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일러스트 박정은
동네 내과 의원에서 종합병원으로 가라며 뭔가를 적어주었을 때 머릿속이 멍해졌다. 큰 병원에 가면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비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동네 병원에서 너무 친절하게도 그 자리에서 전화로 예약까지 잡아주어서 안 가겠다고 할 수도 없어 추천받은 대학병원에 한 시간 안에 가야만 했다. 그리고 당시 너무 아팠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병원이 가까워졌을 때 나는 다시 무서워졌다. 변수가 생겼을 때 내가 치러야 할 비용과 여력이 없는데 뭘 찍자고 하면 어쩌지 MRI나 CT를 찍어봐야 알 것 같다거나, 혈류검사 같은 걸 하자고 하면 어쩌지. 만약 의사가 무언가 찍어야 한다고 할 때 뭐라고 하면서 거절해야 덜 부끄러울까도 생각했지만 당장 통증이 심해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머릿속에서 뇌를 잡고 있던 무언가가 빠져나가 안에서 덜그럭거리는 것만 같았다.
내 걱정이 발을 잡고 놓지 않는 것처럼 걸음걸음이 무거웠다. 그날은 다행히도 약만 받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한두 시간 만에 약은 빠르게 흡수되었고, 크고 높은 병원 앞에서 작아진 마음과 두근거리던 심장도 깊은숨을 쉬며 몸과 마음의 평화를 맞이할 수 있었다.
그림 그리는 프리랜서가 정규직 직장을 처음으로 가지게 되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돈 쓰기였다. 세상에는 돈 쓸 곳이 많았다. 그중 제일 먼저 해치워야 할 일, 치과에 가는 것이었다. 이전에 다녔던 치과를 찾았더니 차트를 찾아보던 직원분이 말했다. “8년 전, 병원 이전하기 전에 다녀가셨네요.”
8년 만이이었다. 늘 치과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당장 눈앞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데, 고개만 돌리면 외면할 수 있는 문제를 덮어두는 건 쉬운 일이었다. 예상할 수 없는 비용은 통장 잔고에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 언제 생기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프리랜서 노동자에게 신용카드를 내주는 곳도 없다. 혹여라도 내가 만들었다 해도 다음 달 들어올 돈이 없는데 빚을 지는 일을 선택할 수도 없었다.
“실비보험 없어?”
“암보험 들어둬야 해.”
“치과 미루면 나중에 더 큰돈 들어.”
“스케일링은 공짜니까 한 번씩 가는 게 좋아.”
“가서 검사해야지 늦게 아는 것보다 빨리 발견하는 게 나아.”
그걸 내가 모를까? 마음속으로 여러 번 대답했다. 사람들에게 흔하게 숱하게 들어온 말들, 이 말들은 내 머릿속에서 모두 재화로 환산이 되었다.
치과는 제일 무서운 곳 가운데 하나이다. 치과를 떠올릴 때 제일 무서운 게 통증보다 치료비라면 이제 당신은 진정한 어른이 된 것이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기준이다. 사실 돈도 돈이지만 입 속에서 돌아가는 무시무시한 기계 역시 무서워 치료를 받을 때 귀마개를 낀다. 있는 힘을 다해 주먹을 꽉 쥐고 있는 나에게 간호사는 “가끔 환자분 같은 분들이 계셔서 준비해두었다”며 다정하게 작은 인형을 쥐어주었다.
박정은
일러스트레이터, <식물저승사자>, <1983 야구소년> 등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위 글은 빅이슈 2월호 22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