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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Dec 31. 2019

[칼럼] 21세기 최명길을 기대한다


 성현석 



Reuters/News1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최명길을 생각하다

북한과 미국 관계가 다시 험악해졌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 역시 계속 깊어지기만 한다. 한국과 일본, 한국과 러시아 사이의 관계 역시 종전과 다르다. 국제 정세가 이렇게 격동할 때면, 흔히 역사 속 장면들을 호출한다. 망국을 앞둔 19세기 말, 혹은 병자호란을 겪은 17세기 조선을 주로 예로 든다. 모두 외교를 제대로 못해서 비극을 겪은 사례다. 

마침, <최명길 평전>이 최근 출간됐다. 최명길은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농성할 때, 화친을 주장했었다. 당시로선 정치적 소수파였다. 저자인 한명기 교수는 앞서 병자호란을 다룬 책을 냈었다. 이번 책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다. 요즘 상황과 맞물려 눈길을 끈다. 

병자호란 당시 및 이후 역사 전개를 알고 있는 우리는 아주 쉽게 당시의 척화파를 비웃는다. 현실을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능력도 없으면서, 관념적인 명분에만 사로잡혀, 그저 자기만족에 그치는 정치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찬찬히 따져보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명분을 좇는 게 과연 비난받을 일인가. 명분 따위 중요하지 않다며, 오로지 실리만 찬양했던 정치의 말로를 우리는 잘 안다. 이런 정치를 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법정 구속됐었다. 정치인이 명분 대신 실리를 강조한다고 해서, 국가에 이익이 쌓이지도 않는다. 법과 원칙이 훼손되면, 약육강식의 혼란만 깊어진다. 실리를 위해서도 해롭다. 아울러 척화파를 비웃는 논리는 비굴한 강자 숭배로 이어지기 쉽다. 우리에게 힘이 없으면 무조건 비굴해져야 하는가. 힘이 더 센 자에게 저항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인가. 그렇다, 라도 답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화친을 주장했던 최명길이 비난받아야 하나. 그렇지 않다. 다들 알다시피, 그는 당시로선 현명한 선택을 했다. 다시 머리가 복잡해진다. 비굴함과 현명함은 서로 통하는 것인가. 둘 사이에 과연 차이가 없나. 


명분과 실리의 대립도 결국은 이익과 이익의 갈등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안에서 벌어진 논쟁을 명분과 실리의 대립으로만 보는 것은 그래서 위험하다. 이런 구도에서 승자는 늘 정해져 있다. 나라가 망하는 마당에 명분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결국 실리가 최고다. 이런 결론은 이명박 식 정치를 이롭게 한다. 

세상에 실리를 완전히 무시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나름의 방식으로 개인과 공동체의 이익을 좇는다. 다만 이익을 향한 질주에 대해 어떤 규칙을 적용하느냐를 놓고 논쟁할 따름이다. 명분을 강조하는 이들은 조금 더 강한 규칙을 요구할 따름이다. 

마찬가지로 명분을 완전히 무시하는 사람도 없다. 오로지 탐욕만으로 똘똘 뭉친 듯싶은 사람도 잘 이야기해보면, 자기 나름의 명분을 갖고 있다. 자기 정당화를 위해서는 명분이 꼭 있어야 한다. 실리를 좇으려면 부지런해야 하는데, 그 에너지는 자기 정당화에서 나온다. 스스로 부끄러운 짓을 한다고 여기면, 열정도 생기지 않는다. 열정을 불어넣은 것은 대개 명분이다. 

따라서 잘 뜯어보면, 명분과 실리의 대립처럼 보이는 현상도 이념과 이념의 갈등이다. 아울러 이익과 이익의 갈등이다. 양쪽 다 자기 이념과 제 몫의 이익이 있다.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최명길의 현실 감각을 찬양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은 최명길의 이념이 무엇이었는지, 최명길이 지키려 했던 이익이 누구 몫이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실리에도 철학이 있고명분에도 이익이 있다

21세기 한국은 시험의 나라다.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치른 몇 개의 시험이 인생을 상당 부분 결정한다. 조선은 더했다. 과거 합격 여부가 삶을 통째로 결정했다. 시험의 나라, 조선에서 최명길은 최고의 엘리트였다. 과거 시험은 초시부터 전시까지 여러 단계로 돼 있다. 그런데 그 여러 시험을 한 해에 다 붙어버렸다. 지금으로 치면, 대입수능시험과 고시 1, 2차를 같은 해에 합격한 셈이다. 고시 제도가 생긴 이래 이런 경우는 없었다. 최명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조선 500년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시험 엘리트 가운데 많은 수는 체제의 주류 이념을 철저하게 체화한다. 그래야 시험에 쉽게 붙고, 합격 이후의 삶도 순탄하다. 최명길은 조금 다른 경우였다. 당시로선 비주류 사상이던 양명학을 깊이 공부했다. 과거 시험에 도움이 안 되고, 출세에 방해가 되는 공부다. 

