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사실주의

싫어어

by 곤 Gon

약 5세에서 6세 정도 되었을 때 이야기다. 교회에 갔는데 어른들은 예배를 드리고 나는 사촌 동생과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동생이 엄마 역할을 하고 나는 아기 역할을 하게 되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말 못 하는 아기의 모습을 묘사했다. 진짜 아기 울음소리를 감쪽같이 모사했던 것 같다. 그렇게 아기 흉내를 내는 나를 보면서 동생은 당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빠! 진짜 아기 같아. 울음소리가 정말 똑같아! 우와~!”


우쭐해진 나는 더욱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아기 울음소리를 내었다.


어느새 예배가 끝났고, 어른들이 예배당에서 나왔다. 그때 동생이 어떤 어른을 붙들고는


“오빠가 정말 아기 목소리를 똑같이 내요! 정말 신기해요. 정말 똑같아요!”


이에 그 어른은


“그래, 어디 한번 해봐.”


라고 했고, 나는 최선을 다해 아기 울음소리를 냈다. 내 혼신의 연기를 감상한 그 어른은 한 마디의 감상평을 내뱉었다.


“염소 같네.”


나는 엄청난 수치심과 모멸감에 휩싸였다. 염소 같다니... 염소 같다니...

어디 도망갈 구멍이라도 있었다면 그 구멍이 단 5cm였다고 하더라도 내 온몸으로 파고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을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무언가를 똑같이 모방하는 일에 대한 혐오가 생겼다. 어느 날 물방울 모양의 사진인지 그림인지 구별이 안 되는 극사실주의 회화작품을 보았을 때에, 다른 사람들은 정말 똑같이 묘사한 그 실력에 경탄했지만, 나는 당시 이유를 알 수 없는 거북함이 몰려왔었다.


누군가가 고양이 울음소리를 똑같이 흉내 내며 고양이들조차 헷갈리게 만드는 릴스를 본 적이 있다. 그 영상이 피드에 떠서 볼 때마다 마치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듯한 소름이 끼치고 거부감이 들어서 불쾌했던 기억도 있다. 이것은 내가 연애할 때에 애인이 고양이 울음소리를 똑같이 내는 개인기를 뽐낼 때에도 같은 반응으로 나타났다. 애인 앞에서는 웃고 있었지만 정말 속으로는 가능한 한 빨리 그 상황을 모면하고 싶었었다.


이런 나의 극사실주의에 대한 심각한 거부감은 무언가 모방해야 할 일이 있을 때에 일부러 ‘이것은 모방이다!’라는 표시가 확연히 드러나는 방향으로 모방하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요즘 ChatGPT를 비롯한 수많은 AI들이 실제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의 정교함을 가진 모방작품을 쏟아내고 있다. 그럴수록 나는 원본의 아우라를 더 갈구하게 된다. 그래서 오히려 사진이나 동영상이 아닌 것이 너무나 확실한 애니메이션을 선호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한동안 ‘지브리 스타일’로 사진을 변환해서 프사에 걸어놓는 유행이 지나는 동안 그마저도 사라진 것 같다.


그래. 현대 사회에 원본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시뮬라크르 범벅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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