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영화 '퍼펙트데이즈'를 보고

by 곤 Gon

본 글은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 대한 결말 및 스포를 다량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현실을 잊게 해 줄 위안을 얻고자 애를 쓴다. 외진 강가를 찾아가 멋진 일몰을 보고, 틈이 나면 뉴스를 보면서 정치인들을 욕하며 잠시 현실을 외면한다. 유튜브로 핑계고를 켜놓고 유재석을 보면서 내 친구와 이야기하는 착각을 느끼며 외로움도 잊는다. 하지만 신용카드 결제 대금 빠져나가는 날과 양육비 지급일은 착실하게 성큼성큼 다가온다. 일몰을 보고 돌아오는 길, 연료 부족을 알리는 램프가 켜지고, TV를 끄면 검은 화면에 초라한 내 모습이 반사된다. 현실에서 눈 돌리지 말라는 알람이 이곳저곳에서 울려댄다.



맞다. 조만간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한다. 내 삶은 외면할 수도 없고 방치해서도 안된다. 착실히 운행해야 한다. 알바몬에서 일자리를 알아본다. 허리 디스크로 힘든 육체노동은 못하고, 정신질환으로 텔레마케팅 같은 감정노동은 제외한다. 할 만한 일이 없지만 계속 찾고 또 찾는다. 경력 단절자의 비루함이 자존감을 깎아 먹는 나날이다.



그러던 와중에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봤다. 주인공은 영화 첫 씬부터 관객에게 미소를 띤다. Tokyo Toilet이라는 글씨가 등에 큼직하게 적혀있는 점프슈트를 입고 문을 나서면서 그는 날씨를 살피며 씨익 웃는다. 자판기에서 캔 커피 하나 뽑아 마시면서 청소도구가 가득한 다마스에 올라타고 출근을 하며 카세트로 명곡을 틀어놓고 또 씨익 웃는다. 하는 일의 귀천에 상관없이 ‘높은 자존감이 퍼펙트한 하루를 만든다’는 류의 교훈이 녹아있는 영화인가 생각했다.



그는 끊임없이 위를 올려다본다. 점심을 먹으며 나무를 올려다보고, 운전하면서 굳이 고개를 내밀어 랜드마크인 것 같은 타워를 올려다본다. 고된 하루를 보냈어도 루틴을 애써 지키면서 새벽마다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본다. 날씨 여부가 그의 미소를 좌우하는 것이 아니었다. 비 오는 날도 특유의 긍정력을 발휘하면서 럭키비키가 생각나게 하는 표정으로 미소를 짓는다. 영화상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중 ‘위기 단계인가?’하는 생각이 드는 장면 - 예를 들면 청소 동료 다카시의 여친이 볼에 키스하는 장면 – 이 나올 때에도 주인공은 목욕을 하면서 그냥 웃어넘기면서 싱겁게 지나간다.



그러다가 주인공이 무너지는 순간이 온다. 그것은 바로 조카의 가출로 인해 동생과 재회했을 때이다. 가족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 순간 이후 주인공은 더 이상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는다. 애써 지켜오던 루틴이 다 무너지고 미소도 더 이상 짓지 않는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단골 주점 여주인의 썸도 목격하게 된다. 피우지 않던 담배까지 시도하며 콜록댄다.



그제야 그가 왜 그렇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는지 이해가 갔다. 아무도 모르고 이해 못 하지만 그는 여전히 고통 속에서 살고 있었고, 고통이 찾아올 때마다 눈물을 참듯이 고개를 들어 올린 것이 아니었을까?



묵언수행하는 승려 같았다. 답답해 보일 정도로 말을 안 하는 과묵한 사람이 되었고, 동물과 달리 울지도 않고 말도 없는 나무를 유일한 친구로 삼아, 자신의 분신처럼 집에 데려다 키우고 보살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청소도구를 스스로 제작까지 하고, 거울로 변기 밑을 들여다보면서까지 꼼꼼하게 청소하는 모습은 일종의 수행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정확한 루틴 속에 배치함으로써 세상 번뇌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으려는 승려의 모습이다.



그러다 동생과의 재회로 그 모든 노력이 한순간 무너지고 다시 번뇌에 가득 차게 되었지만, 마냥 앉아 울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삶은 지속된다. 그가 담배를 피우다가 다시 고개를 떨구고 바닥을 쳐다봤는데, 강물에 그가 늘 올려다보던 타워가 비쳤다. 그게 회복탄력성을 자극한 것이었을까? 다 큰 어른끼리 그림자밟기를 하면서 훌훌 털어내고 다시 수행모드로 돌아간다. 다시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고, 커피를 두 개 뽑는 새로운 루틴, 새로운 동료와 함께 수행 시즌2가 시작된다.



마지막 장면이 백미인데, 번뇌의 눈물을 미소로 밀어내려는, 그러니까 감정도 의지로 굴복시키려는 그의 간절한 운전 씬이 나름대로 ‘완벽한 하루’라는 배를 건조해서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선장 같았다.



나도 더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삶이 밀려온다. 수행하듯 배를 띄워야겠다. 내 배는 뭐라고 이름 붙일까?

매거진의 이전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