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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an 20. 2020


[소셜] 25만원으로 사는 사람들


Writer 이경숙 Photo Providing 괜찮아마을





(주)공장공장 박명호 공동대표(아랫줄 가운데)와 홍동우 공동대표(윗줄 오른쪽 끝)가 지방 청년 창업가와 기업들을 위한 네트워킹 행사인 <서울 밖에서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 공개 대잔치 ‘지방에서 왔습니다’>를 기획한

괜찮아마을 멤버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존경받고 사랑받아야 할 내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그리워했다. 이 그리움 속에서 나는 나를 길러준 이 강산을 사랑하였다.도시와 마을을 사랑하였고 밤하늘과 골목길을 사랑하였으며, 모든 생명이 어우러져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꾸었다. 천년 전에도, 수수만년 전에도, 사람들이 어두운 밤마다 꾸고 있었을 이 꿈을 아직도 우리가 안타깝게 꾸고 있다.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중


그는 거기 가면 ‘25만 원’으로 살 수 있다고 했다. 월세 15만 원, 식재료비 월 10만 원. 직장까지 걸어 다니니 교통비는 0원. 서울에선 월세 60만 원, 하루 한 끼 편의점에서 먹어도 식비로 60만 원, 교통비로 15만 원을 썼다. 가스요금, 핸드폰요금, 학자금 대출을 빼도 135만원을 썼다. 이 마을에 오면 110만 원을 아낄 수 있다.

괜찮아마을을 운영하는 ㈜공장공장 홍동우 대표의 얘기를 듣고 홈페이지에 가봤다. ‘입주’ 코너로 가보니 괜찮아마을 세 번째 모집은 이미 9월 말에 끝났다. 10월15일부터 6주. 더 있고 싶으면 12주 동안 지낼 수 있다는 프로그램이었다. 정말 25만 원으로 살 수 있을까. 

엑셀 프로그램을 열고 계산해봤다. 이 마을에 두 달, 9주쯤 머문다고 치자. 입주비 50만 원에, 두 달 핸드폰 요금 7만 2300원, 두 달 식재료비 20만 원, 용돈은 생필품만 산다 치고 두 달에 10만 원. 서울에서 목포까지 두 시간 반 걸리는 KTX로 왕복하면 8만 7300원, 다섯 시간 남짓 무궁화호로 왕복하면 5만 3200원. 숙소와 교육, 워크숍은 무료.

그런데 시급 1만 150원을 한 달 60시간까지 ‘마을 조성 활동비’로 준다고 했으니 두 달 수입은 121만 8000원. 와, 무궁화호 타면 29만 2500원, KTX를 타도 25만 8400원이 남는다. 오히려 25만 원 넘는 돈을 쥘 수 있겠다. 





물론, 프로그램이 끝나면 ‘활동비’도 끝난다. 월세도 내야 한다. 선택의 순간이 온다. 돌아가느냐, 남느냐. 첫 번째, 두 번째 괜찮아마을 참여자 60명 중 29명은 남았다. 어떻게 절반 가까운 참가자들이 계속 남겠다는 결심을 했을까. 

비법은 ‘공유’. 마을 운영자들은 빈집과 빈 공간이 많은 목포 원도심으로 가서 집주인들과 협상했다. ‘10년장기 임대로 집을 달라.’ 일부는 샀다. 그렇게 공유 숙소와 작업 공간들을 만들었다. 이게 ‘월세 15만 원’짜리 괜찮은 집, 걸어 다닐 수 있는 직장의 기반이 됐다. 이들은 또 공공 부문을 설득했다. ‘청년들에게 먼저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라, 그러면 청년들이 기회를 발견하고 빈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예산은 있었다. 기존의 공공 부문 프로그램들은 고령화된 지역의 빈집에 청년들이 들어와 사업을 하면 3000만원씩 지원했지만 반드시 주민등록 주소를 옮기고 창업을 하도록 해 부담을 주던 터였다. 이 예산을 끌어와청년 힐링 겸 워크숍 프로그램에 썼다. 이게 청년들 사이의 관계 즉 사회자본이 쌓이는 기반이 됐다. 


괜찮아마을의 사례는 ‘사회적경제’, ‘커먼즈’ 등 사회혁신을 지향하는 진영의 관심을 끌었다. 7월부터 10월초까지 이들은 ‘이로운넷’ 사회혁신콘퍼런스, 괜찮아 마을 다큐멘터리 <다행이네요>의 서울혁신파크 상영회, IFK임팩트금융의‘지방에서왔습니다’,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와 P2P 재단의 글로벌커먼즈포럼 등 서울의 많은 행사 자리에 섰다. 이 자리들에서 홍 대표가 들려준 얘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그는 원래 여행자였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성인이 되면 다 하고 살 줄 알았는데 막상 되어보니 그게 뭔지 몰라서 못했다. 그걸 찾으려 여행을 다니다 공유자전거 사업도 하고, 여행 사업도 했다. 여행 사업 땐 1285명과 여행했다. 한국 땅을 지구 두 바퀴 정도를 돌았다. 그러면서 청년들이 좋아하는 놀이가 여섯 가지라는 걸 알게됐다. 함께, 노래하고, 요리하고, 불피우고, 별을 보다, 잠드는 날들. 

