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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an 20. 2020

비가 와도 툭툭 털고 일어난다

고속터미널 역 오현석 빅판을 만난 빅돔의 체험기


Writer·Photographer 방예원(빅이슈 서포터즈 2기)



1 강수지, 박지영 서포터즈
2 김수민, 상지현 서포터즈


《빅이슈》를 알게 된 계기는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느 때처럼 역을 지나면서였다. 붉은 조끼를 보고 구세군인가, 하고 돌아보니 웬 노인이 카트를 끌며 무리 속에 홀로 그늘을 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빅이슈입니다.” 고갤 홱 돌려 내 갈 길을 간다. 나는 꽤 염세적인 인간이었다. 노력이 모든 것을 증명한다는 미명 아래 내가 왜 시간과 노력을 쏟아 봉사를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연말이면 딸랑이는 종소리에이끌려몇없는지폐를기부함에넣고 싶지도 않았다. 내 귀에는 꼭 이런 이야기만 들렸다. ‘○○의○○가 횡령을 저질렀다느니, ○○들을 팔아 사리사욕을 취한다느니…’ 결국 이런저런 이유를 붙이며, 다른 이를 돕는 것을 외면하는 나의 모습을 합리화했다.


우리 친척들 중 제일 먼저 취직한 언니에게 들으니 취업준비 기간이 ‘인생의 암흑기’라고 한다. 내 나이 스물셋, 현역으로 들어가 휴학 없이 달려온 동갑내기 친구라면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할 때다. 노량진으로 가 공시 공부를 하는 친구도 있겠고, 자소서를 수십 번 고치고 자격증 시험을 치며 매일을 압박 속에 사는 취준생 동기도 있다. 취업을 하고 나면 그런 시기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힌다. 우리는 우리의 바쁨과

삶 때문에 다른 이의 삶을 돌아볼 여력이 거의 없다. 하지만 그 암흑기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면? 내가 자격증 시험을 준비할 돈은 물론이고 공과금에 생활비, 월세까지 다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닥쳤는데 내게 주어진 기반도, 도움도, 그 무엇도 없다면 우리는 어쩌면 좋을까.


고속터미널 역 8번 출구 오현석 빅판님은 유쾌하게 너스레를 떨며 다섯 명의 빅돔들을 맞이했다. 사방이 횡단보도로 둘러싸인 이곳은 차 시간에 늦어 뛰어가는 사람, 연인과 데이트를 할 생각에 전화를 거는 사람, 또 관광을 온 외국인들로 붐빈다. 오현석 빅판님이 판매를 시작하는 시간, 오후 3시! 조끼를 떡하니 건넨 그는 계단에 분주하게, 또 전문성이 묻어나오는 모습으로 잡지들을 전시해놓는다. 우리는 어리숙하게 조끼를 받아들곤 두 팀으로 나뉘어 횡단보도 앞과 오현석 빅판님의 곁에 돌아가며 섰다. 우물쭈물하는 우리에게 괜찮다며, 능숙한 말솜씨로 사람들을 모으던 오현석 빅판님.


우리 역시 쉴 새 없이 홍보 문구를 외치던 중 넌지시 오현석 빅판님에게 좌우명이 어떻게 되냐고 물어봤다. 그는 눈을 크게 뜨며 “안 되면 되게~ 하라! 소크라테스가 한 말입니다.”라고 씩 웃으며 답을 주었다. 9월의 그날은 태풍전야였다. 빗방울이 떨어지다 말다 하는 가운데 망설임 없이 좌우명을 말하는 걸 보면, 빅판님은 스스로 이겨내야 할 상황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빅돔이 없는 외로운 시간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빅판의 외침을 외면하는 그 많은 시간 속에서 뜻대로 잘 안 되더라도 어떻게든 잘 팔아야지, 하며 자신을 다독였을 모습이 생생하다.


결국은, 비가 왔다. 계단 가장자리에 전시된 30여 권의 잡지와 짐을 각자 나눠 들고 우리 여섯은 출구 계단으로 향했다. 횡단보도에 불이 바뀔 때 사람들이 건너오는 걸 보고 “안녕하세요? 빅이슈입니다.”, “당신이 읽는 순간,세상이 바뀝니다.”를 외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바쁘게 돌아가는 이 시가지에서 비가 오면 오현석 빅판님은 홀로 잡지를 옮기고, 비가 그치면 다시 묵묵히 위로 올라가 홍보지를 붙이고, 잡지를 진열했을 것이다. 다른 것보다도 날씨가 가장 문제다. 빅판 선생님이 서 있는 위치는 여름에는 뙤약볕이 내리쬐고 환풍기에서 나오는 더운 바람 때문에 판매가 어려웠다. 한국의 겨울은 살을 에는 듯 춥고, 비가 오는 날엔 이 많은 짐을 혼자 지고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니, 우리가 나눠 들었던 잡지는 빅판님이 지고 있을 삶의 무게에 비해 얼마나 가벼웠을까. 두 차례의 빅돔을 하며 만난 빅판분들은 누구보다 인내심을 가지고 있는, 우리보다 훨씬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다.


빗방울은 금세 그쳤다. 맑게 갠 하늘은 아니었지만 역 안에서 외치면 소리가 울려 시민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더 이상 전전긍긍 하지 않아도 되었다. 빅판님은 다시 착, 착 잡지를 배치하고 언제나처럼 웃으며《빅이슈》를홍보한다. 선생님만의 판매 전략이 있는지 물었다.“ 판매는 표지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아무래도 ‘카카오 프렌즈’가 귀여워서인지 잘 팔렸는데. 김복동 할머니 표지(209호) 시즌에는 구호로 '잃어버린 정의를 위하여! 빅이슈입니다!'라고 외쳤던 게 효과가 좋았습니다. 다 그때그때 표지에 맞춰 아이디어를 내는 거지요. 하지만 이런 것도 다 독자들이 사 가면서 표지의 문구를 읽는 걸 주워들은 거니 별로 특별하진 않습니다.” 아무리 독자들이 그런 말을 했다 한들, 그걸 활용하는 건 빅판의 재량일 텐데 겸손하신 모습이었다.


“요 근처에 한강공원이 있다더라고요. 관광객이 많이 와요.” 우리가 빅돔을 한 두 시간 동안 중국인 관광객을 비롯해 몇몇 외국인 관광객이 길을 물었다. “Hello, Ok, fine.” 하며 손짓발짓으로 설명하는 모습을 보거나 지하까지 내려가며 길을 설명해주기도 한다는 빅판님의 애기를 들으니 가히 고속터미널 역의 터줏대감을 보는 듯싶었다. 도로 너머에는 푸른 잔디밭과 한강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오현석 빅판님은 청록색을 좋아하신다고 한다.


그는 ‘고터역’에서 든든하게 서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향해 안부를 묻고, 인사를 건넬 것이다. 팔리는 《빅이슈》 한 권의 가격 중 절반은 오롯이 빅판에게 돌아간다. 궂은 날씨와 환경이 어려움으로 자리하더라도, 우리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선생님의 인사에 함께 답해주면 그 주변의 날씨만큼은 맑지 않을까. 오현석 빅판님 덕분에 나는 울창하게 가지를 뻗은 초록빛 나무를 보았다.


위 글은 빅이슈 10월호 21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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