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주의적 접근으로써의 여성주의
저는 음모를 꾸미고 선택적 페미니즘을 하는 사람입니다. 어느 매체든지 이 주제는 굉장히 다루기 까다롭습니다만 주제의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거나 사회적으로 논의되는 중이라거나 하는 점보단 이 단어를 접한 사람들이 기겁을 하기 때문이라는 게 정말 재미있지요. 소위 말하는 패닉에 빠지는 건데요. 우리나라는 특히나 더 심해보입니다.
원래 물을 많이 먹은 지푸라기일수록 불을 붙이면 연기가 요란하게 납니다. 모 연예인이 그랬죠. 자신은 어머니가 있고 여자 형제가 있기 때문에 절대 여성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요. 그건 논거가 전혀 맞지 않는 주장입니다. 정상참작 여지는 있습니다만. 그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에 대한 설득이 쉬워 보이지는 않죠. 설득이 필요한 이유는 명명백백합니다. 미소지니는 자신이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위기에 휩쓸려 자기도 모르게 하고 있는 게 여성혐오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여성이어도 마찬가지로 눈치껏 하게 됩니다. 그게 대세거든요. 이런 분위기 속에 젠더니 섹슈얼리티니 영어로 자기소개도 못하는 나라에서 자꾸 영어단어까지 쓰니 혼선이 옵니다. 그런데 쓸 수밖에 없습니다. 서양에서는 젠더에 생물학적 성만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인데요. 사실 그런 인식이 전무하다시피 한 한국에 생소하게 젠더를 덜렁 들고 들어오니 생식기로만 사람을 나누던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의 오해는 쌓이고 깊어만 갑니다.
이해는 갑니다. 한국의 여성혐오는 정서적,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기타 등등을 제외하고도 물리적 특성을 띄고 있어서 우리가 지금까지 많은 여성들을 잃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가시화되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은밀한 거죠. 통계를 안내요. 내도 어디 숨겨놓습니다. 많은 미디어에서 자주 다루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한국의 모든 문제는 돈이나 학력(내지는 권력) 주의에 껴 맞추면 답이 얼추 나옵니다. 여성주의가 돈이 되지 않고 오히려 초기 비용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어른으로 만들 때 마을 하나가 필요한 것처럼 그만큼의 관심과 노력을 여성들에게만 온전히 쏟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동안 남성들은 역차별을 받지 않습니까? 네, 그것이 우리가 지출할 초기비용입니다. 그간 누렸으니 양보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기울어진 운동장 얘기를 하고 있고 이것을 평평하게 맞추려면 올라간 쪽의 흙을 퍼 나르는 행위도 필요로 합니다. 물론 다른 것들도 해야 하고요. 그런데 이제 이 요구에 잃을게 많은 사람들이 거세게 반발합니다. 잃을 게 없는 사람들도 같이 반발합니다. 우세한 세력의 반발로 페미니즘 반대파-성차별주의자파-는 승리하는 듯 보입니다. 한국은 결국 경쟁사회니까요. 이제 그 경쟁으로 길게 보면 나라가 망합니다. 이미 3세대 후면 인구 소멸이 되죠.
사람들은 남성혐오와 여성주의를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여성우월주의가 이후에 급진파에 의해 파생된 개념이라는 점 자체가 납득이 잘 안 되는 모양새입니다. 너네 팀 아니면 우리 팀 아니냐.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이분법 속에서만 살았나 싶습니다. 아마 빠른 판단에는 선택지가 작을수록 좋기 때문일까요? 세 갈래 길도, 네 갈래 길도 있는 법입니다. 혐오라는 것은 여러 종류로 사회에 만연해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싫다는 건데 우리가 지금까지 여성을 싫어한 적이 있었을까요? 아니요? 어쩌면요? 저는 2등 시민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뜻이 더 명확하거든요. 남성이 2등 시민이었던 적이 있었을까요? 아니요? 어쩌면요?
이번 프랑스월드컵 말이 참 많은데요.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소개한 생물학적 남성인 선수가 여자 선수 경기에 참여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프랑스 역시 차별과 차이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수 있죠. 젠더는 많은 것을 내포합니다. 정신적, 신체적인 부분이 문화적인 것에 속해져 있고 문화라는 것이 사람의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것이 페미니즘의 골조입니다만 우리가 여기서 다룰 것은 정신적, 신체적인 성이 같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IOC는 이 공부는 하지 않고 PC주의에 심취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몇몇 몰상식한 사람들도 외치죠. 너희가 선택한 길이니 견디라고요. 아니요. 여성들은 이런 억압을 견딜 이유가 없습니다. 여성들도 손이 있고 발이 있고 제안을 거절할 머리를 가진 우수한 인재가 있거든요. 그리고 이게 페미니즘입니다.
문화에 깔려있는 분위기. 그게 사람들은 치우치게 만들기 때문에 이렇게 공공연하게 사람들이 보는 곳에 게시된 글 하나하나가 논쟁이고 논란거리가 됩니다. 그 분위기를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에서의 페미니즘은 실패했다고 보는 편인데 다수의 분위기가 페미니즘에 호의적이지 않을 때-너희는 사탄이고 악마다라며 마녀사냥을 하면서 사냥꾼이 스스로를 마녀사냥 당한다고 착각하는 때-너무 서양 언니들의 선진적인 페미니즘을 접목하려고 시도한 것입니다. 원래 새로운 사상은 도입부가 찌그러지면 다시 펴서 쓸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망했느냐. 아니요. 한국은 페미니즘이 망하면 안 되는 나라입니다. 나라가 망합니다. 이미 다들 느끼고 있을 테고 이게 제가 이 나라에 할 수 있는 애국이라면 애국이겠지요. 각설하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새로운 접근을 하면 됩니다. 저는 한동안 이 주제에서 거리를 두고 페미니스트인 것을 감추고 은둔하다가 이러한 비합리적인 공포심의 근원을 제거한 페미니즘이야말로 실용할 수 있는 페미니즘. 즉 여성주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일 하는 거 누가 좋아합니까? 한국 일 너무 많이 합니다. 그거 여자들이 같이 하면 얼마나 좋아요? 돈 똑같이 벌면 누가 집하고 누가 혼수하고 그런 얘기 쏙 들어갑니다. 아이 같이 낳아서 같이 키우면 얼마나 좋아요? 저는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왜 싫어하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문화가 사람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동양인이기 때문인데요. 사람은 정신적인 부분과 육신적인 부분이 조화가 되어있는데 그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고 두는 것 자체가 편견이고 불평등이며 불합리한 처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급진적인 형태의 페미니스트도 될 수 없었고 미소지니가 옳다고 주장하는 성불평등론자들이 될 수도 없었습니다.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것이 아닌 물과 기름처럼 완전히 유리된 이 상태를 저는 중도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물론 누군가는 제가 불편하겠지요. 하지만 저는 이게 한국형 페미니즘이 아닌가 합니다. 젊은 남성들은 이미 너무 많이 망가졌고 똑똑한 여성들도 많이 죽었고 뉴스에서는 좋은 소식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저는 희망을 봅니다. 재난의 어느 날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 다들 모두 지쳐서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지, 애는 같이 키워야지. 같은 일 하면 같은 임금 받아야지. 이 정도면 그래도 우리, 살만은 하지. 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