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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Apr 19. 2020

[에디토리얼] 미성년


편집장. 김송희



여름, 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 뒤에는 여자 중학생 두 명 그리고 중년 남성과 할머니 두 분이 함께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버스가 도착하자 다들 버스에 탔지만, 수다에 빠져 버스가 도착한 것을 몰랐던 중학생들은 잠시 시간차를 두고 올라탔습니다. 버스가 출발하자 기사님은 중학생들에게 늦게 타면 어떻게 하느냐며 잔소리를 시작했고, 질세라 할머니들과 다른 승객들도 아이들에게 웃으며 반말로 한마디씩 얹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이 빨개진 두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버스에서 빠르게 내렸습니다. 마침 같은 정류장에서 내린 저는 뒤에서 우연히 아이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자기들에게 무안을 준 어른들을 욕할 줄 알았는데, 아이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른 주제로 수다를 떨며 사라졌습니다. 모르는 어른들에게 길에서 혼나거나 잔소리를 듣는 일이 특별한 일도 아니라는 듯이. 생각해보면 저도 10대 때 낯선 어른들에게 반말조로 자주 지적을 당하거나 혼났던 것도 같습니다. 공공성을 해치는 일을 했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줬다면 누구라도 지적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교복을 입고 있으면 성인들은 당연하게 반말로 훈계하거나 지적하면서 그게 문제라는 생각도 안 합니다. 미성년자라고 해서 쉽게 반말을 듣고 만만한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번 21대 총선에서는 선거법 개정으로 만 18세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선거권은 거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10대도 정치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내고 싸워온 수많은 청소년들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들을 보고 “어린데 똑 부러지네.”라고 말하는 것부터가 사실 차별의 언어입니다. 《빅이슈》가 만난 10대, 20대 다섯 명은 이번에 처음 유권자로서 권리를 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삶에서 정치가 왜 중요한지, 정치적인 이야기를 누구든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이들의 인터뷰에서 다시 한번 했습니다. 


마을버스에서 제가 본 일은 사실 우리 일상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당사자는 이미 다 잊었을 일을 왜 저 혼자 이렇게 오래 기억하고 있었나 생각해보면 저 역시 10대 때 그렇게 무안하고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어서인 것 같습니다. 모르는 아저씨, 모르는 할머니가 귀엽다는 듯이 나를 비웃고 반말로 혼냈던 기억, 실은 조금도 웃고 싶지 않았는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어색하게 웃으며 넘어갔던 기억들. 지금 한국 사회는 제가 10대였던 시절보다 조금은 앞을 향해 나아갔다고 믿고 싶습니다. 


아, 그리고 이번 호 커버스토리는 이문동의 재개발지역에서 구조된 고양이들이 주인공입니다. 늘 우리 동네 어디쯤에 있지만, 인간의 눈을 피해 숨어다녀서 존재를 잊고 살았던 고양이들은 이제 철거 지역에 남아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영화 지면에서도 고양이 영화만 두 편을 소개하고 말았네요. 우리 이웃이고 가족이고 친구이고, 함께 사는 동물인 고양이들과 그들을 구조하는 활동가들의 이야기도 유심히 읽어주세요. 사실 이번 호는 글이 너무 많아서 ‘텍스트 지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면 그간 우리가 놓치고 살았던 것들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기사들입니다. 에디토리얼이라도 짧게 쓰려고 했는데, 이미 틀렸네요. 이 페이지는 그만 읽고 얼른 커버스토리와 스페셜을 읽어주세요. 어허, 그만 읽으시라니까.      


위 글은 빅이슈 4월호 22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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