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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an 03. 2020

[욕아일기] 육아는 B와 D 사이의 C다

좋은지(best) 긴가민가(doubt), 선택(choice)

이게 정말 좋은지(best) 매 순간 긴가민가(doubt), 선택(choice)은 엄마의 몫

글‧사진 박코끼리     





나는 원래 ‘결정장애’와 거리가 먼 사람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차를 사거나 집을 구하는 나름 중대한 결정도 큰 하자만 없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자마자 계약해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당연히 후회를 할 때도 있지만 늘 만족할 만한 선택을 하기보다, 내 선택에 만족하는 편이었다. 내 인생의 영역에서는 대충 그렇게 살아왔다. 내 결정에 대한 최고 수혜자와 최대 피해자는 나 자신이고,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면 그뿐이니까. 하지만 육아는, 내 자식을 위한 엄마로서의 선택은 아주 다른 일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3~4주 내에 ‘BCG’라는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흔히 ‘불 주사’라 불리는 결핵 예방 접종인데, 보건소에서 무료로 보급하는 ‘피내용’과 일반 병원에서 7~10만 원 정도의 추가 비용을 내고 맞는 ‘경피용’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두 가지 모두 각각의 장단점이 있고 알아볼수록 고민이 깊어지는 공통점이 있다. 이게 아마 부모라면 누구나 겪는 첫 관문일 것이다.


분유, 기저귀, 젖병, 유모차, 카시트 등등 아주 생소하고 방대한 품목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비우고 주문했다 취소하는 똥개 훈련을 반복한다. 수많은 브랜드와 가성비로 뒤엉킨 정글을 지나면 다양한 소재와 디자인으로 가득한 미로가 나타나고, 실사용 후기 또는 지인들의 조언에 따라 갈림길과 막다른길이 들쑥날쑥 이어진다. 누구에게 어떻게 물어도 돌아오는 결국 답은 하나. “전적으로 엄마의 선택이죠.”


처음 분유를 고를 때까진 엄마라기보다 그냥 나였다. 가격과 성분 정도를 며칠 비교한 후 수입산 A분유를 선택했고 아이가 별 탈 없이 잘 먹는 것에 만족했다. 그렇게 한 달쯤 먹였을까.  아이가 먹고 있는 분유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뉴스를 뒤늦게 확인하게 됐다. 손이 덜덜 떨려 관련 기사를 읽는 동안 핸드폰을 몇 번이나 떨어뜨릴 뻔했다. 곧바로 분유 회사에서 자체 검사 상으론 문제가 없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고 법석이던 맘카페도 금세 잠잠해졌지만 도저히 찜찜해서 아이에게 먹일 수가 없었다. 





그 분유를 골랐던 내 자신을 한동안 말도 못 하게 괴롭혔고 그 경험치는 나를 초기화 아니 초토화시켰다. 나의 무지와 무성의한 선택에 내 아이의 건강이, 나아가 인생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걸 자각하게 됐다. 그 후 혼자 ‘육아용품 월드컵’을 몇 차례 치렀다. 분유는 물론이요, 젖병 교체 시기에는 PPSU, PP, 유리, 세라믹, 실리콘 등 각 소재별 특성과 환경호르몬 관련 외국 자료까지 번역해서 찾아보며 돌다리에 피멍이 들도록 두들겼다. 


프로모션에 혹해 구매한 기저귀, 한 끼 간단하게 먹이려 주문한 패스트푸드,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결정한 어린이집. 아이는 오롯이 부모의 선택으로 짜인 일상 속에서 먹고 놀고 자란다. 하지만 바로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 이 숱한 보통날 속에 끔찍하고 섬뜩한 불행이 내 아이를 노리고 있다. 선택은 엄마의 몫이지만 사고는 엄마의 탓이 아니라는 걸 또렷하게 알고 있음에도, 만약 내 아이에게 뉴스로 봤던 재앙이 덮친다면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이 저마다 생김은 달라도 무게는 같을 것이다. 너무 거대하고 무거워서 어디 잠깐 치워둘 수도 없는 애달픔. 내 아이에게 손을 뻗는 불행이 나를 통해 굴절되길 바라며, 내가 알고 믿는 모든 것과 나 자신을 한 번 더 의심함으로 안심한다. 이렇게 애 하나를 키우기 위해 하루하루 애가 달는구나 싶다.           


박코끼리  

하나라도 얻어 걸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쓴다. 

요즘은 일생일대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주로 참을 忍을 쓰고 있다.


위 글은 빅이슈 1월호 21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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