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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Dec 24. 2019

[스페셜] 내가 사랑한 것들은 언젠가 나를 울게 만든다

너를 기억할게 1. 반려동물 잘 떠나보내는 방법


글·사진봉현     

 




그 작았던 고양이

날이 좋던 오후였다. 창밖으로 새소리가 들려왔고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햇빛을 받으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여백이에게 ‘여백아, 가을이 온단다.’ 하고 말했었다. 이때 별생각 없이 찍어둔 사진은, 내게 가장 슬픈 사진으로 남았다. 사진 속의 여백이는 아주 작았다. 겨우 2.7킬로그램이었던 작은 몸이 견뎌내야 했던 고통은 너무 컸다. 겨우 세 살이었는데 이미 세상의 모든 아픔에 무뎌진 듯한 뒷모습이었다.

가을을 지나, 결국 겨울을 버티지 못하고 여백이는 내 곁을 떠났다. 나는 두 번 다시 뒤돌아보지 않을 사진 속 뒷모습을 들여다보며 몇 시간이고 울었었다. 여백이 이야기를 썼던 내 책은 읽을 수 없는 책이 되었다. 여백이가 보고 싶어서 책을 펼쳤다가 두 페이지도 읽지 못하고 덮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말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 시간이 3개월, 6개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괜찮아지지 않았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울고 문득문득 무너졌다. 여백이와 행복했던 꿈을 꾸다가 울면서 잠에서 깨곤 했다. 마치 어제 고양이가 죽은 사람처럼 1년을 넘게 그랬다.      


괜찮지 않은괜찮을 수 없는 시간들

여덟 번의 계절이 지났고 그동안 긴 여행을 두 번 다녀왔다. 여백이 때문에 포기했던 것들을 많이 했다. 매일 하루 세 번 약을 먹이고, 매달 70만 원씩 병원비를 내야 했기에 하지 못했던 것들. 나를 위해 돈을 쓰고 시간을 썼다. 미국, 쿠바, 페루, 모로코까지 지구를 옆 동네 다니듯 자유롭게 여행했다.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여백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울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중 모로코에서 만난 동생에게 강아지가 죽은 지 6개월 정도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결국 밥을 먹다 말고 펑펑 울어버렸다. 동생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희망적인 동시에 절망적이라고 했다. 너무 사랑했기에 잊고 싶지 않은데, 결국 잊히지 않는다는 게 희망이었고, 2년이 지나도 나처럼 그리워서 울게 된다는 게 절망이었다. 나는 동생을 위로하며 잊을 수는 없지만, 괜찮아진다며 웃었다. 떠올려보면 나는 여백이가 죽었을 때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반려동물의 사랑스러움, 함께 하는 행복에 대해서는 수없이 들었지만 죽은 이후의 시간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려준 적이 없었다.       




반려동물떠나보내려거든

반려동물을 데려오기 전에 생각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키울 때의 보살핌, 경제적 비용, 등을 많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반려동물이 곁을 떠났을 때 감당해야 할 정신적 상처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이 없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견뎌야 했다. 하지만 더 쉽게 나아지는 방법이라는 게 있기는 할까. 마음의 준비라는 것을 더 많이 했었다면 괜찮았을까. 아니면 애초에, 여백이를 내 곁에 두지 않았다면 괜찮았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2년하고도 두 달이 넘은 지금, 분명 처음보다는 아프지 않다. 여백이에 대한 간절함은 괴로움에서 그리움으로 바뀌었고 이제는 여백이 책을 조금은 읽을 수 있다. 방 한 켠에 놓아둔 사진과 다섯 개의 엔젤스톤(반려동물 화장 후 남은 유골로 만든 돌)을 만지며 인사도 건넬 수 있게 되었다. 주기적으로 불쑥불쑥, 소파 위에, 발 아래에 앉은 고양이와 눈을 마주치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동물을 내 곁에 두지 않을 것이다. 사랑스러움에 미소 지을 기쁨보다 또다시 아파할 슬픔이 크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버렸으니까.      





아파도 울어도 괜찮아너 때문이라면

어디선가 읽었었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언젠가 나를 울게 만든다는 말. 여백이는 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고양이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여백이를 사랑했던 그 3년 8개월의 시간에 한 순간도 후회는 없다. 힘들었지만 가장 행복하고 외롭지 않은 시간이었고, 그만큼이나 한 존재를 완벽하게 사랑할 수 있었던 경험은, 그 어떤 연애보다도 가치 있고 특별했다. 

나는 이 글을 반려동물과 이미 살고 있는 사람을 위해 쓰지 않았다. 마음의 준비라는 것은 없다. 아무리 수백 수천 번, 각오를 해도 결국은 아플 것이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하게. 이 글을 아직 반려동물을 들이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아파도 울어도 괜찮을 만큼 사랑에 빠졌다면, 후회 없이 사랑해도 되지만- 아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절대, 절대 사랑하지 말라고. 당신은 나처럼 아프지 말라고.          


봉현

<여백이> 외 네 권의 에세이를 냈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씁니다. 

instagram@bonghyun_know

Twitter@bonhkr

janeannnet@gmail.com     


위 글은 빅이슈 11월호 21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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