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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Dec 24. 2019

[녹색빛] 나를 키워주는 반려식물


글·사진제공 김수지



바질



작년 여름, 두 친구가 우리 집에 왔습니다. 1미터 남짓한 키에 초록의 머리를 한 이 친구들은 떡갈잎고무나무, 녹보수입니다. 얼떨결에 선물로 받게 된 이 친구들과 마주했을 때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조그만 화분을 집에서 키우다 말려 죽이기를 반복했던 저에게는 계획에 없던 큰 일이 일어난 거죠. 걱정과 다르게 지금 우리 집 화분은 열 개로 늘어났습니다. 무엇이 저를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제가 키워본 거라곤 어릴 적 가족과 함께 지낸 강아지가 전부였습니다. 집안일에 무심한 저에게 식물은 하나의 장식품에 불과했나 봅니다. 밥을 달라고 하지도 않고 놀아달라고 하지도 않으니 주의를 기울이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죽어간 화분이 늘어갔고 죄책감에 더 이상 화분을 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선물로 받은 두 나무를 받고 나서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려동물처럼 식물을 돌보았다면 그리 쉽게 보내지 않았을 텐데.’


두 나무에 대해서 아는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대부분 식물을 말려서 죽이기보다는 물을 많이 줘서 죽인다는 것 외에는. 두 식물을 알아가기 위해 더 유심히 관찰을 했습니다. 매일 아침과 저녁에 흙속, 잎, 수피의 상태를 꼼꼼히 지켜봤습니다. 기온, 습도, 채광에 따라 흙이 말라가는 속도도 달랐습니다. 자연스럽게 화분마다 물 주는 시기는 여러 환경적인 요인과 식물의 상태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끔 물주기를 깜빡하고 출근했던 날에는 기운 없이 늘어져 있는 나무에게 달려가 물을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생생하게 우뚝 서 있었습니다.


바질 화분을 분갈이하다가 흙 속에서 유쾌하지 않은 움직임을 발견했습니다. 예상하셨겠지만 지렁이였습니다. 지렁이가 소화시키는 흙을 분변토라고 하는데 식물에게 좋은 양분을 제공한다고 하기에 눈 딱 감고 화분에 넣어줬습니다. 같은 바질이지만 지렁이가 있는 화분 속 흙의 수분이 빠르게 말랐습니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지렁이 덕에 물도 두 배는 자주 줘야 했고 잎도 두 배로 자랐습니다. 징그럽게만 느껴지던 지렁이에게도 애정이 생기더군요. 지렁이가 잘 먹는다는 부드러운 과일 껍질을 흙 속에 넣어주곤 했습니다. 가끔 지렁이 밥을 넣어주고 생존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짜릿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썩는 잎 하나 없이 잘 자라는 친구들과 지내며 저는 괜찮은 가드너라고 자만했나 봅니다. 지난겨울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날 떡갈잎고무나무를 베란다에 그대로 두는 바람에 냉해를 입고 죽어갔습니다. 하루만 빨리 옮겨줬더라면 그 친구는 살 수 있었을 텐데. 미안함과 함께 방심은 금물이라는 교훈을 가슴에 담아두고 함께 있는 친구들을 더 잘 돌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식물을 키우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장기간 집을 비울 때 물 주기였는데, 얼마 전 ‘자동 화분 급수기’라는 것이 1만 원 내외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니구나.’ 식물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아지니 정보와 아이템이 다양해지고 있나 봅니다.


식물이 우리 집에 온 뒤로 여러 상황을 마주하며 식물들에게 많은 애정이 생겼습니다. 밥을 달라고, 놀아달라고 식물들은 자기 방식으로 말을 건네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살아 움직이는 친구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인지 가지치기와 잎을 솎아내는 것은 그 친구의 머리를 뜯어내는 것 같아 여전히 어렵습니다. 길가에서도 어렵게 보도블록 사이에서 자리 잡은 식물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눈길이 한 번 더 가네요.


또 다른 생명을 돌본다는 것은 너무 멋진 일입니다. 반려동물보다 반려식물 돌보기를 시도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테리어 소품 중 하나로 전락하여 이 친구들이 소비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반려식물과 깊이 있는 관계를 맺으면서 야생의 식물들도 소중한 생명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진귀한 경험을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극락조



김수지  녹색연합 활동가.


위 글은 빅이슈 11월호 21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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