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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Dec 20. 2019

[스페셜] 올해의 앨범 - 수림 <쉽고 확실하게>

솔직하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작품


글 블록(박준우) 





누군가는 다섯 곡(인트로를 제외하면 네 곡)에 불과해 가볍다고 할 수도 있다. 반대로 누군가는 낯선 이름과 앨범 커버 때문에, 누군가는 ‘그대가 죽은 날’과 같은 복잡한 곡부터 접하여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앨범이 나왔을 당시에 이야기하지 못해 아쉬웠을 만큼 이 작품은 복잡한 음악적 갈래를 품고 있으며, 그만큼 담고 있는 감정의 깊이도 크다. 어느 한 가지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이 마음은 결국 음악을 들어야, 그리고 가사를 읽어야 알 수 있다. 듣는 사람들이 악기의 배치에도 귀를 기울였으면 하고 재즈와 포크, 전자음악의 오묘한 조합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사실 올해의 앨범으로 꼽을 수 있는 작품은 많다. 하지만 ‘그래서’와 같이 솔직한 내면을 보이며 음악가라는 정체성, 나아가 음악 자체에 관한 고민까지 이어가는 곡부터 ‘십자가’처럼 종교적 울림이 있는 시에 소리와 음계를 붙여 표현한 곡, ‘쉽고 확실하게’에서 들려주는 자기 고백적인 이야기까지 비교적 짧은 호흡 안에 뮤지션의 큰마음을 내던진 작품은 찾기 드물다. 그래서 이 앨범을 올해의 앨범으로 꼽았다. 한 번 들어보는 것 말고 두, 세 번 정도 조용한 곳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들어볼 것을 권한다. 그러면 어느새 수림이라는 음악가를 통해 각자의 내면을 마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수림은 본명 정예은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자신의 이름을 건 7인조 밴드로 활동도 했으며 제 26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는 팀으로 수상하기도 했다. 자신만의 감성도 뚜렷하지만, 지금까지 만들어온 음악의 편성도 심상치 않다. 발표한 곡을 쭉 들어보면 스스로를 ‘재즈 꿈나무’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최근 발표한 싱글 ‘강아지집’은 독특하게도 유튜브 채널인 유동방송(유재하음악경연대회 총동문회 방송)의 콘텐츠인 <고독한 작곡가>라는 프로그램에서 시작했다. 주어진 시간 안에 주어진 주제로 곡을 완성하는 챌린지 형식의 프로그램인데, 여기서 만들어진 곡이 ‘강아지집’이다. 함께 들어보길 권한다.

수림의 앨범으로 올해 한국 음악 시장에서의 변화도 이야기할 수 있다. 아마 차트 위주로 음악을 듣는 많은 사람은 크게 공감하지 않겠지만, 우선 좋은 음악을 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늘어났다. 다양한 장르 문법을 차용하는 대세 역시 꾸준히 생겨나고 있고, 여성 싱어송라이터들도 그러한 방식으로 음악을 만든다. 여기에 수림을 포함해 유하, 유니니, 이설아, 다방(D’avant), 홍이삭 등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들이 점차 기량을 펼치고 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6회 동상을 받았던 방시혁도, 4회 대상을 받았던 유희열도 어쨌든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으로 한국 음악 시장을 움직이고 있다. 케이팝과 차트에 있는 발라드곡도 좋지만, 그것만으로 2019년 연말 결산이 채워지지 않기를 바라며, 오히려 각종 연말 결산을 통해 더 좋은 음악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밝은 음악, 희망찬 음악, 따뜻한 음악도 좋지만 내 안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음악으로 차분하게 1년을 돌아보고 내년 계획을 세워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이 음악을 추천한다. 어수선하고 들뜨기 쉬운 연말이지만, 그럴수록 차분하게 나 자신을 돌보는 것도 좋다.     


블록(박준우) 

한국대중음악상, 온스테이지 선정위원을 한 바 있으며 해외 복수 매체에서 컨트리뷰터로 있다.     




위 글은 빅이슈 12월호 21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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