최명길의 현명한 외교 노선은 그의 사상과 함께 살펴야 한다. 그래야 이명박 식 정치를 찬양하는 위험을 피할 수 있다. 당대 주류 이념인 성리학은 사람이 공부를 해야만 진리에 다가간다고 가르친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은 진리에서 멀어져 있고, 따라서 그가 하는 이야기는 무시해도 된다. 아울러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이 권력을 쥐어서도 안 된다.

양명학은 다르다. “이업이동도(異業而同道)”를 주장한다. 다른 일을 해도 같은 도리를 따를 수 있다는 뜻이다. 즉 공부를 하지 않은 농민이나 상인도 공부가 깊은 선비와 같은 길을 갈 수 있다. 

이런 차이는 외교 노선에도 반영된다. 성리학의 눈으로 보면, 무식한 만주족 전사가 천하의 중심에 서는 것은 문명의 파괴에 다름 아니다. 반면 양명학의 눈으로 보면, 만주족 천하 역시 세상의 한 모습일 뿐이다. 공부 대신 사냥과 전투를 하던 이들의 내면에도 한 가닥 옳은 이치는 있기 마련이니까. 

따라서 성리학만 익힌 선비들은 만주족 천하에서 살 바에는 싸우다 죽는 게 나았다. 지금 현실에 비춰 봐도 이해할 만한 태도다. 수구적인 이념에 젖어 자란 사람이 보기에 민주화 운동가들이 집권한 상황은 국가의 파괴일 수 있다. 그런 나라에 사느니, 나라가 망하는 게 낫다고 여길 수도 있다. 반면 역시 보수적인 어떤 사람들은 민주화 운동가들의 집권도 정치의 한 모습으로 여긴다. 국가의 파괴라고까지 여기지는 않는다. 그냥 못마땅할 따름이다. 척화를 주장한 이들이 비현실적인 듯싶지만, 지금 현실에서도 흔한 모습이다. 화친을 주장한 최명길 역시 그저 현실에 순응하기만 한 게 아니며, 나름의 철학에 바탕 한 행동이었다. 


엘리트가 책임감과 역량까지 갖춘다면 

최명길은 과거에 아주 일찍 붙었으므로, 정치도 이른 나이에 시작했다. 따라서 젊은 나이에 고위직을 지냈고, 결과적으로 정치 세계에 오래 남았다. 병자호란 이후 그는 영의정이 됐다. 그러면서 그는 명나라와 물밑 외교를 했다. 지금 우리는 명과 청의 전쟁에서 청나라가 최종 승자가 됐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당대 정치인은 전쟁의 결과를 모르니까, 명과 청 모두와 잘 지내야 했다. 명과 청의 전쟁이 청의 우세로 기울자, 명나라 고위직들이 기밀문서를 청에 넘겼다. 거기에 최명길이 명에 보낸 문서도 담겨 있었다. 청나라와 화친하자던, 그래서 청에 가까워 보였던 정치인이 실제로는 명과 몰래 손잡았다는 사실에 청 황제는 크게 분노했다. 아무리 전쟁에서 졌다지만, 일국의 정승인데, 최명길은 청에 잡혀가 투옥됐다. 청 황제에게 불려가 조사를 받는 내내 최명길은 당당했다고 한다. 아울러 명과의 물밑 외교가 모두 자기 책임이며, 자기 혼자 벌인 일이라고 했다. 

시험의 나라 조선을 흔히 비웃지만, 그렇게 배출된 시험 엘리트의 책임감과 역량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얼마 전, 대입수능시험이 있었다. 이 시험으로 배출된 엘리트 중에도 현대의 최명길이 있기를 기대한다. 


성현석

 언론인. 16년 남짓 기사를 썼습니다. 앞으로는 다른 글을 써보려 합니다. 


위 글은 빅이슈 12월호 21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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