밤마다 옆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다들 힘들다 했다. 근데 하는 이야기가 너무 비슷했다. ‘어렵게 대학에 왔더니 전공이 안 맞네. 전공 바꾸려니 벌써 스물다섯 살이야, 너무 나이 많아. 어렵게 졸업해서 취직했던 차별 당하네. 그래서 그만두려 했더니 엄마 아빠가 걱정하시네. 우울해서 갈 곳을 찾아보니 노래방, 영화관, 아니면 정신과밖에 없네.’ 

그때도 지금도, 한국 청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다. 교통사고로 죽는 청년보다 자살로 죽는 청년이 세 배 많다. 30대엔 그게 다섯 배다. 역사상 최고의 스펙을 가진 청년들이 가장 높은 실업률 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서울에선 아무리 돈을 벌어도 청년은 집을 살 수 없다. 그는 그게 청년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청년을 보듬지 못한 사회문제다. 





그는 여행을 멈췄다. 그리고 박명호 공동대표와 함께 괜찮아마을을 기획했다.쉬어도 괜찮고 실패해도 괜찮은 작은 사회. ‘괜찮아, 어차피 인생 반짝이야. 지역에 와서 사업자등록, 주민등록하지 않아도 괜찮아. 재밌게 지내고 가도 괜찮아. 그냥 널브러져 있어도 괜찮아.’ 마을에서 청년들은 6주 동안 웃고 떠들고 서로를 알아가며 함께 누워 쉬었다. 낮엔 주민을 만나고 지역 시장에 갔고 밤에는 별 보며 수다를 떨다가 질리면 명상도 했다. 머리카락이 자라면 서로 깎아줬다. 뜨개질 잘하는 친구는 뜨개질을, 작곡 잘하는 친구는 작곡을 가르쳤다. 또, 살롱을 열기도 했다. 해가 지는 노을을 보며 왈츠를 췄다.

2주쯤 쉰 후 교육과 빈집 탐방을 했다. 다녀와서 팀을 짜 자기 생각을 발표했다. 발표에서 경쟁은 없앴다. 심사와 시상을 없애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옆 팀을 응원했다. 서로 지지해줬다. 인천에서 핸드폰을 팔던 30대 아저씨가 지렁이를 넣어 친환경 음식물 쓰레기통을 만들었더니, 옆 팀에 있던 20대 디자인학과 친구가 밤새서 디자인을 해줬다. 자기 팀도 아닌데.

6주 후 프로그램이 끝났다. 앨범을 내고, 연극 공연을 하고, 사진전을 열었다. 전국 당일배송 서비스, 무화과잼과 버터, 신안 천일염 향수를 만들거나 채식 식당을 열었다. 국회의원, 시장뿐 아니라 처음엔 데면데면하던 주민들이 와서 ‘고맙다’고 말해줬다. 

다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됐다. 근데, 절반이 눌러앉았다. 괜찮아마을에 자기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로 결심한 이들이다. 3명은 그냥 살고, 7명은 창업했다. 19명이 괜찮아마을 등 이곳 회사에 정규직으로 취직했다. 9채의 집을 빌렸고 6개 가게를 냈다. 

괜찮아마을에선 15명이 10만 원씩 모으면 6주 동안 먹고 산다. 110만 원의 생활비가 줄어든다. 써야 할 돈을 줄이니 돈이 모였다. 최저임금으로 132시간, 서울보다 덜 일해도 살아갈 수 있다. 서울에서 시간이 없어 못하던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꿈을 꿀 시간이 생긴다.

네 번째 만났을 때 홍 대표한테 물었다. 괜찮아마을에 들어가고 싶지만 못 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다른 곳도 그렇게 될 수 있겠냐고. 홍 대표가 답했다. 자기도 세상에 많은 괜찮아마을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아예 모든 기획을 공개하고 견학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후 매일 한 팀 이상, 많게는 하루 세 팀씩 견학을 온단다. 

“만들 수 있어요. 공동체를 이뤄서 한번 살아보세요. 공동체에는 우리 청년들이 알지 못했던 순기능이 있더라고요. 우리한테 ‘구리다’는 느낌을 주는 공동체 문제는 대부분 세대 간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에요. 우리의 삼촌, 할아버지 공동체가 그런 느낌을 준 거죠.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은 분명 다를 거예요. 한번 모여서 살아보세요.”


돌아가신 황현산 선생이 쓴 책 <밤이 선생이다>에 ‘30만 원으로 사는 사람’이라는 글이 있다. 한 학생이물었다. ‘시만 써서 먹고사는 사람이 있어요?’ 선생이 답했다. ‘많지는 않지만 있다.’ ‘얼마를 버나요?’ ‘시인마다 다르다. 한 달 평균 30만 원을 벌고 그것으로 생활한다.’ 학생들은 무슨 농담이 그러냐는 얼굴로 선생을 봤다. 선생은 수업 후 생각했다. ‘시인이기 때문에 30만 원을 버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기 때문에 30만원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어야 한다.’고.

선생이 괜찮아 마을을 알았다면 다르게 대답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시인이든, 목수든, 30만 원만 벌어도 당당

하게 살 수 있다고, 함께 모이면 어두운 밤에도 돈 말고 다른 꿈을 꿀 수 있다고. ‘모든 생명이 어우러져 건

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꿈’을.


이경숙

이커먼즈 연구위원.

기사를 오래 쓰다 사회적기업가, 미디어기획자로 살았다.

여전히 다른 삶을 꿈꾼다.


위 글은 빅이슈 10월호 21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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