엮은이 : 나
글을 쓰지 못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스스로를 내보이는 것이 괴로워서였고 사는 것이 벌 받는 것 같아 그랬습니다. 활자에는 어쩔 수 없이 생각이 묻어 나와 전 그것이 그렇게도 역겨워 쳐다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생각. 비 오는 날 진흙탕처럼 하수구에 처박히듯 흐르기만 하는 그 생각을 멈추기 위한 약에 취해서 빈곤하고 피로한 사람이 쓰는 글이 어떻게 좋은 글이 될 수 있을까요. 쓰는 것에 대한 미련으로 적어 내린 글은 보기 흉했습니다. 때로는 보는 것만으로 잊을 수 있는 불행이 되살아나 목을 조를 듯이 제 뒤를 쫓았습니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 내리는 것을 다시 읽을 수 있는 용기가, 지금까지의 저에게는 없었습니다. 활자로 단정하게 정리된 지옥도. 글은 날카롭게 벼려지지도 못하고 뭉그러진 채로 제 옆에 시체처럼 누워있었습니다. 그 옆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던 날이 있습니다.
저는 전화가 싫습니다. 받는 사람의 정적을 깨고 언제고 사람을 괴롭히는 수단 외로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전화벨 소리에 시달리다 39도의 고열로 출근해야만 했던 날을 뚫고 그 날카로운 소리는 결국 또 제게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너무 꽉 깨물어 깨져버린 이빨 값, 일상생활 속 마우스 피스, 통제되지 않는 일상으로 통제되는 사회의 행동양식, 제약들, 통증, 질병. 싫은 것 투성이인 일상. 일관적으로 떠밀어지는 등어리에서 가장 고약하게 구는 것은 삭히지 못한 과거의 기억으로 저는 그 어떠한 것도 용서하지 못한 채 생일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정말 누군가에게 고통을 그만 토로해야 하는 순간이 있을까요? 나이를 먹으면 사람은 자연히 현명해져 제게 차고 넘치는 감정을 외부의 도움 없이 갈무리하고 성장의 발판이나 거름쯤으로 거뜬히 만들 수 있는 그런 힘이 생기는 걸까요?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강한 척도 하지 못해서 의사 선생님을 붙잡고 매 진료마다 눈물을 내보이고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사는 것이 고통스럽다고요. 좋아질 거라고 하셨습니다. 낫지 못하더라도.
저는 기다리고 참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돈도 한 번 마음껏 써보고 여행도 가고 적금이고 예금이고 다 털어 비행기를 탔습니다. 어지럼증. 구토. 두통. 메스꺼움. 그런 것들에 더 이상 돈을 쓰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여행을 가서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아팠고 평생 가본 적 없는 꽃집에 들어가 꽃다발을 샀습니다. 그래도 된다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쪽빛 바다를 보고 불타는 하늘을 보고 몽글거리며 흩어지는 구름을 바라보았습니다.
좋아하는 것들로 자신을 둘러싸야했습니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발가벗겨진 듯 부끄러워서 좋아하는 것들을 기워 그 천조각이라도 둘러야만 했습니다. 그때 가장 많이 한 것이 무언가를 읽는 일이었습니다. 이북을 닥치는 대로 사서 읽었습니다.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는 순간이 좋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깨닫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글쓴이에 대한 시기. 질투. 글을 쓰고 싶다는 소망. 난도질해놓은 기억을 정리하고 싶은, 삶보다도 강렬한 열망.
저는 글을 쓰며 바랍니다. 이렇게 숨 쉬듯 자연스럽게 써내리는 것들이 제 삶의 증거가 되기를. 누구나에게 오는 내일이 내게는 오지 못할지라도 그래도 제 삶이 누군가에게 안타까운 날들로 남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