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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Apr 20. 2020

[욕아일기] 아뿔싸, 열심히 살고 싶어지고 말았다


글‧사진. 박코끼리     



오랜만에 친정에 다녀왔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벌써 4년, 엄마의 부재는 내 인생에 수만 가지 부작용을 낳았다. 그렇다고 밤낮 술이나 퍼마시며 세상을 삐딱하게 노려보는 폐인이 되진 않았다. 잠깐 그래볼까 싶었으나 엄마가 나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고, 당시 매사에 날 서 있던 나의 곁에 변함없이 농담을 던져준 이들 덕이었다. 시간은 역시 듣던 대로 명의였다. 해가 지날수록 숨 쉬는 게, 사는 게 나아졌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최선을 다하는 방법과 필요를 잊게 됐다.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열심히 살던 사람, 나의 행복을 누구보다 간절히 빌던, 내 일에 늘 나보다 더 염려하고 기뻐하던 사람. 나의 열렬한 빅팬이었던 엄마라는 세상이 사라진 후 나는 나에게 있는지도 몰랐던 ‘열심’을 잃었다. 


이따금 물이 들어오면 지난날의 관성으로 마지못해 노를 저었으나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가끔 목적지를 정하고 소매를 걷어붙이다가도 ‘아휴, 거기 가면 뭐 해. 내 팔만 아프지.’ 하는 식으로 금세 심드렁해지기 일쑤. 그렇게 한동안 어영부영 떠다니다 어딘가 도착해 정신 차려보니, 아니 글쎄! 내가 엄마가 돼 있었다. 작고 보드라운 손이 이제 그만 정신 차리라고 나를 깨웠다. 원래 일주일 중 최소 이틀은 여름날 화목난로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였던 내가, 이제 게으른 사람 중에 가장 부지런한 사람이 됐다. 아이가 배고플까 봐, 자다 깰까 봐, 똥을 쌌을까 봐 혹은 못 쌀까 봐. 내 품에서만 온전한 안식을 찾는 이 작은 친구가 혹시라도 아프거나 괴로울까 봐 아무것도 미룰 수가 없다. 


아무튼 아이가 생긴 후부터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빼곡하게 살게 됐다. 하지만 원래 물에 빠졌다가 기어 나오면 보따리를 찾는 게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어렵사리 되찾은 ‘열심’을 오로지 자식만을 위해 쓰고 또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이 조금 울울하긴 하다. 언젠가 엄마에게 엄마는 꿈이 뭐였냐고 물은 적이 있다. 엄마는 말없이 빨래만 개키시다가 내가 재차 물으며 귀찮게 하자 “니 낳는 거.” 하며 툭 던지듯 대답하셨다. 그게 무슨 꿈이냐고 킥킥거리다가 엄마의 왠지 슬픈, 아니 어딘가 골난 얼굴에 나도 가만히 입을 닫고 빨래를 갰던 기억이 있다, 그때 엄마가 꺼내지 못했을 문드러진 말이 이제야 내 속을 앓게 한다.           


박코끼리

하나라도 얻어 걸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쓴다. 

요즘은 일생일대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주로 참을 忍을 쓰고 있다.     


위 글은 빅이슈 4월호 22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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