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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Dec 24. 2019

[스페셜] 너를 기억할게

반려동물을 먼저 보낸사람들의 이야기





“아직도 아이가 집에 있는 것 같아. 내가 들어올 때 종종종 하는 발소리가 안 들리니까 이상해. 어디 숨어 있는데 내 눈에만 안 보이는 걸까.” 얼마 전 반려견을 무지개다리 너머로 보낸 친구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미안해. 자꾸 이야기해서.”라고 덧붙였다. 반려견을 먼저 보낸 후 한 달이 지났을 무렵 그의 가족은 ‘이제 그만 슬퍼하’라고 ‘슬퍼할 만큼 슬퍼했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우리는 한 달이 지났으니 이제 잊으라고, 1년이나 지났는데 왜 여태 슬퍼하냐고 위로하지 않는다. 그러나 반려동물과 이별한 사람에게는 쉽게 ‘슬퍼할 만큼 슬퍼한 것 같은데 이제 그만 잊으라.’고 말한다. 그래서 반려동물을 먼저 보낸 사람들은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면 주변에 슬픔을 내비치기가 어려워진다. 반려동물을 잃고 오래 슬퍼하는 사람에게는 ‘유난 떤다’는 눈빛이 뒤따른다는 것을 그들은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슬픔을 앓아도 좋을 유효기간 따위는 없다. 그 이별이 사람과 한 것이든 동물과 한 것이든 마찬가지다. 반려견을 잃은 사람들이 오래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일컫는 ‘펫로스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있지만 아직까지 사회는 그들이 잃은 것이 가족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롤랑 바르트는 <애도 일기>에서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나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생각하는것 같다. 하지만 한 사람이 직접 당한 슬픔의 타격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썼다. 개인이 가진 슬픔의 깊이는 타인이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눈물의 수심은 당사자만이 알 수 있다. 


반려동물의 장례를 치러야 할 때, 땅에 묻으면 불법이고 동물 사체는 폐기물로 분류되어 있어 쓰레기봉투에 버려야 한다는 것도 아직 한국이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한다는 반증이다. 농림축산부에 정식으로 등록된 동물 장묘 시설은 전국에 40곳이 채 되지 않는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인구는 매해 늘고 있지만 가족이자 친구였던 반려동물을 보내기 위한 법규나 시설 등은 여전히 미비한 것이다. 반려동물을 먼저 보낸 사람들은 함께 살았던 동물의 체취와 온도가 기억날 때마다 못 견디게 슬프다. 그리고 그 슬픔의 와중에 세상은 여전히 내 가족을 가족

으로 보지 않고 장례를 치르고 애도를 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을 더 슬프게 한다. 내 곁에서 잠들어 고르게 숨을 쉴 때마다 오르내리던 배, 부들거리던 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해줬던 그 눈빛과 촉촉한 코. 그

아이가 우리 곁에 있었음을 계속 기억해도 괜찮다고, 그리고 그 기록을 여기에 남겨두자고 말했다. 곰이가, 망고

가, 더벙이와 아롱이가, 여백이가 세상에 살다간 기록을 여기에 남긴다.


위 글은 빅이슈 11월호 21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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