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강하게 하는 약
남에게 읽히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글을 쓰고 싶다고 스스로를 기만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관종이기 때문에 분명 그때도 많은 사람에게 글을 읽히고 싶어 했을 것임에도요. 어쩌면 그런 곤조가 있는 작가들이 부러웠던 걸지도 모릅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 나이 든 저의 말을 듣고 분명 어린 저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벌게져선 자기는 그런 거 모른다 시치미를 뚝 뗄 겁니다. 저는 그런 애였거든요. 하지만 이상하죠. 그때의 글은 확실히 많이 읽혔습니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어요. 어렸죠. 그랬던 애였네-하고 오랜만에 떠오른 것은 제가 최근 시험을 봤기 때문입니다.
시험을 봤습니다. 글로 된 것은 제외하고 다른 과목은 잘 봤어요. 저는 시험 불안이 있어서 이번 시험을 보기 전에 약을 먹었습니다. 이번부터 그렇게 하기로 했지요. 효과가 확실히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조그마한 하얀 타블렛 한 알로 이렇게 침착해지니 이상하지요. 괜히 이건 인스턴트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이 평온한 것이 아니라 평온한 상태인 몸 환경을 만들어 평온하다고 속이는 기분이 드는 겁니다. 도움이 확실히 되기 때문에 쓸쓸해집니다. 저는 이 증상이 제법 머리가 굵었을 때부터 생겼으니까요. 그런 생각을 했더니 잠을 설쳐 난독이 도지고 읽기만큼은 꾸역꾸역 샤프 잡은 손에 힘을 주어 학교를 다니던 그날처럼 공부하는 척, 문제를 푸는 척, 저는 시험 보는 저를 꾸며내었습니다. 그렇게 노력했는데 여기까지 와서 또. 그러면 약 한 알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가지고 죽음을 떠올리며 글을 썼던 어린 제가 또 생각이 납니다.
저는 제가 우등생이었다는 이야기를 잠시 한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후려 맞기 전까지요. 시험도 두려운 것이 아니었고 공부도 하기 싫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ADHD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간관리가 어렵습니다. 한국의 고등학교 교실은 다 비슷할까요? 저는 7시 10분 수업시작, 6시 수업종료, 저녁식사 후 의무 야간 자율학습으로 밤 11시에 학교가 끝났습니다. 잠이 많은 저는 늘 수면부족으로 수업시간만은 졸지 않으려고 했고 수업에 집중하기보다는 눈을 뜨는데 힘을 다 썼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 날 집에 돈이 없어 EBS 교재를 사지 못해 1교시부터 7교시까지 내리 매를 맞고 벌을 서고 교실 밖으로 쫓겨난 적이 있습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이렇게까지 학교에 적응을 못하면 교우관계 역시 박살이 나지요. 아버지는 저를 자퇴시키려고 하셨습니다. 사실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절 자퇴시키려고 하셨어요. 학교에서 못된 것, 즉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법을 배운다고 생각하셨거든요. 공부를 전국 1, 2등을 하셨기 때문에 겨우 반 10등 정도 하는 저를 이해 못 하신 것도 있습니다. 당시의 저는 아버지의 의견에 동조했습니다. 학교에서 배우잖습니까. 공부 잘하는 사람이 최고라고요. 그러니 붙어놓은 국립대학도 서울대가 아니라 부끄러워서 못 갔지요.
하여튼 그런 배경으로 저는 어떻게든 고등학교를 졸업하려고 했습니다. 고등학교가 의무교육이 아닌 시절이라 육성회비를 안내면 학교를 못 다니게 되는데 제 기억으론 2학기 정도 밀렸을 겁니다. 담임선생님과 의기투합해서 졸업 후 돈을 갚기로 했어요. 다행히 이 부분은 또 할머니께서 해결을 해주십니다만. 이 와중에 저는 글을 씁니다. 소설을 썼어요. 스릴러입니다만 이것은 원본이 유실되어 기회가 되면 써서 올리겠습니다. 여튼 그런 것들로 꾸역꾸역. 다행스럽게 졸업을 한 저는 보험도 팔고, 공장도 가고, 회사도 다니고, 병원도 다니다 외국을 나갑니다. 그리고 발작이 터져요. 그제야 생각합니다. 한국이 정말 원망스럽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