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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an 29. 2020

[아침요리] 연어베이글 샌드위치


글·사진 문은정     





벌써 몇 년 된 얘기다. 툭하면 숨이 가빠지는 증상을 앓았던 적이 있다. 호흡기 때문인가? 아니면 심장? 여러 병원을 헤맸지만 다들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러다 훅 가는 거 아닌가. 절망에 빠져 있는데 우연히 만난 한의사 선생이 색다른 진단을 내렸다. “아이고, 너무 열심히 살아서 그래요. 계속 이렇게 살다간 큰일 납니다.” 그는 창백한 나를 보며 꾸짖듯이 말했다. 그의 처방은 조금 대충 살라는 것이었다. 웬 사이비 교주 같은 얘기냐 할 수도 있겠으나 웃기게도 그 진단이 효과가 있었다. 정말로 대충 살수록 숨 쉬는 것이 편해지기 시작했으니까. 의사 선생의 조언대로 내가 했던 ‘대충 사는’ 연습은 다음과 같다. 예를 들면, 횡단보도 초록불이 애매하게 남았을 때 무리해서 건너지 않는다. 지하철이나 버스가 아슬아슬하게 도착했을 때 힘들게 뛰어가 잡지 않는다. 천천히 걷고 느리게 먹고 ‘나 하나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산다. 물론 모든 것을 대충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적절히 힘을 빼는 부분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도 그 연습은 계속되고 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장을 보며 대충 산다. 겨울이니까. 인터넷 쇼핑이 뭐 별거냐 싶을 수 있겠지만, 무엇이든 직접 손으로 만지고 살펴야 마음이 놓이는 내 경우에는 흔치 않은 일이다. 어제도 인터넷 쇼핑을 애용했다. 종일 야근을 하고 지칠 대로 지쳐 집에 돌아와 대충 고양이 세수를 하고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갔다. 그러고는 핸드폰을 켜고 장을 보았다. 보드라운 이불에 이리저리 몸을 비벼가며 손가락만 까딱대는 게으른 내가 좋다. 종일 외식을 했기에 내일은 좀 근사한 걸 먹고 싶다. 머릿속에 먹고 싶은 것을 떠올리며 하나씩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았다. 동해에서 직접 잡아 훈연했다는 훈제 연어, 소량씩 낱개로 포장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크림치즈, 왠지 살이 덜 찔 것만 같은 통밀 베이글, 비타민이 듬뿍 들어 있는 아삭한 베이비 채소까지. 마트에 갔으면 족히 두 시간을 걸릴 일을 몇 분 만에 끝낸다. 그렇게 장을 본 것이 밤 10시 반, 자고 일어나니 벌써 물건이 문 앞에 도착해 있다. 나 하나 때문에 이른 새벽부터 고생하신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지만, 역시 이렇게 손쉽게 근사한 식재료를 장볼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베이글을 반으로 갈라 토스터기에 넣는다. 주방 가득 베이글의 고소한 냄새가 퍼져 나가며, 아침이 되었다는 신호를 알린다. 최근 텃밭에 잡초처럼 자라난 딜이 생각나 얼른 마당으로 나가 한 줄기 꺾어 온다. 집에서 허브를 기르면 간단한 노력으로도 맛의 깊이를 더할 수 있어 좋다. 실온에 두었던 크림치즈에 다진 딜을 섞으면 소스는 완성. 바삭한 빵에 소스를 바르고, 싱싱한 어린잎 채소에 훈제 연어를 올린다. 그렇게 재료를 턱턱 쌓아가며 대충대충 연어베이글 샌드위치를 만든다. 커피도 캡슐 커피 머신으로 대충 뽑아서는 식탁에 앉는다. 그러고는 아주 천천히, 꼭꼭 씹어가며 먹는다. 그렇게 게으르게 만든 행복을 찬찬히 음미하며 겨울 아침의 문을 연다.    

  

연어베이글 샌드위치 

재료만 있으면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연어베이글 샌드위치.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레몬을 듬뿍 뿌리면 더욱 맛있습니다. 커피 한 잔을 곁들이면 뉴욕의 감성이 물씬. 


재료(1인분)

베이글 1개, 딜 1줄기, 크림치즈 3큰술, 어린잎 한줌, 훈제 연어 1/4컵, 양파 피클 1큰술, 케이퍼 1/2큰술, 레몬즙 1큰술 


양파피클

양파 1/2개, 식초 1/2컵, 물 1/4컵, 설탕 1/8컵, 월계수잎 1장, 소금 조금 


만들기

1 냄비에 식초, 물, 설탕, 소금, 월계수잎을 넣고 끓인 뒤 슬라이스한 양파를 넣어 한소끔 식혀 피클을 만든다.  

2 베이글을 반으로 가른 뒤 마른 팬에 넣어 바짝 굽는다. 

3 딜은 잘게 다진 뒤 크림치즈에 섞는다. 

4 베이글에 3의 소스를 바른 뒤 어린잎, 연어, 양파 피클, 케이퍼 순으로 올린다. 레몬즙을 뿌린 뒤 베이글을 덮는다.          


문은정  

잡지사 <메종>의 푸드 & 리빙 에디터이자 아마추어 아침요리 연구가.     


위 글은 빅이슈 12월호 21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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