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력 결핍도 결국엔 결핍

현재에 집중해 볼까요?

by Big Green

방금 좀 웃긴 일이 있었습니다. 일러스트를 그리면서 ADHD에 관한 글 구상을 하고 있을 때 기계가 꺼졌어요. 증상 중 하나인 과몰입으로 저에겐 꽤 자주 있는 일입니다. 이 상황 자체가 ADHD를 묘사하는 것 같아서 웃겨요. 그 외에도 책을 빌리러 가면서 회원증 가지고 갔다고 착각하기. 빌리러 간 책이 따로 없기. 문외한인 장르 책만 고르기. 그리고 사실은 도서관에 영어공부 하러 갔었음 등이 있습니다. ADHD는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고 집중하지 못함으로써 일을 그르칩니다. 그런데 또 그런 환자가 에너지가 많다면 괜찮을 때가 있어요. 저도 이게 어떤 상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글들 많지요. ADHD 환자가 어떤 걸 할 때 어떻게 되는지요. 저는 이 모든 글이 정보성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락성이 강할 때도 있고 MBTI처럼 나를 정의 내리려는 시도로 여겨져 유행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말 질병이 유행하고 있는 걸까요? 재밌습니다. 정신병이 유행한다면 그건 공통된 문제 원인이 존재하거나 질병에 전염성이 있는 것이니까요.


저는 굳이 나누자면 ADHD로 진단을 받은 것은 아니고 의심으로 약물치료를 하고 있는 중인데 처음에는 아무도 ADHD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의사 선생님도 모르셨고 저도 몰랐고요. 이 전의 회사를 다니면서 절 봐주신 의사 선생님께서는 성인이 ADHD를 가질 확률은 매우 낮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다른 약들을 두 번째 발작 이후로 7년간 먹게 됩니다. 그마저도 의심이 가서 병원을 찾았던 게 아니고 워낙 편두통도 심하고 다른 질병도 지병처럼 달고 살아서 질병 배제 도중에 받게 된 진단입니다.


사실 의뢰된 대학병원에 의사 파업이 있어 그 상태로 치료 의지가 꺾였다면 영영 몰랐을 겁니다. 하지만 진찰을 위해 6개월을 기다렸던 저는 회사까지 이미 그만둔 상태였기 때문에 오기가 생겼어요. 그렇게 일반 병원에서 받은 CAT(Comprehensive attention test)는 정상이었습니다. 시험을 본 제 손엔 식은땀이 가득했어요. 팔뚝까지 줄줄 흘렀죠. 의사 선생님께서 의문스러워하셨습니다. 원래도 이렇게 집중을 하면 긴장을 많이 하나요? 아뇨, 그냥 시험이 붙은 모든 일에 이래요. 언제부터요? 고등학교 때부터인 것 같아요. 어렸을 때 학업 성취는 별다른 말이 없어요. 오히려 우등생에 가까워 보여요. 전교 1등을 하고 했어서 2주 정도 학교를 이유 없이 빼먹어도 개근상이 나왔는데요. 부모님은요? 저희 집은 방임주의라 초등학생이 학교 빼먹는 걸로 신경 쓸 분들이 아니세요.


제 주증상은 공황과 불안과 우울입니다. 이상하지요. 기분 따위에 불과한 우울이 뇌를 잠식하면 일상을 엉망으로 만듭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가 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기만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의도를 했든 안 했든 능력도 없으면서 그들이 저를 신뢰하고 믿게끔 만들 행동을 꾸며해서 그 사람들을 실망시켰다고요. 재밌지 않나요. 어떤 목적 없이 그 노력을 했답니다. 저희 아버지는 여전히 저를 사기꾼, 거짓말쟁이 취급을 하십니다. 여하튼 아무래도 평생 그런 얘기를 들으면 그게 논리적으로 맞든 틀리든 내용을 달달 외우게 되죠. 나는 사람들을 기만하는 사람이라고요. 그걸 세뇌라고 하는데 세뇌는 알고 당하기는 어렵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다 부모님이 표현을 잘 못하시는 거라던지 훌륭한 분이라던지 뭐 스스로가 독립투사급은 된다고 생각했으니 아마 본인도 속고 있는 중일 겁니다. 훌륭한 분의 자식농사는 실패했습니다. 유감입니다.


브런치가 제게 공간을 할애해 주어 다행입니다. 전 헛소리쟁이거든요.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제가 부모님 얘기를 하면 당황합니다. 왜 그런 얘기를 하느냐고요. 별로 밝은 얘기가 아니니까요. 저도 당황합니다. 우리 굉장히 사적인 얘기를 하고 있지 않았어? 그런데 내가 커온 환경은 궁금하지 않고 내 학력이나 재산 내용만 궁금하단 말이야? 기를 쓰고 외국을 나가려고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국은 이런 얘기를 너무 불편해합니다. 내 부모가 나를 학대했을 수도 있고 나를 억압하고 강압했을 수 있는데 그게 티가 나면 학을 뗍니다. 어딜 감히 날 낳아주신 부모님을? 본인도 그렇게 효자, 효녀는 아니면서.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절 건강하게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주변을 둘러보세요. 외국에는 어떤 사람들이 나가려고 하나요? 어떤 사람들이 돌아오게 되던가요?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한국에서 낙오가 된 모자란 사람들이 해외로 나가려고 한다고요. 외국은 바보라서 외국인을 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그냥 그 사람이 있을 때 건강한 자리가 있는 거겠죠. 저는 크게 말을 섞지 않고 자리를 떴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장소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야말로.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부모님과는 크게 좋은 기억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림일기 내용이 어두침침합니다. 아마 그게 제 우울의 근원이요, 근본이요, 발병 원인이겠지만 이미 겪은 걸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그럼 어쩌면 좋을까요? 현재에 집중해 볼까요? 지금 할 수 있는 거, 하고 싶은 거, 하려고 하는 거예요.


ADHD 나쁩니다! 좋습니다! 딱 말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평생 가지고 가야 하는 경우가 많으니 의사 선생님께서 그렇게 표현하신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런 면이 있다는 점에서 정신병이라는 것은 신기하네요. 질병인데 장단점이 있습니다. 보통 몸이 아프면 단점만 잔뜩인데 말이죠. 게다가 약으로 조절이 가능하고 조절하려면 약을 먹어야 하고. ADHD 약은 정말 신기합니다. 게임에서 채널이 바뀌는 것처럼 캐릭터도 자세도 그대로인데 주변의 뭔가가 갑자기 변해있듯이 3일 정도의 복약 후의 저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각성을 하면 이런 느낌일까요? 사실 옛날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때 느꼈습니다. 나 확진일지도? 그래도 기왕이면 저는 이제 약을 그만 먹고 싶네요. 아마 이게 제 치료 의지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약을 그만 먹고 싶다.



오늘은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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