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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Dec 24. 2019

[스페셜] 인자하지만 위대했던 리더, 망고

너를 기억할게 5. 마당 고양이, 동네 1인자 망고를 기억하며


글·사진 윤미인          





멀리서 보아도 확연하게 커다란 풍채. 우아하고 여유로운 발걸음. 유유히 걸어오다가도 갑자기 기지개를 펴는 느긋함. 마치 자신이 한 마리의 숫사자인 양 늠름한 자태를 뽐낸다. 나의 고양이 망고는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이 구역 대장임을 단박에 알아차릴 정도로 기골이 장대한 고양이었다. 

한동안 망고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던 동네 고양이들은 모두 꼬리를 내리고 쫓겨났다. 얼굴이 유독 크고 둥글넓적한 구대장이 왕년에 자신의 모습이 그리운 듯 이따금 마당을 기웃거렸지만 망고에게 들키는 순간 여지없이 아웅아웅 울면서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다. 다리가 짧아 꼭 너구리 같은 윗동네 고양이도 몇 번인가 영역을 넓혀보려 내려왔지만 결국 자신의 구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 동네 고양이들은 웬만해선 망고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유일한 적수가 한 마리 있었는데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나 괜히 고양이들의 뒷덜미를 물고 괴롭히던 깡패 고양이 바지였다. 이 둘의 결투는 쉬이 결판이 나지 않아 몇 달간이나 지속되었다. 끊이질 않는 싸움에 온 가족이 한마음으로 망고의 승리를 응원하고 돕기도 했다. 

서울에서 남편의 집냥이로 살던 망고는 몇 년 전 나와 함께 원주로 내려왔다. 좁은 내 집과는 달리 마당이 있는 시골 집에서 집과 마당을 오가며 지내기 시작했다. 여전히 본색은 집에서 키우는 반려묘였지만, 길고양이들과도 어울리며 동네를 장악하기 시작했고 나 역시 그런 망고님을 응원해 드렸다.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면 바로 시무룩해하며 갖은 방법을 써서 탈출을 감행했고, 망고가 드나드는 문을 만들어준 후에는 마당과 집안을 오가며 자유롭게 지냈다. 


피의 결투 끝 얻어낸 평화

동네 평정을 위해 잦은 결투에 나서는 망고를 나와 남편은 응원하며 매일 캔을 갖다 바치고 ‘궁디팡팡’을 해드렸다. (망고는 엉덩이를 톡톡 쳐주는 궁디팡팡을 가장 좋아하는데 웬만해서는 만족하지를 않기 때문에 집사의 팔이 아파오고 손바닥이 얼얼해질 때까지 멈출 수가 없다.) 어머님은 집안일을 하시다가도 고양이 싸우는 소리만 나면 빗자루를 들고 나가서 망고 편을 들며 다른 고양이를 쫓아내었다. 망고에게는 인간이라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게 우리의 막중한 임무였다. 하루는 평생 처음 들어보는 엄청난 고양이 비명이 뒷마당에서 났다. 놀라서 신발도 신지 못하고 맨발로 뛰쳐나가보니 여지없이 망고와 바지가 붙어서 싸우고 있었다. 그날따라 어찌나 싸움이 격렬했는지 서로 발길질을 할 때마다 뽑혀 나온 털들이 하얀 눈처럼 온 사방에 날리고 있었다. 사람이 말려도 다시 붙어 싸우는 두 녀석을 억지로 떼어놓자 바지는 아쉬운 듯 도망가고 망고는 한참이나 씩씩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날은 아마도 둘 다 작정을 하고 죽기 살기로 붙었던 날이었으리라. 그 뒤에도 몇 번의 싸움이 있었으나 결국 바지는 물러났다. 

