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을 보면 사람이 보인다
난 어느 집에나 가면 바닥을 본다. 바닥의 재질을 보는 것이 아니다. 장판인지 강마루인지 모노륨인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바닥에 얼마나 많은 물건이 내려와 있는지를 본다. 그리고 걸을 때에 발바닥에 무엇이 많이 붙는지, 끈적하진 않는지도 느낀다. 내 집에 돌아와서는 양말의 상태도 체크한다.
이혼숙려캠프를 보면 대부분의 집이 바닥에 잡동사니가 많다. 걸어 다니려면 물건들을 피해 빈 공간을 찾아 발을 내어 딛는다. 집안이 전쟁터이고 내면이 난장판인데 무슨 정돈을 할 수 있을까?
이혼 직전 내가 살던 집 상태도 그랬다. 물론 아이들이 있으니 장난감은 늘 널브러져 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잠자기 직전에 장난감은 장난감 수납장에 차곡차곡 정리하는 습관은 들여놓아서, 아이들 취침시간 이후면 발 디딜 틈은 생겼었다. 하지만 소파는 항상 벗어놓은 옷이 걸려있었고, 무슨 큰 종이박스는 택배를 보내거나 재활용한다는 이유로 버리지 못했다. 신발이라도 하나 사면 신발 박스는 얼마나 튼튼한지 버리면 큰 일 나는 재산이었다. 책장은 책뿐만 아니라 머리끈, 리모컨, 각종 손바닥만 한 잡동사니가 잔뜩 꽂혀있었다. 식탁 위도 무슨 식물 화분, 먹다 남은 과자 밀봉해 놓은 것 등등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 것들이 공간의 반 이상 차지하고 있었다.
날 잡고 치워도 버리지 못하게 하는 물건들 - 예를 들면 ‘당근’하면 다 돈이 될만한 물건들, 추억이 되는 물건들 – 이 있었기 때문에 정리가 완벽히 될 수가 없었다. 창고는 늘 가득 차 있고, 창고야말로 아마존 정글처럼 물건을 헤치고 넘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곳은 해충도 득시글거렸다.
그러다 보니 집은 휴식하는 공간이 될 수 없었다. 항상 이리 정리하고 또 저리 정돈해야 하는 끝없는 노동의 연장이었다. 일은 넘치는데 사람은 쉬지를 못하니 상호 간에 날카로워지고 이해와 포용보다는 날카로운 다툼과 회피가 일상이 되었던 것 같다. 물건들로 인해 집안 바닥이 안 보일수록 내 인성은 더 바닥을 드러냈다.
이혼 후 지금은 일상이 많이 정돈이 되었다. 외출 후 옷은 바로 빨래터로 직행하거나 옷걸이에 걸렸다. 책장은 책만 꽂는 곳이고, 수납함에는 잡동사니가 모였다. 쓸데없어 보이는 것, 1년 이상 안 쓴 물건은 과감히 버렸다. 10만 원 이상의 물건이 아니면 당근에 내놓지도 않는다. 언제 사갈지도 모르는 물건으로 공간을 차지하게 하면서 보관하고 있는 것이 더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바닥엔 그 어떤 물건도 내려놓지 않는다. 바닥이 보이니 마음이 편안하다. 화장실도 건식으로 유지한다. 식탁 위에는 시계와 물티슈 외에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정리 정돈이 되고 나니 정신이 돌아왔다. 일상이 회복되고 맑은 영혼의 호흡과 내면의 환기가 자연스레 이루어졌다. 그전에는 집에서 음악을 틀면 소음이었는데, 지금은 힐링 음악회이다.
그 이후로 나는 기회가 되면 타인의 집을 눈여겨본다. 그중 바닥을 본다. 바닥에 물건이 얼마나 내려와 있는지, 발에 붙는 먼지는 없는지. 그것이 내겐 그 집주인의 내면이 얼마나 안정적인지 보여주는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