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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an 03. 2020

[스페셜] 마음만은 엘사, 현실은 올라프?

<겨울왕국 2> 싱어롱 체험기


황소연 

사진 디즈니코리아제공





주말 저녁의 싱어롱. 그것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겨울왕국 2>의 싱어롱 예매 전쟁에 참전했다. 이미 몇 개의 멀티플렉스 관은 좌석이 매진되거나, 한두 자리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겨울왕국>에 대한 나의 부족한 지식과 덕력을 보충하기 위해, <겨울왕국> 시리즈 덕후 두 명을 대동했다. 일요일 저녁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세 좌석 예매에 겨우겨우 성공했다. 남은 것은 노래방 갈 때도 안 하던 연습. 스트리밍 어플은 물론이고, 유튜브에 있는 각종 커버를 보면서 OST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쳤다.


비장하게 영화관으로 들어가는데, 여기저기서 “여기 싱어롱 관 맞아요?” 하고 묻고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영화관 입장 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싱어롱 관’이라는 안내가 딱히 없기 때문에, 영화관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어리둥절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 단위의 관객, 엘사 드레스를 입은 어린이들, 혼자 온 관객 등 다양한 이들로 자리가 금방 찼다.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마침내 엘사가 영화의 대표곡, ‘Into the unknown’을 부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노래 연습은 많이 했지만 영화의 어느 지점에서 노래가 나오는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어정쩡하게 따라 부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노래방 모니터처럼 박자에 맞춰 친절하게 가사를 짚어주긴 한다. 자신감이 없으니 모기만 한 목소리로 겨우 ‘싱어롱’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친구들은 이미 한 번 영화를 보았기에 노래를 쉽게 흥얼거릴 수 있었다고 한다. 양쪽에서 작게 ‘아아아아~’ 하는 소리와 후렴구인 ‘Into the unknown~’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상상했던 것처럼 영화관 전체의 사람들이 노래를 떼창 하는 풍경은 볼 수 없었다. 서로 민망했던 탓일까? 엘사의 노래가 정점으로 가는데도 영화관은 조용했다. ‘<겨울왕국 2> 노키즈존을 만들어 달라’던 일부의 요구가 무색할 정도로 어린이들의 함성이나 떠드는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분위기를 견디다 못한 관객 한 명이 노래가 끝난 후 용감하게 외쳤다. “싱어롱 관이에요! 같이 노래 불러요~” 


흥얼거려도목청껏 불러도 모두가 행복한 순간

<보헤미안 랩소디> 때부터 싱어롱을 즐겼다는 친구는 뜨뜻미지근한 관객들의 반응을 이렇게 분석했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경우, 노래가 모두 대중가요이고 따라 부르기도 쉽지만 <겨울왕국>은 다르다. 또 노래를 정확하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어른이 적합한 복장을 갖춰서 오기 힘든 탓도 있다. 성인이 퀸의 프레디 머큐리를 따라 하긴 쉽지만, 엘사나 안나 분장을 하고 영화관에 방문하긴 어렵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고음의 대행진인 <겨울왕국 2>의 노래들은 평범한 가창력(?)을 가진 대부분의 관객들의 경우 가성으로 따라 부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웅장한 영화관의 음향설비 속에서 들리는 노랫소리는 스스로의 목소리뿐. 게다가 가창력의 차이 때문에 ‘민폐’가 될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 내 목소리가 ‘엘사’보다는 ‘올라프’의 ‘아아아아~’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내 열창이 누군가의 몰입을 방해한다면? 관객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노래하지 않는 이상은 싱어롱을 통해 벅찬 감동을 얻기는 어려워 보인다.


여전히 노래를 부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동시에 웃음이 터진 장면은 있었다. 크리스토프가 안나를 생각하면서 부르는 ‘Lost in the woods’에서다. 전성기의 웨스트 라이프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 스타일과, 갑자기 로맨틱 코미디로 장르가 바뀐 듯한 구성의 장면들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영화가 끝난 후, 운 좋게 오른쪽에 앉은 관객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2020년이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황아현 씨는 생애 첫 싱어롱으로 <겨울왕국 2>를 선택했다. “혼자 흥얼거리면서 보기 좋은 것 같아요.” 그는 가장 매력적인 장면으로 엘사가 ‘Show yourself’를 부르는 장면을 꼽았다. 


덕후 친구들은 안나의 선택뿐만 아니라 엘사의 선택으로 완벽함을 이뤄내는 ‘콤비플레이’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2편이 노래가 어려운 편이다. 노래 자체는 좋은데, 너무 음이 높다. 화면은 너무 예쁘다. 안나의 캐릭터도 밝고 철부지 스타일이었는데, 2에서는 자기의 왕국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감동이 있었다.”


멋있게 부르기는 힘들더라도, 싱어롱이 주는 ‘흥얼거릴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를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당신이 만약 태연이나 정은지, 패닉 앳 더 디스코(Panic! at the disco)의 보컬 브랜든 유리처럼 파워풀한 가창력을 갖고 있다면 본의 아니게 영화관에서 주목받을지도 모른다. 노래를 잘하지 못하더라도, 가끔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날이면 싱어롱을 예매해보면 어떨까. 누군가에겐 올라프의 목소리처럼 들리지 않을까 걱정하지말자.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음향이 충분히 좋으니까. <겨울왕국 2>가 극장에서 내려가기 전까지, 나는 종종 싱어롱을 하러 갈 것 같다.





위 글은 빅이슈 1월호 21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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