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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Mar 03. 2020

[에디토리얼] 지켜야 할 것


편집장 김송희



참담하고 허무해서 한 자도 쓰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지난 호 에디토리얼을 쓸 때까지만 해도 이 사태가 곧 잠잠해질 거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아니, 당연히 그렇게 되는 줄 알았어요. 확진자는 서른 명에 불과했고, 확진자가 완쾌 판정을 받고 나와 의료진에게 고맙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하던 상황이었으니까요. 2주 만에 상황은 나쁜 쪽으로 급진전되었고,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총 833명(2월 24일 기준)에 이르렀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한국 사회 곳곳에 침투해 사람들이 서로를 불신하고 혐오하도록 부추깁니다. 글을 쓰는 이 짧은 와중에 문제의 종교 집단의 신도가 확진 사실을 숨기고 사회 활동을 했다는 뉴스가 터지네요.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의 동선이 매우 구체적으로 공개되고, 해당 건물은 폐쇄되고 접촉했던 사람들은 격리가 되고, 실시간으로 뉴스를 접한 사람들이 분노하는 모습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를 보는 듯합니다. 진실 유무도 확인하지 않고 떠도는 말들을 뉴스랍시고 쏟아내는 언론이 신나 보인다고 하면 착각일까요. 와중에 <경남도민일보>가 발표한 대응 원칙이 눈에 띕니다. 막연한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과잉보도는 물론, 용어 사용에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겠으며, 현장 취재와 보도 시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너무 당연한 언론의 대응 지침인데도, 그렇게 하겠다고 밝히는 언론이 많지 않습니다. 


재난이 닥쳤을 때, 사회 시스템의 허점이 수면 위로 드러납니다. 이 상황에서 가장 먼저 소외받고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저소득층과 비정규직 노동자, 사회 취약계층입니다. 사회의 자원은 한계가 있고 이럴 때일수록 약자에 대한 지원과 안정망이 취약해지고 더불어 착취가 일어납니다. 모두 마음의 여유가 없기에 다른 사람을 돌볼 수가 없어지는 겁니다.

 

제 주변의, 아주 보통의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들까지도 이렇게 피해가 큰데, 상황이 오래 지속될 때에는 사회 전반에 얼마나 타격이 클지 공포스럽습니다. 프리랜서로 공연 기획 일을 하는 친구는 향후 두 달여간의 모든 기획이 취소되어 갑자기 소득이 0으로 수렴되었다고 한숨을 쉬고 음식점을 하는 친구는 가게에 하루 종일 두 팀밖에 안 왔다고 울상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임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던 후배는 무급 휴가를 요청받아서 살길이 막막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제 직장인 빅이슈의 판매원들 역시 거리에 사람이 없어서 잡지가 안 팔린다고들 합니다. 또 한 명의 친구는 주말에 들른 마트에서 확진자가 나온 후 상사에게 차별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업무 지시조차 메신저로 하고 구내식당에서는 전 직원이 각자 따로 식사를 한다고 해요. 


마트의 라면과 생수는 동나고, 온라인 쇼핑몰 역시 식품 코너에 ‘매진’ 알림과 함께 이틀 뒤 배송 가능이라는 안내가 붙어 있습니다. 택배 기사들은 배달 물량이 평소보다 많아 마스크를 한 채로 숨이 차게 뛰어다닙니다. 서로를 피하기 위해 시민들이 되도록 물건을 배달받고, 집에만 머물기 때문이죠.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불특정 타인으로 인해 언제 어디서 감염이 될지 모른다는 공포. 그것이 우리를 ‘가만히만’ 있게 만듭니다. 각자 섬처럼 존재하는 줄 알았던 현대인들이 실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입니다.

 

바이러스 전문가도 아니고, 의료진도 아니며, 현장의 한복판에서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 제가 한 줄 더 보태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탓하고, 혐오를 조장하고, 알고 보니 가짜뉴스였던 것이 밝혀지는 불필요한 정보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갈수록 명확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지켜야만 합니다. 싸울 존재는 불투명하지만 불안과 혐오, 공포가 우리의 일상을 좀먹지 않도록 애써야 합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외출 전후로 손을 깨끗이 씻는, 전염병 행동 수칙을 지키면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갑시다. 아침에 일어나 단단하게 마스크로 무장하고 매일의 일상을 충실히 살면서 이웃의 안부를 챙깁시다.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서로를 미워하지 않고 필요한 정보만을 취하며 일상을 지키는 일이, 무너지지 않는 방법일 것입니다. 아, 그리고 질병관리본부를 비롯한 현장에서 일하는 의료진을 응원하는 목소리 또한 높이면 좋겠습니다. 칭찬과 격려의 목소리는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위 글은 빅이슈 3월호 22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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