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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an 16. 2020

[인터뷰] 차근차근 내 것을 만들어나간다

nache, 이다진


 문재연 

사진 민가을



스카프, 스타킹 에디터 개인소장 그 외 전부 nache


2018년 나른한 눈의 쌍둥이 모델로 등장하여 숱한 포토그래퍼와 에디터의 시선을 사로잡은 이다진은 같은 해 여름, 올 블랙 앤 화이트로 구성된 컬렉션을 선보였다. 끈이 주렁주렁 달린 비대칭 블라우스는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웠고, 한복 원단으로 만든 드레스는 에로틱하면서도 편안한 룩을 제안했다. 빠르게 품절된 ‘a moist bone’ 컬렉션을 시작으로 한 시즌도 쉬지 않고 아방가르드 여성복을 선보이고 있는 nache의 대표 이다진을 을지로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이제 스물여섯 살이 되었고, 홍익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섬유패션디자인과에 재학 중인 모델이자 디자이너 이다진입니다. 


패션디자인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처음 부산에서 서울에 올라온 이유가 디자인하고 싶어서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올라온 거였거든요. 재수해서 홍대 가고 싶어서요. 진짜 뜻하지 않게 국어국문학과를 가게 됐는데, 복수전공을 하려고 했지만 좀 안 됐어요. 포트폴리오도 딱히 수업 들은 걸로 하기에는 모자랐고요. 그러다가 겨울방학에 학교에 창업 지원해준다는 게 있어서, 그걸로 패턴(치수를 계산하여 종이 위에서 옷의 설계를 먼저 하는 평면적 디자인 방식.)학원 다니면서 샘플(옷본과 원단을 샘플실에 맡겨 표본을 만드는 일.피팅과 수정 과정을 거쳐 완성본을 만든다.)을 만들었어요. 그걸 인스타그램에 올려서 세 품목을 팔았는데, 더 해보고 싶어서 홈페이지를 만들게 됐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즌별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부산에서 서울에 올라온 계기가 있다면요?

그때도 이 일과 관련이 없는 경영정보학과에 다녔거든요. 제가 원래 옷에 관심이 많은데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안 해봤었어요. 그때 제가 교양으로 ‘진로와 자기계발’이라는 걸 들었는데,(웃음) 이게 필수교양이었거든요. 거기에 어떤 분이 패션디자인 MD 쪽으로 일하고 싶었는데 자기가 서울에 못 간 게 너무 후회가 된다는 거예요. 그때 ‘어, 나 진짜 여기 있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분한테 가서 PPT 좀 달라고 그랬어요. 그 다음 날에 PC방을 갔다 왔는데 갑자기 현타가 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다음 날 바로 자퇴했어요, 엄마한테 말도 안 하고.(웃음) 학교 다니는 척하면서 대학 도서관 가서 공부하고 그러다가 한 달쯤 후에 부모님께 말했죠, 사실 자퇴했다고. ‘가서 나도 옷과 관련된 걸 해봐야겠다’ 싶어, 일단 서울로 올라와 재수를 시작했어요. 


브랜드 nache는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는지.

제가 아방가르드를 진짜 좋아하는데 솔직히 예쁘고 드레이핑 많이 들어간 국내 여성 아방가르드 브랜드를 못 봤거든요. 그런 건 다 구제로밖에 구할 수가 없는 거예요. 왜냐면 지금 아방가르드 브랜드는 거의 남자나 유니섹스로만 하잖아요. 아방가르드 디자인을 여성복에 하면 여성스럽고 예쁘게 될 것 같은데, ‘왜 아무도 안 할까’ 싶었어요. 제가 샘플을 배웠어도 진짜 조금 배운 거라서 (패턴을) 잘 못 떴거든요, 근데 드레이핑은 어쩔 수 없이 손으로 해볼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집에서 가봉해보고… 그냥 패턴 떠서 입어보고 ‘어, 잘못했다’ 싶으면 다시 해보고 그랬어요. 그런 식으로 저는 패턴의 기본만 배우고 나머지는 다 해보면서 배웠어요. ‘이 패턴이 됐다’ 싶으면 그걸 샘플실에 맡겨서 하는 식으로요.



전부 nache


그러면 브랜드를 시작한 뒤에야 패션디자인학과에 진학한 것이네요인맥이나 시장에 아는 사람이 있어야 수월했을 텐데비전공자였던 초기에 힘든 점은 없었나요. 

처음에는 좀 어려웠어요. 하나의 큰 작품을 만들 듯이 다 샘플실에 맡기고, 패턴을 제가 원하는 대로 뜨고 싶어도 직접 여러 종류를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패턴을 맡기면 돈도 돈인데 원하는 대로 안 나와서, 그거 때문에 힘들었어요. 이쪽으로 일을 해본 적도 없고 비전공자였으니까 어려웠죠. 만약 시간을 되돌린다면 ‘이런 쪽으로 일을 조금 해보고 시작하는 게 좋지 않나’ 생각해요. 지금도 시행착오를 많이 해요. 항상 새로운 거를 만들고 싶으면, 스카프라든지 니트라든지 다 새롭게 시작해야 되니까요. 


