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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고인 김종섭 Feb 04. 2024

광고 일을 하다 슬럼프가 왔을 때



미국 유학 시절, 나의 꿈은 던킨 도넛 커피 한 잔을 들고 뉴욕의 광고회사에 다니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별 감흥 없었던 커피가 미국에서는 왜 그렇게 맛있던지 특히 뉴욕의 커피는 나를 황홀경에 빠지게 했다. 지금 생각하면 허세 가득한 꿈이었다. 막연히 전 세계에서 가장 크리에이티브한 곳이 뉴욕이라 생각했고 그곳에서 광고 회사를 다니는 것이 최고라 여겼다. ‘뉴욕의 광고인'이라면 왠지 너무나 창의적인 삶을 살 것이라 믿었다. 물론 나는 꿈을 못 이루고 한국으로 왔지만 말이다. 


광고인에 대한 환상이 있던 나였다. 어쩌면 그 환상이 지금까지 나를 이끈 건 아닌지 모르겠다. 힘들어도 광고인만 창의적인 사람이 자신의 역량을 펼칠 만한 곳은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슬럼프가 없었던 건지 모른다. 정말이다. 나는 창업 후 거의 슬럼프를 느낀 적이 없다. 다만, 머리를 좀 식혀야겠다. 풀리지 않는 문제에서 조금 떨어져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는 그 마음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나의 경험이 당신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 


첫째, 슬럼프는 열심히 일했다는 것의 증거라는 것을 명심하라.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슬럼프에 빠질 일이 없다. 집 밖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빠질 웅덩이조차 만나지 못한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뛰어간 사람이 빠지는 웅덩이가 슬럼프다. 그러니 광고일을 하다 슬럼프를 만나면 우선 돌봐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자신에게 칭찬해 주어라. 당신이 도전했다는 증거이니 말이다. 


둘째, 당신이 머물렀던 박스 밖으로 나가라. 이때 중요한 것은 생각뿐 아니라 육체 역시 문제의 박스 밖으로 벗어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에게 문제의 박스는 회사 대표실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언제나 고민이 잠겨 있곤 했다. 광고주가 의뢰한 문제, 직원들의 문제, 회사의 문제 등 문제와 씨름하는 곳이 대표실의 내 자리였다. 고민이 익숙했던 자리라 그곳에선 아무리 유튜브, 넷플릭스를 봐도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극장으로 가버렸다. 오후 5시쯤 혹은 그 후에 하는 영화를 보면 광고주로부터 전화도 안 오니 마음 놓고 쉴 수 있었다. 아마 내게는 평가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광고 기획, 광고 카피, 브랜드 문제에 대한 솔루션 제안 등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반드시 평가를 받아야 한다. 나는 늘 평가를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영화를 볼 때는 그 반대가 되었다. 온전히 내가 그 영화를 평가하는 입장이 되니 말이다. 그것도 14,000원이라는 돈만 내면 내가 평가자가 되니 너무 편한 것이었다. 이렇게 나는 문제의 박스를 벗어나 역할을 바꿔보는 것으로 슬럼프를 극복하고자 했다. 


셋째, 토해내는 대상을 찾았다. 누군가 말했다. 문제를 내가 가지고 있으면 나의 문제이지만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면 그의 몫이 된다고 말이다. 그만큼 소통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나의 슬럼프를 말하면 그것이 반이 되는 느낌이 받는다. 누군가 들어주는 순간 나만 알고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 밖으로 슬럼프를 끄집어내면 마음의 여유 공간이 커졌다. 마치 상한 음식을 먹고 토하듯이 나의 속에서 나는 그것을 밖으로 배출해 갔다. 사람은 절대 타인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만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점이 나를 편하게 만들었다. 대수롭지 않게 들어주는 사람들이 덕분에 나의 슬럼프는 더 작게 느껴졌다. 그러니 광고 일을 하다 슬럼프를 겪는다면 대화할 사람을 찾아라. 운 좋게 그가 아이디어의 단초가 되는 말을 해줄지 누가 알까. 그러니 말하라. 


넷째, 당신의 흔적을 돌아봐라. 어쩌면 슬럼프는 너무 미래만 바라보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닐까? 내가 몇 년 안에 무언가를 이루어야 하고 또 어떤 것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당신을 얽매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니 가끔은 가는 길을 멈춰 당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봐라. 그렇다면 형용할 수 없는 정도의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나의 경우, 창업 초반에는 문전박대의 대상이었다. 광고 영업을 나가면 늘 쫓겨나는 대상이었다. 그게 싫어 죽어라 광고제에서 상을 받으려 노력했고 언론에 나오려고 애썼다. 그게 싫어서 더 많이 광고를 만들었고 더 많이 공부했다. 그러니 어느 날 책을 두권 쓴 저자가 되어 있었고 클래스 101 콘텐츠 마케팅 부분 top 3 강사가 되어 있었다. 미래의 목표만 바라보고 나아가다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면 무한한 감사의 마음이 분출한다. 


때로는 내가 가진 실력에 비해 더 많이 부풀려졌구나라는 두려움은 덤이지만 말이다. 초창기 창업 때에 비해 지금은 10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나 자신이 브랜딩 된 것 같아 기쁘다. 그럴 때면 다시 한번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뛰어보자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슬럼프에 빠져 있는 내 모습은 사치처럼 보이는 때가 오는 것이다. 열심히 하면 된다는 것을 증명했던 지난 시간들이었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는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스노우볼이 되어 본다. 힘들지만 굴러가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스노우볼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지금 당신이 슬럼프에 빠져 있다면 스노우볼이 굴러가고 있는 과정이라 생각해 보라. 어느새 웬만한 바위에 부딪혀도 끄떡없는 커다란 스노우볼이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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