규한다. 하지만 놀이기구는 정해진 시간을 다 운행하고 나서야 멈추었다. 바이킹 놀이기구에서 내린 기안84는 바로 구토를 하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나 같은 만화가는 상상력이 지나쳐서 이런 상황에서 최악을 상상하기 때문에, 일반인보다 공포가 훨씬 커.”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얘기했다. 기안84는 헬리콥터를 타는 장면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하며 자신이 겁먹은 이유를 설명했었다.



영화 ‘올드보이’를 보면 배우 오달수가 배우 최민식의 치아를 상하게 하는 고문 장면이 나온다. 최민식이 공포에 질린 나머지 패닉에 빠지자, 오달수는 웃으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상상을 하지 마! 졸라게 용감해질 수 있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상상하다 보면, 그 상상이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할 때가 있다. 그 불안은 인간을 움츠러들게 한다. 가슴을 잔뜩 모으고 복지부동하게 하여 닥칠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비하고, 혹시 모를 충격에 대비한다. 한 걸음 앞이 어떨지 모르니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멈추게 하는 보수성을 띄게 한다.


‘김어준’이라는 시사 전문 방송인은 ‘닥치고 정치’라는 책에서 ‘보수란 겁먹은 짐승의 반응’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보수세력을 일부러 깎아내리려고 좀 거칠게 말한 것 같지만, 그 근저의 뜻에는 동의한다. 그래서 보수적인 사회는 공포를 끝없이 자극한다.


전쟁과 같은 극심한 환난을 겪은 세대는 자기 인생에 정말로 일어날 줄 몰랐던 최악의 상황을 실제로 겪었으니, 세상을 살면서 그와 같은 일을 다시 겪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대비하고 또 대비하며 움츠러들고 보수적으로 사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한 ‘불안’은 인간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하게 하는 일종의 방어체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불안’이 순기능을 넘어 역기능을 할 때가 있다. 미래에 대한 합리적인 예상과 상상을 뛰어넘어 ‘망상’의 수준까지 달음질할 때에, 인간은 합리적인 수준의 반응을 넘어서는 과잉 대응 또는 과잉 회피를 한다.

그러므로 상상력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불안을 자기 최면이나 외면이나 약물 등을 통해 무조건적으로 잠재우는 것이 아니다. 적당한 수준의 불안을 가지고, 실제적으로 불안의 상태가 안정의 상태로 옮겨갈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합리적인 전략을 짜야한다. 대비를 하고, 도망도 치고, 맞서기도 하는 등의 대응을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을 한 본인을 스스로 지지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이러한 과정에 자신의 상태와 결정을 객관적으로 보고 검증해 주고 검토해 줄 수 있는 친구, 상담가, 멘토 등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시 ‘태어난 김에 세계 일주’에 바이킹 놀이기구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기안84와 함께 바이킹에 동승한 ‘덱스’는 바이킹 놀이기구 끝에 서서 놀이기구가 높이 올라갈 때 마다 환호성을 지르며 마치 날아갈 듯 상황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UDT출신이라고 한다. 나는 병영문화를 지독히 싫어하지만, 나의 기호를 내려놓고 생각해보자면, 덱스는 극한의 훈련들을 받으면서 고난에 대한 대응능력을 키워 온 사람 같다. 이를 통해 고난과 시련에 대한 ‘승리와 극복의 경험’들을 차곡차곡 쌓아온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기에 어떤 환난이 와도 그것은 승리의 경험을 또 다시 쌓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도전을 망설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어찌보면 훈련을 통해 적절하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미래에 대해 상상하고 불안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이 계발된 것 같기도 하다.


삶에 있어서도 이러한 승리의 경험이 많은 길잡이들이 필요하다. 셰르파처럼 히말라야를 수없이 올라서 그 길을 훤히 꿰뚫어 알고 있고, 어디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어떻게 넘어갈 수 있는지 노하우가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비정상적인 불안에 휩싸여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고 자기 파괴적인 대응들을 할 때에, 그들을 진정시키고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선배가 필요하다.


인류 전체적으로 보면 불안은 핵을 개발하게 만들었고, 상호확증파괴 상태에 이르게 만들었다. 타자에 대한 몰이해와 오해에서 나온 비정상적인 불안, 그리고 그 불안이 만들어낸 비합리적인 대응체계는 인류가 서로 돕고 사랑하며 협력할 가능성을 봉쇄하고 ‘힘에 의한 평화’라는, 말도 안되는 사상에 물들게 만들었다. 대화하고 서로 사랑하고 인류, 더 나아가 세계, 지구 번영적인 노력을 하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은데, 비정상적인 ‘힘에 대한 숭배’에 모두 내달리게 만들고 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이라는 실패를 맛보았기 때문에 타자, 타 국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참혹한 실패의 경험을 오히려 반전시켜 서로를 사랑하는 승리의 경험으로 재탄생시킬 수 없을까?


에휴, 일단, 나부터 망상적인 불안을 걷어내고 적절히 대응하고 힘을 길러 시련에 대한 승리의 경험을 축적해야겠다. 어렵겠지만. 차근차근.



겁먹은 짐승처럼 웅크리고만 있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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