모델과 디자이너를 병행하고 있는데각 직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도 하나요.

비슷한 분야긴 하니까 일적으로, 정보적으로 도움 받는 게 많죠. 일단 자극을 좀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제가 이런저런 옷을 입어보다가 ‘아, 이 옷 진짜 잘 만들었는데’ 이런 자극을 받을 때도 많아요. 그리고 생각보다 원단이 샘플을 했는데 안 어울리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것처럼 (뒤에 있는 두꺼운 원단의 검정색 패딩을 가리킨다) 원단이 진짜 맘에 들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단단해서 갑옷처럼 돼버리는 거예요.(웃음) 샘플로 만들어보고 상품으로 못 내는 경우도 많아요. 상품성을 떠나서 편해야 입을 수 있는 거잖아요. 왜냐면 저도 입어보다가 너무 불편해서 ‘진짜 이거 어떻게 입고 다녀’ 이런 것도 간혹 있거든요. 예를 들어 패턴을 앞뒤 판을 너무 똑같이 짜서 진짜 불편하다거나, 그래서 그때부터 버튼 들어가는 게 싫더라도 그 실용성 때문에 넣기도 해요. 그런 영향을 많이 끼친 것 같아요.      





힘든 것도 제 몫이긴 한데 

좋은 일이 있거나 

성과가 있으면 그것도 제 몫이니까.     


서울에서 자립해서 사는 20대 여성으로서 어떤 점이 힘든가요.

전 공장에서 제가 사장님이라고 말 안 해요. 이거는 저 혼자만의 생각일 수 있는데 여성 차별이 거의 물리적이기보다는 실체 없이 나타나잖아요. 티 안 나게 은근히 무시하는 경우도 많아요. 제가 사장 아니라 위에 도매하는 사장님이 있는데 그 밑에서 일한다고 하면 뭐를 더 많이 해주신다거나, 일정이 앞당겨진다거나 하는 경우가 있어요. 처음엔 이런 걸 모르고 제가 사장님이라고 했었어요. 제가 사장이라고 하면, 어린 여자라서 받는 무시 같은 게 있어요. 일하면서 그런 걸 많이 느껴요.   


본인이 받는 차별이나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남 때문에 포기하기가 싫은 거? 일하면서 힘든 것도 있긴 한데, 사업이라는 거 자체가 백프로 제 일이잖아요. 그래서 힘든 것도 제 몫이긴 한데 좋은 일이 있거나 성과가 있으면 그것도 제 몫이니까, 이게 정직하게 딱딱 나눠지잖아요. 누구 탓할 게 없고. 그래서 힘들다가도 좋은 일 있으면 그걸로 버티게 돼요. 그리고 저는 솔직히 이걸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긴 받는데 ‘이거 진짜 안 해야겠다’ 이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하다 보면 재밌기도 하고, 결과물이 눈에 딱 보이잖아요. 예를 들어 이런 인터뷰하는 것도 좋은 일이잖아요. 그래서 계속 하는 것 같아요. 언제 올지 모르는 그런 좋은 일 때문에.   



전부 nache


작업실이 원단 시장이 있는 동대문이 아닌 을지로에 있는데을지로는 어떤 동네인가요 

을지로라는 동네 자체가 멋있는 동네잖아요. 사무실 임대료가 싼 동네이기도 하고. 일 끝나고 딱 나갔는데 홍대처럼 사람이 진짜 많지도 않고, 동대문처럼 저녁이면 완전 죽은 도시가 되지도 않죠. 제가 한 번 그런 때 가본 적이 있는데 진짜 기분이 별로인 거예요. 근데 딱 여기에 오면 심신에 안정이 된다고 해야 되나?(웃음) 여기서 그냥 커피 마시고 이렇게 있으면 일할 맛이 들어요.(웃음) 그것도 그렇고 주변에 영감 주는 데도 진짜 많고, 앤틱한 데도 많고 갤러리도 있고… 여기 계신 분들 보면 실험적인 분들도 많고 열정 있으신 분들도 많거든요. 그런 거 보면서 자극을 많이 받아요. 


지난해부터 을지로 재개발을 위한 철거가 시작됐어요관련해서 기대나 우려가 있다면요

지금 을지로로 사람들이 모이는 데는 임대료가 저렴한 게 한몫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들 작업실이 필요한데 수익이 많지 않으니까, 저렴한 을지로로 모여든 거죠. 을지로가 옛날 한국 정취를 지닌 곳인데, 그런 게 많이 사라질 것 같아요. 다 철거되다 보면 당연히 집값도 오를 거고. 서울에서 이런 데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본인처럼 서울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독립적으로 해나가려는 젊은 여성들이 많아요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해줄 조언이 있나요.

이건 저만의 방법일 수 있는데, 저는 절대 큰 계획을 세우지 않아요.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해나가요. 큰 계획을 세우면 지키기도 힘들뿐더러 번아웃 되기 쉬워요. ‘나중에 이걸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절대 생각대로 되지도 않고, 다 단계적으로 되는 일인데 큰 것부터 생각을 하면 쉽게 지쳐요. 일단 겁먹지 말고 작은 일부터 했으면 좋겠어요. 


위 글은 빅이슈 1월호 21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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