숙적이었던 바지가 사라진 뒤 우리 집에는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망고는 적 앞에선 사납고 무자비한 맹수였지만 가족 앞에서는 애교가 넘치는 아기 고양이였다. 집 안에도 당당하게 들어와 자신의 머리를 사람 다리에 비비고 뒹굴뒹굴 구르며 골골 소리로 한껏 어리광을 부렸다. 부모님도 이놈 어딜 들어와 하면서도 귀여운 몸짓에 맘이 약해져서 그럼 조금만 있다가 내보내라고 하실 정도였다. 한편 마당에서는 망고가 인자한 고양이들의 리더가 되었다. 망고는 자기 영역을 철저하게 지키면서도 마당에 오는 새끼 고양이들과 암컷 고양이들은 내쫓지 않았다. 오히려 새끼 고양이들이 밥그릇에 머리를 들이밀면 기꺼이 자기 밥그릇을 내어주었다. (밥을 자꾸 내주어서 집사는 망고의 밥상을 따로 차려드려야 했다.) 그렇게 망고와 망고의 은총을 받은 고양이들이 함께 마당에서 살게 되었다. 현관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망고와 고양이들. 데크에 누워 나른하게 일광욕을 즐기는 망고와 고양이들. 담벼락 위에서 식빵을 굽는 망고와 고양이들… 나는 이 아름다운 고양이 풍경이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찾아와주는 것이 기뻤다. 오래도록 볼 수 있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것은 안일한 바람이었을까.





자책보다 그리움으로

나는 시골에 살면서 생각지도 못하게 많은 동물의 죽음을 접하게 되었다. 집 밖에서 사는 동물은 사람의 돌봄을 받아도 어쩔 수 없이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된다. 쉽게 병에 걸리고, 싸우다 다치고, 사고가 난다. 꾸준히 밥을 먹으러 오던 고양이가 어느 날부턴가 안 보이는 경우도 부지기수이고, 태어난 지 며칠 안 된 강아지들이 동시에 죽기도 한다. 아침에는 쌩쌩하게 뛰놀던 애들이 몇 시간 후에 갑자기 쓰러져 떠나는 경우도 보았다.    

그래도 나는 망고가 그렇게 쉽게 내 곁을 떠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망고는 강하고 똑똑한 고양이니까 아주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서 무병장수 고양이가 될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랬는데. 올여름, 망고를 급성 췌장염으로 보냈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마주친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잔병 한번 앓은 적이 없었던 고양이 망고는 자신이 아픈 것이 충격이었는지 식사를 완강히 거부했고 더욱 쇠약해져만 갔다. 튼튼하고 강인했던 망고가 한순간에 생을 내려놓았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나는 망고가 이렇게 죽진 않을 거라고. 이겨내고 다시 건강해질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망고가 떠난 후 직접 내 손으로 아이를 묻어주었음에도 그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마당에 서 있으면 여느 때처럼 어디선가 꼬리를 바짝 세우고 애옹 하며 나타날 것만 같았다. 망고는 이제 없는데 모든 것이 그대로인 풍경이 기이하게만 느껴졌다. 아무것도 모른 채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는 강아지도 괜히 밉고, 밥 달라며 보채는 염치없는 고양이들도 원망스러웠다. 무엇보다 망고를 살리지 못한 나에게 자꾸만 화가 났다. 처음에는 그렇게 자책과 원망이 뒤섞인 그리움으로 괴로웠다. 서울에서 집 고양이라 안전하게 살던 아이를 시골에 내려온 후 너무 풀어 키운 것은 아닐까. 아이가 아픈 것을 왜 미리 알지 못했을까 모든 것들이 자책의 이유가 되었다. 망고가 떠난 후 무심히도 시골의 시간은 잘도 흘러갔고 지금은 자책보다는 그리움으로 아이를 기억하려 한다. 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지만 자책만 하다가는 망고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괴롭게 남아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망고 덕분에 행복했다. 우리는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추억을 나는 행복의 색으로 기억하려 한다. 그래서 혹시 누가 망고에 관해 묻는다면 비록 짧은 생이었지만 우리 망고는 그 어떤 고양이보다도 착하고 똑똑하고 강했으며 최고로 멋진 삶을 살다간 고양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윤미인  

서울에서 북마케터로 일하다가 대도시에 염증을 느끼고 강원도 원주로 내려왔다. 지금은 남편과 함께 라멘과 카레를 파는 ‘참새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chamsaesigdang     


위 글은 빅이슈 11월호 21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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