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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an 20. 2020

[소셜] 고학력 빈곤 청년은 왜 줄어들기 어렵나


Writer 성현석




전 세계적으로 대학 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빈곤을 겪는 현상은 현재 진행형이다.더 이상 과거처럼 고학력이 고소득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그 원인을 제조업 쇠락을 경험한 북유럽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08년 9월,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다. 당시 나는 핀란드 헬싱키에 있었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등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에 대해 취재하던 중이었다. 혼자 밥 먹던 식당 벽에 걸린 텔레비전 화면에 크게 박힌 CNN 뉴스 자막이 지금도 생생하다.


11년이 지난 지금에야 깨닫는다. 2008년의 몇몇 사건들은 오히려 미디어로 중계된 탓에 의미가 축소됐다. 짧은 뉴스로 담기엔, 너무 큰 사건들이었다.


당시 스웨덴에서 한 노동운동가를 만났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나온 뒤 공장에서 일했다. 굳이 대학에 갈 마음이 없었다. 노동조합 일을 하다 사회과학 공부에 갈증이 생겼다. 우리로 치면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다시 노동조합으로 돌아왔다. 그의 또래에선 이런 경우가 흔했다고 한다. 대학 진학 경쟁률이 그리 높지 않았다. 대학을 나와서 얻는 일자리와 그렇지 않은 일자리 사이의 소득 격차가 적었다. 그러니까 무리해서 대학에 가려 하지 않았다. 진학률이 낮으니까, 대학생에 대해 무상교육을 할 수 있었다. 자기 돈을 들이지 않고, 고등교육을 받은 청년들은 학력에 대한 보상 심리가 적다. 학위에 대해 본전 생각을 덜하게 된다. 그러므로 대학을 나오지 않은 이들과의 소득 격차가 적어도 만족한다. 이는 대학 진학 수요를 낮추고, 무상교육에 대한 정부 부담을 줄인다. 이 같은 선순환 구조가 당시에 이미 깨지고 있었다. 


직업 간 소득 격차가 벌어졌다. 돈을 잘 버는 직업은 대부분 대학 이상 학위를 요구했다. 청년들은 너도나도 대학에 갔다. 고소득 일자리를 얻기 위한 조건이 고학력이었으나,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고학력이 고소득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부모 세대보다 오래 공부했는데, 기대에 못 미치는 소득을 얻는 청년이 늘어났다. 이는 무상교육을 중심에 둔 복지국가 모델에 대한 회의로 이어졌다. 대학생 수가 많아졌으니, 무상교육을 유지하는 비용도 늘었다. 그런데 대학생이 늘어난 이유는 고소득에 대한 기대였다. 고등교육은 개인이 더 높은 소득을 누리기 위한 투자로 여겨졌다. 그렇다면, 그 비용을 왜 보통 사람들의 세금으로 대야 하나. 개인의 주식 투자 비용을 정부가 대주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청년 세대는 불만에 휩싸였고, 복지국가를 유지하는 비용을 대는 중장년층은 회의감에 빠졌다. 복지국가 모델을 설계하고 유지해왔던 사회민주주의 정치 세력은 힘을 잃었다. 복지의 나라에서도 시장주의 우파가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스웨덴 총선에서도, 청년 극우 세력이 약진했다. 한국으로 치면, ‘일베’ 활동을 하는 젊은이들에 빗댈 만하다. 극우 약진은 북유럽 정치의 상수가 됐다. 


그렇다면, 직업 간 소득 격차는 왜 벌어지게 됐나. 짧게 설명하긴 어렵다. 굳이 대표적인 이유를 꼽자면, 제조업 환경의 변화가 있다. 부모 세대는 공장에서 일하면 중산층이 될 수 있었다. 생산 현장에서 오래 일하면 암묵지가 쌓인다. 암묵지란, 책으로 익히는 지식인 형식지의 맞은편 개념이다. 책으로 배울 수 없는 지식이다. 따라서 대학 학위가 필요 없다. 예컨대 조선소 현장에서 평생 일한 숙련 노동자의 암묵지는 수학적으로 모델링하기 어렵다. 글로 적기도 힘들다. 조선공학 박사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대학 대신 공장을 택한 이들에게 높은 급여를 주는 데 대한 합의가 이뤄지기 쉽다.


그런데 제조업이 흔들렸다. 스웨덴 말뫼는 한국으로 치면 거제나 울산 같은 곳이었다. 대형 조선소가 있었다. 그런데 스웨덴 조선 산업이 쇠퇴하면서 지역 경제가 시들었다. 이 지역의 상징이던 대형 크레인은 1달러에 현대중공업에 팔렸다. 현대중공업이 크레인 해체 비용을 대는 조건이었다. 크레인이 해체돼 배에 실리던 2002년 9월 25일, 스웨덴 방송은 장송곡을 내보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다. ‘말뫼의 눈물’이라는 표현이 그래서 생겼다.


