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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Dec 24. 2019

[스페셜] 곰이야, 네가 만지고 싶은 날엔 어떡하지

너를 기억할게 2. 마지막 간병 일기


글·사진 권정미





마지막은 왜 

마지막 순간에 다다라서야 

알게 되는 걸까. 

아, 이게 마지막이구나 

하면서.     


곰이는?(아직 잘 살아 있어?)”

곰이는 올해 열여덟 살이었다. 딱 내 인생의 반을 산 곰이. 스무 살에 만나 서른여섯까지 함께했으니 지질한 와중에 아주 가끔씩만 빛나던 내 청춘 시절엔 늘 곰이가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언제나 내 근황을 확인한 후 이렇게 물었다. “곰이는?(아직 잘 살아 있어?)”

곰이는 마지막 2년 동안 매일매일 노화의 과정을 일깨워줬다. 어느 날 귀가 먹어서 아무리 불러도 못 듣기 시작하더니 이어서 한쪽 눈이 멀어버렸다. 균형 감각을 잃어서 점점 걷지 못하게 되자, 다리 근육이 퇴화해 배변 패드에 모로 누워 있는 날이 많았다. 아무리 자세를 바꿔줘도 피부가 짓무르는 걸 막진 못했다. 피부병이 심해진 부위는 털이 자라지 않아 예전의 복슬복슬한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비싸고 좋은 걸 먹여도 몸은 왜 점점 말라가는지. 밤이면 조용히 곰이 옆으로 다가가 가슴팍이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지 확인하곤 했다. 

이 모든 과정은 아주 천천히, 자연스럽게 이어졌기 때문에 새로운 증세와 퇴화를 마주해도 당황하기보다 섭리를 이해하며 곰이의 상태에 금방 적응하게 됐다. 동물병원에 가는 날과 투여할 약이 점점 늘어났지만, 나는 여전히 예상하지 못했다. 곰이와의 마지막 날을.      


곰이야너 이러다 스무 살 넘기겠어.”

본격적인 간병은 작년 말부터 시작됐다. 곰이는 남은 한쪽 눈의 시력마저 잃게 됐다. 어물어물 뭔가 보일 때는 스스로 밥도 물도 먹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됐다. 그전까지는 담담히 노화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던 곰이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이유 없이 짖기도 하고, 뭔가를 감지한 레이더처럼 쉬지 않고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다. 청력과 시력, 기력을 잃은 곰이는 이어서 입맛을 잃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입맛 떨어지면 곧 가는 거야. 못 먹는 데 장사 있니.” 반쯤 포기한 듯한 엄마의 말을 듣고 덜컥 겁이 났다. 그리고 한겨울 눈 덮인 산에 산수유를 찾아 나설 기세로 곰이 입맛에 맞는 반려견 식품을 사다 날랐다. 곰이가 새로 사 온 통조림을 적당량 먹고, 혀로 코와 입 주변을 열심히 그루밍하는 모습을 보면 왠지 마음이 놓였다. 작은 티스푼으로 조금씩 밥을 떠먹이고, 주사기로 물을 먹이고, 안간힘 쓰며 거부하는 약까지 먹이고 넣고 바르고 나면 오늘도 한고비 넘긴 기분. 틈틈이 배변 패드를 체크하고 자세를 바꿔주고, 쩝쩝거리며 입맛 다시는 소리가 크게 들리면 또 주사기로 물을 먹였다.  

아주 놀랍게도 나중에는 이 과정마저 익숙해졌다. 눈뜨자마자 곰이를 먹이고 자기 전까지 보살피는 게 일과였는데, 그 모든 시간이 귀찮거나 번거롭지 않았다. 몇 달 뒤, 현 상태를 유지하는 곰이를 보면서 우리 가족은 “곰이야, 너 이러다 스무 살 넘기겠어.” 하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온 가족이 곰이 간병에 익숙해지자, 우리는 서로 역할을 분담하며 점차 자기 생활을 찾아갔다.      


아무래도 오늘이 마지막인 것 같아.”

오랜만에 집을 비운 날이었다. 홀가분하게 외출한 게 너무 오랜만이라 머릿속에서 곰이를 까맣게 지운 채 신나게 웃고 떠들고 있었는데, 집에서 전화가 왔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곰이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발을 밟혀도 짖지 않는 곰이가 저렇게 악을 지른다고? 아침까지만 해도 밥도 물도 약도 잘 먹고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는데? 

집에 돌아오자 그사이 지쳤는지 곰이는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얕은 숨만 쉬고 있었다. 그동안 숱한 고비를 지나오면서 한 번도 하지 않은 말을 힘들게 내뱉었다. “아무래도 오늘이 마지막인 것 같아.”     


곰이야잘 가고생 많았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곰이에게 속삭였다. “곰이야,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 이제 편하게 해줄게. 누나가 더는 아프지 않게 해줄게.”

곰이 간병을 시작하면서 다짐한 한 가지는 절대로 내가 먼저 곰이를 놓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자, 내가 망설일수록 곰이의 고통은 심해진다는 것, 그리고 이제 곰이를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마지막으로 정량의 두 배인 진통제를 먹인 후, 동물병원에 전화해서 안락사를 문의했다. 견주 의사가 아닌 반려견의 상태에 따라 결정하게 되므로 일단 진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에게 곰이를 보여주자, 선생님이 더 급해졌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얼른 편하게 해주자고. 

선생님께서 간단하게 절차를 설명해주시는데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럼 곰이는 전혀 고통을 못 느끼나요? 자기가 가는 줄도 모른 채 가는 건가요?” 물으니 깊은 잠에 빠질 거라고 하셨다. 만날 때마다 늘 무뚝뚝한 표정이었던 선생님은, 곰이 귀에 대고 다정한 목소리로 “곰이야, 잘 가. 고생 많았어. 우리 꼭 다시 만나자.” 인사를 건넸다. 마지막 주사를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주 낮게 오르내리던 곰이의 가슴이 완전히 멈췄다. 

아직은 따뜻한 곰이의 몸과 굳은 다리, 말랑말랑했던 귀, 절대 만지지 못하게 했던 코를 어루만지며 이 촉감을 절대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곰이야, 네가 보고 싶은 날엔 뭐든 꺼내 볼 수 있지만, 만지고 싶은 날엔 어떡하지? 하면서.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는데, 나는 곰이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살아 있을 때도 나를 너무 많이 기다렸으니까, 이제는 누구도 기다리지 말고 편하게 지냈으면.      


안녕, 곰이야. 우리 꼭 다시 만나. 그땐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모습으로, 늙지도 아프지도 않은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누나가 마지막 안약을 늦게 지어 와서 미안해. 거기선 너 좋아하는 산책 많이 하고 있어. 다시 만나 함께 걷는 그날까지 안녕.            


권정미  

프리랜서 작가. <자전거를 타는 동안에>를 썼으며 다수의 브랜드와 작업 중이다. 


위 글은 빅이슈 11월호 21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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