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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Dec 23. 2019

[에디토리얼] 진심


편집장 김송희

     

어떤 말들은 너무 흔하게 쓰이다가 빛을 잃기도 합니다. 진심, 진정성… 그런 말들이 특히 그렇죠. 글을 읽다가 “진정성이 느껴졌다”라는 문장을 보면 그 글이야말로 진정성이 없게 느껴졌습니다. 속을 까서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무엇을 보고 진심이나 진정성을 판단하고 저렇게 쓴 거지? 하면서 말이죠. 


대신 웃기고, 위악적이고, 쿨하다 생각되는 것들을 보면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냉정하고 직설적인 태도 앞에서는 그게 현실적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설령 진심이 아니더라도 진심으로 다가오는 사람은 믿어보고 싶어집니다. 


이번 호 《빅이슈》 스페셜에서는 반려동물의 죽음을 주제로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죽음은 우리가 꺼려하고 부정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조금씩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영원히 살 것처럼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험가입 시 약관 같은 걸 읽을 때나 잠깐 죽음을 떠올리려나요. 반려동물과 함께 살면서도 이별을 상상하지 않습니다. 지금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을 충실히 보내는 게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언젠가 헤어집니다. 인간에 비해 짧은 생을 살아가는 반려동물과도 이별하게 되겠지요. 


저도 고양이를 한 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아니, 얘가 저를 키우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후추라는 이름을 가진 이 삼색고양이와 함께 산 이후로 처음으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의 무게를 느낍니다. 최근 제 주변 친구들의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것을 본 후 저는 후추와의 이별을 상상했습니다. 잠깐 상상만 했는데도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고 가슴이 저미듯 아팠습니다. 아,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친구에게 제가 건넸던 위로가 얼마나 무성의한 것이었던지요. 상처가 될 말을 위로랍시고 던졌던 것은 아닌지도 반성했습니다. 누구도 타인의 슬픔을 가늠할 수 없고, 가족을 보낸 슬픔은 쉽게 치유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반려동물을 잃은 사람에게는 ‘그만 잊으라’는 말을 참 쉽게도 합니다. 사람이 아닌 동물을 먼저 보낸 상실감은 무게가 가벼운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빅이슈》에서라도 ‘슬퍼해도 괜찮다’고 계속 기억하자고 말하고 싶어서 준비한 기획입니다.  


《빅이슈》에서 2011년부터 2016년까지 판매원으로 일하셨던 김수일 판매원이 얼마 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미 ‘반려견의 죽음’을 특집으로 준비하고 있을 때 들려온 비보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죽음들을 예기치 못하고 만나는지, 그리고 그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통감했습니다. 연고가 없었던 김수일 빅판의 빈소는 《빅이슈》의 사무실에 꾸려졌고 그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빈소를 찾아 영면을 빌었습니다. 외로운 게 싫다 하셨다던 김수일 빅판의 마지막 길이 고독하지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리고 진심이란 결국 이런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빅이슈》가 세상을 바꾸진 못하지만, 그래도 이 한 분 한 분에게는 동료가 되고 친구가 되는 잡지였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그런 게 진심이 아닐까요. “우리는 진심이에요”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게 진짜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외롭게 떠나지 않았으면 해서 그를 잘 몰랐던 사람들까지 모여 눈시울을 적시며 헌화를 하고, ‘이제 편히 쉬시라’고 기도하는 시간. 저는 역시 아직은 진심을 더 믿어보고 싶단 생각을 합니다. 


위 글은 빅이슈 11월호 21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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