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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이슈코리아 Apr 21. 2020

[황소연의 레트로즘] 하선정을 찾아서

관상용 요리책을 산 이유


글·사진. 황소연     



얼마 전부터 꿈에 나올 정도로 꼭 갖고 싶은 물건이 있었다. 유년 시절 심심할 때면 보던 요리책인데, 가끔 입맛 돋우는 메뉴가 있으면 엄마에게 해달라고 졸랐던 것 같기도 하다. 원색의 책에는 잔칫상, 서양요리 등 다양한 메뉴들이 있었다. 책의 뒷면엔 양념 제조법이나 각국의 식사 예절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언젠가 멋진 레스토랑에 가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바깥부터 쓰는 나이프와 포크 등 식사 매너를 익혔다. 


하선정이 아닌하숙정


내가 기억해낸 책의 키워드는 ‘하선정’. 그는 액체육젓을 만들어 판매하는 등, 자신의 이름을 딴 음식 사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내 기억 속 요리책을 썼을 거라 믿었다. 단서는 한껏 멋을 부린 디저트와 칵테일 사진, 그리고 요리에 몰두하던 여성들의 사진.


“7~10살 때 보던 책이고요, 표지는 두꺼운 종이, 전체적으로 레몬색이에요.” 내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 이들이 이런저런 책 사진을 보내주었지만 이거다 싶은 건 없었다. ‘하선정요리학원’에도 문의를 했지만 힌트를 찾을 순 없었다. 이미 인터넷 헌책방 등을 이 잡듯 뒤져본 상태였다.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이 책을 제일 잘 알고 있을 사람은, 엄마였다. 산신령마냥 책 사진을 보내며 물었다. “엄마, 이 책 맞아?” “아니.” “그럼 이 책이야?” “아니야.” 숙고 끝에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하선정이 아니라 하숙정이야!” 혹시나 싶어 저서를 검색해보니 기억 속의 노란 요리책이 눈에 들어왔다. 


대구의 어느 헌책방에서 요리연구가 하숙정이 낸 요리 대전집을 찾았다. 택배 상자를 뜯고 재회한 요리책의 정식 명칭은 <우리의 맛-하숙정 요리전집>. 7권으로 되어 있는 책의 겉면은 레몬색이라기보다 개나리 색에 가까웠다. 권별로 콘셉트가 다르다. 4권까지는 한식 위주이지만 5권은 ‘세계의 맛’, 6권은 ‘어린이 요리’, 7권은 ‘자연건강식’이다.      


영업사원이 파는 신부수업

문득 엄마가 책을 산 사연이 궁금해졌다. “35년 전쯤? 결혼 전에 집집마다 다니면서 파는 영업사원에게 샀어.” 책을 소개하는 ‘샘플’지를 가지고 다니면서 소개하고, 나중에 배달해주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정확하지 않지만, 기억 속 책의 가격은 세트로 17만 원 정도. 나는 2만 5천 원에 ‘득템’을 한 셈이다. 당시 으레 진행되던 다양한 형태의 ‘신부수업’의 일환이 이런 요리책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책을 산 이들이 가장 먼저 펼쳐 볼 1권 머리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아무쪼록 이 책자가 주부들의 음식 솜씨를 향상시켜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데 큰 몫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을 증명하듯 1권 1장, 요리책의 첫 요리는 ‘칠첩반상’이다. 어릴 땐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이 고개를 든다. 시간이 갈수록, 많은 엄마들에게 요리책이 짐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을까.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쳐 만드는 요리들을 보고 새삼 깨닫는다. 요리는 과학이다. 동시에 노동이다. 


위 글은 빅이슈 4월호 22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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