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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Mar 26. 2020

[서울 미감 유감] 나의 여의도

의사당대로 여섯 쌍둥이 건물


글·사진 신지혜



또 버스에서 뛰어내렸다. 사진 찍고 싶은 건물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찍을 수 있을 때 찍어둬야 한다. 다행히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건물은 아주 흥미로웠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의사당대로 남쪽에 건물 여섯 동이 열을 맞추어 서 있었다. 여섯 동 모두 네모반듯한 형태에 높이까지 똑같았다. 창문 크기와 개수만 달라 보였다. 어째서 이렇게 담담한 걸까. 서울에 있는 건물이라면 마땅히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경합을 벌이는 참가자처럼 최선을 다해 개성을 뽐내야 하질 않나. 어떻게 이 건물들은 딱히 뽐낼 의도가 없는 여섯 쌍둥이 같이 지어질 수 있었던 걸까?


길에 서서 층수를 세어보니 동쪽부터 13층, 10층, 10층, 12층, 11층, 11층으로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눈으로 보기엔 높이가 다 같아 보였다. 2017년에 사용승인이 난 막내 건물더 하우스 소호 여의도 오피스텔만 건축물대장에서 높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42.4m. 건축물대장에 높이가 기재되지 않은 나머지 건물은 ‘서울특별시 3차원 공간정보시스템’ 사이트에 들어가 높이를 확인했다. 정확한 높이는 아니지만 다시 한 번 동쪽부터 42.4m, 39.6m, 40.1m, 38m, 39m, 38.6m였다. 여섯 동의 높이 모두 40m 내외였다. 어째서? 그 이유를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2>손정목, 2003에서 찾을 수 있었다. “국회사무처가 ‘국회 주변 일대, 즉 광장 서측 77만m223만 3300여 평의 광역에 국회 건물보다 높은 건물은 지어질 수 없다. 반드시 지상 40m 이하의 건물만 짓게 하라.’는 압력을 가해온 것은 1975년 8월 15일 국회의사당 준공 직후의 일이었다.” ‘국회의사당의 존엄성’이 압력의 근거였다고 한다. 


3차원 공간정보시스템 캡처.

높이야 이런 사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형태, 두부를 썰어놓은 듯 네모반듯한 형태는 어떻게 된 일일까? 어느 건물 하나 들고 나는 부분도 없이 단정하다. 가장 경제적인 형태가 선택된 것이리라 추측해본다. 세모난 방보다는 네모난 방이 가구 배치하기도 쉽고 낭비되는 공간도 적다. 때문에 임대도 더 잘 나간다. 형태는 네모반듯하게, 건축 가능한 최대 면적을 찾아 꽉꽉 채운 결과로, 의사당대로 여섯 동은 잘 썰어놓은 두부 같은 형태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여섯 동 중 1986년에 사용승인이 난 둘째 건물금산빌딩 안에 들어가 보았다. 최대 면적을 ‘찾아 먹은’ 건물은 층별로 낭비되는 공간 없이 똑 부러지게 꽉꽉 채워져 있었다. 네모난 평면의 가운데에 코어(건물의 엘리베이터, 계단실, 화장실, 설비실 등이 모여 있는 곳)가 있고, 코어를 빙 둘러 복도가 있었다. 복도에는 창문이 하나도 없어 자연광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 복도는 오로지 이동만을 위한 효율적인 공간이었다. 복도의 바깥쪽, 평면의 가장자리는 방으로 구획되어 사무실이 입주해 있었다. 나는 복도에 서서, 한숨을 돌리기 위해 사무실에서 잠깐 나온 사람을 상상했다. 그에게 복도가 ‘어디로 이동하던지 다시 자리로 돌아가서 일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숨을 못 쉬겠어서 얼른 건물에서 나왔다.


(중략) 누가 내게 이 여섯 건물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나는 망설임 없이 1999년에 사용승인이 난 넷째 건물현대캐피탈빌딩을 고르겠다. 순전히 창문 때문이다. 나는 그림자를 입은 건물을 좋아한다. 넷째 건물은 유독 건물의 외벽부터 창문까지의 깊이가 깊다. 외벽부터 창문까지의 깊이가 깊으면 그림자 때문에 그 깊이가 더 도드라져 보인다. 해가 낮게 뜬 시간이면 창문에 두꺼운 그림자가, 해가 높이 뜬 시간에는 창문에 얇은 그림자가 생길 것이다. 넷째 건물은 시간에 따라 두께가 다른 그림자를 입을 것이다. 요즘의 건물은 외벽이 매끈한 대신 외벽에서 그림자가 사라졌다.


여섯 쌍둥이처럼 늘어선 건물을 보고 있으니 흐뭇했다. ‘국회의사당 주변에 국회의사당보다 높은 건물은 못 짓는다.’는 국회사무처의 엉뚱한 자존심 세우기의 결과라지만 말이다. 서울처럼 건물 저마다 뽐내기로 바쁜 도시에서 이런 블록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마치 주변 건물을 신경 쓴 듯이, 조화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블록 말이다.


신지혜 

아빠가 지은 집에서 태어나 열두 번째 집에서 살고 있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건축 설계사무소에서 일한다. <0,0,0>과 

<건축의 모양들 지붕편>을 독립출판으로 펴냈고, <최초의 집>을 썼다. 

건축을 좋아하고, 건축이 가진 사연은 더 좋아한다. 

언젠가 서울의 기괴한 건물을 사진으로 모아 책을 만들고 싶다. 

건축 외에는 춤과 책을 좋아한다. 


 글은 빅이슈 3월호 22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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