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빅이슈코리아 Jan 18. 2020

[에디터 에세이] 새해를 맞는 마음

떠나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글·사진 양수복     





모 베스트셀러에선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고 했다. 멈춰서야 보이는 것도 있지만 움직여서 멀리 가야만 보이는 것들도 있다. 발 딛고 선 이곳에선 도무지 결론이 나지 않던 한 해 결산을 450km를 날아간 고향에선 할 수 있었다.      


새해 벽두부터 고향에 다녀왔다. 반년 만이다. 4박5일 일정의 첫날엔 잠을 청하려 누워서도 잠자리가 바뀌어선지 도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뒤척이는 짧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중 하나는 무게였다. 서울에서의 삶이 무거워질수록 고향에서의 나는 가벼워지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서울에 산 지 9년 차에 접어든 나는 점점 비대해지고 있다. 작은 방을 가득 메운 짐만큼, 해왔던 일과 만났던 사람들과 그 안에 깃든 이야기만큼. 


고향 집의 내 짐은 100x60cm의 네모박스 하나가 전부다. 그 안엔 학창 시절 친구와 주고받았던 교환일기와 편지, 자물쇠로 꼭꼭 걸어 잠가둔 일기장과 하모니카, 디지털카메라 등 맥락 없는 물건들이 가득하다. 하루는 그 상자가 보이지 않자 불안해져서 급하게 박스를 찾아다녔다.      


비로소 본 것 1

자유는 경제권으로부터

창고 구석에서 발견된 상자는 점점 작아져가는 내 자리를 대변하는 듯했다. 상자를 서울로 올려보낼까 고민했지만 단념했다. 이것마저 없으면 내가 있던 자리를 증명할 방법이 없을 것 같아서다. 작아진 존재만큼이나 그곳에서의 나는 자유롭다. 


부모님과 같이 살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결혼, 재산, 성공, 안정적 직장이니 하는 생애주기별 과업과 사회적 기준에서 보다 자유롭다. 물리적 거리 덕택에 부딪힐 일이 적다. 함께 <전지적 참견 시점>을 보다가 엄마는 불현듯 “좋은 사람 있으면 데려와”라는 말을 던졌지만 며칠 뒤면 서울로 떠날 딸내미는 당황하지 않고 “송가인은 노래를 참 잘하네” 하며 못 들은 척할 수 있는 깃털처럼 가벼운 존재가 됐다. 


자유를 선물한 건 서울에서의 독립이다. 경제적, 그리고 정신적 독립. 9년 차에 접어든 서울에서 분투한 만큼 배워왔다. 경제권은 나를 지키는 최소한의 방어막이자 꺼내 들 수 있는 마지막 무기란 것을. 내 방 한 칸과 얼마간의 통장 잔고만 있다면 앞으로도 그 무엇도 나를 옭아맬 수 없다. 물론, 역으로 그 두 가지가 없다면 얼마나 취약해질지도 불 보듯 뻔하게 알고 말고다.      


비로소 본 것 2

..못의 재능투쟁

멀리 떠나온 김에 더 멀리 시간여행을 떠나봤다. 방 한구석 책장에서 초등학생 때 썼던 일기장을 발견했다. 나름 어릴 때부터 일기를 열심히 썼다고 자부해왔는데 끝까지 쓴 공책이 몇 개 없었다. 하루 일기를 “나는 오늘 ~를 했다”로 시작하는 습관이 있었던 여덟 살의 나는 글씨가 참 지저분했고 미주알고주알 일상을 나열하곤 했다.


성적이든 운동이든 취미든 잘한 걸 꼭 자랑하듯 적는 재수 없는 면이 있었고 쓸 말이 없으면 알림장 내용을 그대로 베껴 쓰기도 했다. 자꾸 누군가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일기 검사하는 선생님을 위해 막간 초성퀴즈를 출제하고 “몇 월 며칠 날 눈사람을 예쁘게 만들 거니까 선생님도 학교에 왔으면 좋겠다”라며 은근슬쩍 초대장을 건네기도 했다. 


자라온 기록을 아무리 들춰봐도 글 쓰는 재주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글을 업으로 삼고 있다. 이상하지만 당연한 일이다. 천부적인 재능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꾸준한 흥미와 연습이라고 생각한다. 글쓰기에 관심이 없던 시절을 뛰어넘어 어느 날부터 뭐든 쓰고픈 마음이 생겼고, 쓰다 보니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나만을 위한 일기와 독자를 위한 편지를 쓸 수 있게 됐다.  

    

비로소 본 것 3

이만하면 잘 살았구나

일기장을 들춰본 날 밤엔 좋아하는 동네 산에 올라갔다. 꼭대기 정자에 가만히 앉아서 시간을 느꼈다. 가끔 돌아와서 같은 산 같은 자리에 앉는 나는 줄곧 변해오고 있었다. “참 재미있었다”를 늘 일기장 마지막 줄 고정 멘트로 복사+붙여넣기 하던 여덟 살과 지금, 20여 년 사이엔 험준한 계곡이 여럿 있었다.


고향을 대하는 마음은 전과 같을 수 없다. 제주 사람도 서울 사람도 아닌 애매한 정체성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그 산에선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곳에 없던 시간 동안 잘 살았는지, 한 해 동안 후회할 일이 더 많았는지, 칭찬할 일이 더 많았는지, 지난해를 돌이켜봤다. 


분명 연초엔 ‘즐거운 일만 많게 해주세요’라고 빌었던 거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지면에 쓰고 싶지 않은 부끄럽고 속상한 일들도 많았다. 때문에 주저앉고 펑펑 울기도 했으나 함께 걸어줄 사람이 있었고 나 대신 울어줄 사람도 종종 나타났다. 나쁘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만하면 잘 살았어’ 셀프 격려를 건네며 산에서 내려왔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엔 새해 계획에 다짐을 추가했다. 지금처럼 지난날을 돌이켜볼 내년 연초의 나를 위해 올해도 잘 살아내겠다고. 자신 있게 어제보단 오늘의 내가 낫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노라고 다짐을 꾹꾹 눌러 새겼다.      





위 글은 빅이슈 1월호 21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페셜] 모두의 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