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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G HIP Oct 14. 2017

김춘수 <꽃>에 숨겨진
사랑의 폭력성

by  [은밀한 절망, 발칙한 몽상]




김춘수의 <꽃>,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봤을 만한 시다. 학창시절 교과서에 형형색색의 펜으로 줄을 그으며 학습했거나, 낙엽 지는 가을날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낡은 서랍 속에서 다시금 꺼내어 봤을 것이다. 솔로들에게는 새로운 사랑을 부르짖는 연가로, 커플들에게는 애틋한 애정을 드러내는 시로 널리 읽히고 있는 이 시에 대해서 나는 조금 색다른 해석을 해보고자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이 시의 도입부이자 가장 널리 알려진 구절이다. 화자는 사랑하지 않는(혹은 연애하지 않는) 상황을 '하나의 몸짓'에 비유하며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다음엔 더욱 심각한 내용이 이어진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문장 중간에 '비로소'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를 만나기 전 그저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그가 나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의미 있는 존재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이름을 불러주는' 타자에 의해서만 무기력하고 무용한 존재인 자아의 의미가 규정된다는 것인데, 여기에서 우리는 사랑의 숨은 폭력성을 엿볼 수 있다.





사랑을 할 땐 누구나 특수한 환경에 처한다. 갓난아이 때 이후로 맛보지 못했던 상대와의 강한 유대감 속에서 사람들은 마법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어릴 적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나를 바라보던 어머니의 눈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처음 다시 목격하는데, 이 같은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평소 감춰왔던 본능을 가감 없이 표출한다. 사랑은 "사회적으로 허용된 미친 짓(socially acceptable insanity)"이라는 말(영화 <her>에 등장하는 대사)도 있지 않은가. 연애 도중에는 어떤 사회적 관계에서도 드러내지 않았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상대방에게 가장 '특별한 존재'로서 각인되고 싶은 욕망에서 기인한다.


일례로, 연애할 때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가 바로 애정과 소유욕을 혼동하는 것이다. 특수 관계 속에서 상대방을 '독립변수'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에만 단독적으로 결부된 '종속변수'로 보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다. 사랑하는 연인이 나만의 것이기를 바라고, 나와 교집하지 않는 부분들을 인정하지 않거나 심지어 부정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상대방의 과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그(또는 그녀)만의 생활을 인정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과거에 서로의 통화 내역이나 주고받은 메시지까지 전부 들여다보는 커플을 본 적이 있다. 얼마 못 가 그들이 헤어졌다는 소식을 접했던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서로의 일상을 전부 소유하고자 한 것이 결국엔 그들 스스로를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이루어지는 많은 행위엔 폭력성이 깃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출처: http://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53152


<꽃>에서 시인은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무엇이 되고 싶다"고 했지만, 영화 <500일의 썸머>에서 여자 주인공은 "누군가의 무엇이 되는 일은 불편하다(I don't feel comfortable being someone's something)"라고 말했다. 홀로 서있을 때 온전한 사람만이 역설적으로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후자를 지지한다. '누군가의 무엇'으로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 스스로를 가꾸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사랑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이름 불리길 애타게 기다리다가 비로소 탄생하는 잠정적인 존재, 즉 '꽃'이 아니라 차라리 그 자체로 아름다운 '하나의 몸짓'이 되고 싶다. 몸짓과 몸짓이 만나 아름다운 꽃의 형상을 이루는 사랑을 하고 싶다. 


출처: http://hipbig.tistory.com/118 [BIG 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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