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잡이 별

홀로 서기

by Big Green

이번에 많이 아팠습니다. 희귀병을 앓으시는 분들도, 난치병으로 고생하는 분들도 정말 고생 많으십니다. 저는 고작 3개월 아프고 병세가 호전되었습니다만, 다른 분들은 통증과의 긴 싸움을 어떻게 견디고 계시는지 저는 감히 상상할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원인도 병명도 모른 채 대학병원 대기. 7월부터 10월 2일까지. 약이 없어 앓고 원인을 몰라 치료를 못해 버티기만 하다 증상에 익숙해질 즈음 드디어 의사 선생님 소견을 듣게 되었습니다. 검사 만점. 이상 소견 없음.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화도 나지 않았고 그간의 고생에 허탈하지도 않았습니다. 심전도 이상으로 순환기내과를 가보라고 하셨어요. 일단 이비인후과에서 그간 과잉진료를 봤군. 그런 생각이나 조금 했습니다. 대학병원은 생각만큼은 비싸지 않았습니다. 그간 다녔던 병원들의 비급여항목이 비쌌죠.


500만 원. 그까짓 500만 원으로 대체 얼마나 많은 계획이 무산되어야 했지?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들깁니다. 가난뱅이가 응당해야 하는 계산. 내가 돈을 얼마나 벌고 있고 얼마나 아껴야 이걸 만회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계산. 제 직업은 교대근무를 합니다. 급여가 적고 직업에 귀천이 있다면 천한 쪽일 게 분명한 제 소중한 직장은 쉬는 날도 매달 다르고 퇴근 시간도 일정하지 않아서 계약서에는 해고 사유 중 아르바이트 금지 조항이 있습니다. 근무표에 지장을 주니까요. 한숨이 가볍게 터집니다. 돈에 이렇게 또 목메는 시기가 왔네. 뻑뻑한 눈을 문지릅니다.


저는 조울증 환자입니다. 치료약을 받고 있고 주기마다 혹시 자살하지 않을까 싶어서 유서도 작성해 두고 영정사진도 찍어두었습니다. 장례비를 마련해 둔 통장이 있는데 이번에 그중 일부를 해약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금전적으로 끝까지 몰린 기분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 걸 20대 때 다 졸업한 게 다행스러웠습니다. 월급도 있고 월셋집이지만 그걸 감당할 수 있다는 게 다행스러웠으면 다행스러웠지 나쁘지 않았어요. 하지만 주기는 찾아옵니다.


제 정신건강과 선생님은 다음 진료 때 절 보지 못할까 걱정되신다고 입원치료를 권유하셨습니다. 휴식이 간절했지만 전 나이가 많아 청년 대출에 기댈 수도 없었고 부양해 줄 가족이 없어 직장을 그만두면 생활비가 없었으며 재직 중에 국가자격이 필요한 직종으로 전환되어 학력이 낮아 재취업길도 막막했습니다. 선생님, 말씀은 감사합니다. 마지막 인사일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으로 진료실 문을 닫고 나왔습니다.

이유 없이 슬픔에 잠긴 사람은 별이 보이지 않는 밤바다 위를 표류하는 조각배 같은 것입니다. 눈물이 나지 않아요. 내 체력을 소진해야 하는 일체의 행동을 하지 않고 늘 먹먹한 기분으로 언젠간 찾아올 죽음을 기다립니다. 그것이 능동적이더라도 파도가 치는 것처럼 움직일 수 있는 동력, 힘이 없다면 사람은 죽지 않아요. 별이 뜬다면 길을 찾을 테고 태풍을 만난다면 그것이 운명이려니 하는 것입니다. 격렬한 슬픔이 소강될 때. 저는 그때가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우울을 떨치기 위해 밝은 모습으로 사람을 만나고 나서 사람은 소진됩니다. 공허함을 채우려고 먹고, 무거워진 몸을 보고 우울하고요. 사람이 죽으려고 마음을 먹고 나서의 10분. 그때의 기분은 절망보다는 내 계획을 실행하는 사람의 의지와 좀 더 닮아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을 막아줄 저항이 삶에 있는지 없는지로 삶이 판가름 나지 않나, 그런 생각이요.


삶은 홀로 갈 수 없습니다. 싫어도요. 끔찍해도 사람은 결국 혼자 살지 못합니다.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도움을 받죠. 그 도움이 어떤 사람의 재능일 때도, 물건일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전 오늘 신발을 샀어요. 아주 귀엽고 동그란 신발입니다. 그리고 놀이공원의 티켓을 끊었습니다. 길잡이 별이 필요해서요. 아무래도 좀 더 살아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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