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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Jan 30. 2020

[컬처] 생의 한가운데 - JTBC <초콜릿>


 황소연     





그리스와 한국을 오가며 펼쳐지는 풍경과 셰프 차영(하치원)의 요리는 모두 드라마 제목만큼이나 낭만적이지만 그 모든 것이 늘 행복한 순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가끔은 이미 죽었거나,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을 위해서 차영은 음식을 만든다. 아름다운 풍경도 등장인물이 하나 둘 떠난 뒤에는 덧없게 느껴진다.


드라마 <초콜릿> 안에서는 피가 낭자한 수술 장면과 먹음직스러운 요리 장면이 반복 교차된다. 삶과 죽음은 끝없이 연결된다는 상징이기라도 할까? 게다가 차영이 요리사로 일하는 공간은 하필 호스피스 병동이다. 희망적인 구석이라곤 전혀 없을 것 같은, 밥 한 끼 맛있게 먹는 게 유일한 낙인 사람들로 가득하다. 병동 사람들의 면면도 이런 분위기에 한몫한다. 시한부로 학교도 가지 못한 채 마지막 생일을 맞이하는 어린이, 아픈 아내를 고치고 싶어 유사 의학을 하는 ‘돌팔이’를 찾아가는 남편, 가족에게 짐이 될 까봐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하는 여자, 가정폭력 생존자, 알츠하이머 환자, 자식들에게 버려진 노인. 그런데 이상하게도 함께 모이면 생동감이 돈다. 


구구절절한 사연의 병동 식구들을 요리로 감싸 안는 차영은 삼풍백화점 참사의 생존자다. 구조 직전까지 모르는 여자가 준 초콜릿을 아껴 먹으며 버텼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받는다. 호스피스 병동 원장 현석은 이렇게 말한다. 기억을 해야, 반성을 해야 남아 있는 사람이라도 지킬 수 있다고. 물론 여느 악역들이 그렇듯 정말 반성해야 할 사람들은 스피스 병동을 밀어버리고 고급 실버타운을 세울 계획을 세운다.





어린 시절 요리사가 되고 싶었던 희망을 애써 억누른 채 살아가는 이강(윤계상)은 차영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어디에서나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것도 싫고, 병동 사람들을 걱정하는 것도 언짢다. 사실 두 사람에겐 모든 것이 운명의 장난이다. 의사임에도 친구의 병을 고치지 못하는 자신에게 절망하는 강, 첫사랑에게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는 차영이 하필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만났으니, 두 사람은 기쁜 순간보다 슬픈 순간을 더 많이 맞이하는 동료에 가깝다.


마냥 우울하지만은 않다. 완도와 그리스, 호스피스 병동을 오가며 펼쳐지는 여러 요리의 향연은 마치 도시 속 <리틀 포레스트>를 보는 듯하다. 토속 음식으로 도시에서 보기 어려운 빼떼기죽이나 고구마말랭이 국수, 산딸기설기 등을 차영은 뚝딱 만들어낸다. 요리 드라마인 만큼 비교적 맥락에 맞게(?) 등장하는 샌드위치 PPL,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유머를 발견하는 인간의 재치, 눈물 젖은 사람들의 사연을 위로하는 보글보글 끓는 냄비를 보면 식욕이 솟아난다. 조금 전 까지 죽음 앞에 슬퍼하던 나를 조롱하는 듯하다.


문득 두려워진다. ‘눈물 버튼’이 많아서뿐만은 아니다. 삶의 마지막은 누구에게나 갑작스러운데, 나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어버리게 될까. 떠나간 연인이 끓여줬던 만두전골, 아들이 사주던 짜장면, 젊은 시절 먹던 산딸기설기. 우리가 가장 연약할 때 먹었던 어떤 음식들. 희망적인 건, 얼핏 버림받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생의 한가운데에서 자신만의 초콜릿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다.     


JTBC 금·토 밤 10시 50분 방영(방영종료)


위 글은 빅이슈 1월호 21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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