말뫼 지역 조선소에서 일하던 이들이 죄다 실업자가 된 것은 아니다. 상당수는 서비스업 일자리를 구했다. 또 부모 세대가 제조업에서 일하다 쫓겨나는 것을 본 청년들은 대학에 진학했다. 그들은 첨단기술 분야 벤처 기업 창업에 도전했고, 정부는 이를 지원했다. 스웨덴 정부는 실업 대책으로 창업 활성화를 택했다.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 정부의 흔한 선택이었다. 한국 역시 1997년 외환위기로 실업자가 폭증한 직후 집권한 김대중 정부가 벤처 창업 활성화를 밀어붙였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렇게 생겨난 일자리는 대부분 스톡홀름 등 대도시에 밀집됐다. 제조업 공장이라면, 굳이 땅값 비싼 대도시에 지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새로 창업한 기업들은 대부분 지식 집약적인 분야였다. 대도시에 본사를 두고 싶어 했다. 청년들이 몰려들면서, 대도시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높은 주거 비용 앞에선 잘 갖춰진 복지 체제도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직장과 가까운 집을 구하지 못한 청년들의 분노에 우파 정치 세력이 불을 질렀다. 


공장 대신 마트에서 일하게 된 부모 세대 역시 분노했다. 공장과 달리 마트에선 일한 기간에 비례해서 암묵지가 쌓이지 않는다. 자동화 기계로 대체하기도 쉽다. 형식지 대신 암묵지를 갖췄으므로, 저학력 노동자도 고학력자와 비슷한 급여를 받는다는 전제가 깨졌다. 학력에 따른 소득 격차가 커졌다. 악순환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제조업은 왜 쇠퇴했나. 그 역시 이유가 복잡하다. 굳이 대표적인 이유를 꼽자면, 중국의 부상을 들 수 있다. 중국은 2001년 말에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세계시장안에 들어온 중국은 빠른 속도로 ‘세계의 공장’ 역할을 떠안았다. 선진국 기업들은 인건비가 싼 중국으로 공장을 옮겼다. 이는 스웨덴을 비롯한 선진국의 공장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뜻이다. 이들의 불만은 왜 폭발하지 않았나. 역시 중국 때문이다. ‘세계의 공장’은 아주 싼 값에 제품을 생산해서 팔았다. 상품 가격은 시간에 따라 오르는 게 보통인데, ‘세계의 공장’이 등장하면서 상식이 깨졌다. 우리도 집 근처 ‘다이소’에만 가도 알 수 있다. 품질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쓸 만한 제품이 몇 천 원에 팔린다. 당장이 글을 쓰는 키보드 역시 ‘다이소’에서 5000원 주고 산 것이다. 이런 제품들은 대부분 중국산이다. 중국이 아주 싼 값 에 생필품을 공급한 덕분에 선진국 사람들은 소득이 깎여도 살아남았다.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든 데 따른 분노는 폭발하지 않았고, 불안이나 우울 등의 감정으로 바뀌었다. 부모들이 공장에서 쫓겨나는 것을 본 선진국 청년들은 앞다퉈서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고학력 일자리는 대학생 수만큼 늘지 않았다. 청년 세대의 경쟁은 가열됐고, 그들을 대표하는 정서는 불안과 우울이 됐다. 하지만 이런 감정이 분노로 바뀌지는 않았다. ‘다이소’ 유형의 가게가 나라마다 생겼고, 인터넷이 보급됐다. 아르바이트 소득으로도 생필품을 살 수 있었고, 인터넷 덕분에 아주 적은 돈으로도 무료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그 무렵, 한국에선 <88만 원 세대>가, 일본에선 <하류사회>가, 유럽에선 <1000유로 세대>가 서점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글머리에서 2008년 이야기를 했다. 그해에 멜라민 분유 사건이 있었다. 당시 중국은 분유도 싼값에 팔았다. 품질관리가 엉망이었고, 아기들 신장에 치명적인 멜라민 성분이 분유에 담겼다. 세계적으로 거대한 후폭풍이 뒤따랐다. 장난감이나 액세서리를 대충 만들어 싼 값에 판 것과는 다른 차원이었다. ‘짝퉁의 나라’ 중국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전 세계 언론에서 나왔다. 중국 공산당은 절치부심했다. 연구개발을 파격적으로 지원했다. 역시 아주 빠르게 ‘짝퉁의 나라’에서 탈출했다. 이젠 5G와 인공지능 등 첨단 분야를 선도한다. 중국이 만들어 팔던 ‘싸구려 짝퉁’ 덕분에 사회의 폭발을 피할 수 있었던 미국과 유럽 등은 위기를 맞았다. 고학력에 따른 기대를 채울 수 없는 청년 세대, 공장에서 쫓겨난 부모 세대. 그들의 분노를 어떻게 달랜다는 말인가. 결국 미국에선 트럼프가, 영국에선 보리스 존슨이 집권했다. 다른 선진국 역시 극우 포퓰리즘이 득세했다. 이들은 중국이 부상하기 전으로 시계를 되돌리려 한다. 그게 가능할까. 그렇게 되면, 청년은 ‘88만 원 세대’를 옛 이야기로 여기게 될까.

아닐 것 같다. 시곗바늘은 불안하게 돌아간다.


성현석

언론인. 16년 남짓 기사를 썼습니다.

앞으로는 다른 글을 써보려 합니다.


위 글은 빅이슈 10월호 21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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